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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문명을 만나다 ①] 초콜릿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마야 신화 속 카카오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9.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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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에서 만나는 5천 년 카카오의 역사, 마야 문명에서 음료·의례·문화로
  • 고고학이 찾아낸 가장 오래된 카카오 흔적은 남미 아마존, 마야 문명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의미 더해
  • 박영도 연구소장·손현주 대표와 함께 카카오 한 알에 담긴 문명의 이동을 따라가다

 [편집자주]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는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전시와 소장 자료를 따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초콜릿의 뿌리를 찾아가는 ESG코리아뉴스의 기획연재이다. 카카오의 기원에서 출발해 마야의 신화와 문화, 아즈텍 사회의 카카오, 유럽으로 건너간 뒤 달라진 초콜릿, 오늘날 한 조각의 초콜릿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차례로 살펴본다. 한국초콜릿연구소 박영도 소장과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 손현주 대표의 현장 설명에 고고학·역사학 자료를 더해 한 알의 카카오가 어떻게 인류의 음식과 문화가 되었는지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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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카누 위에 올려진 카카오열매 모형 [사진=ESG코리아뉴스]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전시실을 걷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초콜릿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달콤한 간식이나 디저트로 익숙하지만 그 역사를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음료였고, 의례와 신화에 등장했으며 사람들의 삶과 교역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전시실 한쪽에 자리한 ‘마야신화(Mayan Mythology)’ 설명판 앞에서 이야기는 마야 문명으로 향한다. 마야의 지하세계 ‘시발바(Xibalba)’와 영웅 쌍둥이, 옥수수와 카카오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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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카카오의 역사를 설명하는 박영도 한국초콜릿연구소 소장 [사진=ESG코리아뉴스]

 

현장에서 초콜릿의 역사를 설명하는 박영도 한국초콜릿연구소 소장은 우리가 오늘날 먹는 초콜릿만 보고서는 카카오가 지닌 본래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박 소장의 설명은 카카오를 단순히 ‘초콜릿을 만드는 원료’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해 온 하나의 식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초콜릿은 비교적 근대에 만들어진 형태이고, 그보다 훨씬 앞서 카카오를 이용했던 사람들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콜릿의 시작은 어디일까.

 

초콜릿보다 먼저 카카오가 있었다


흔히 마야나 아즈텍 문명을 떠올리지만 최근의 고고학 연구를 따라가면 이야기는 중앙아메리카보다 더 남쪽, 남미 아마존 지역으로 내려간다.


오늘날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나무의 학명은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이다.


오랫동안 카카오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처음 이용되거나 재배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야와 아즈텍 사회에서 카카오가 중요하게 사용됐다는 역사적·고고학적 자료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면서 카카오의 역사는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에콰도르 남동부 산타아나-라플로리다(Santa Ana-La Florida) 유적의 토기에서 약 5,300년 전 카카오 이용 흔적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토기에서 카카오 전분 입자와 카카오의 주요 성분 가운데 하나인 테오브로민(theobromine), 고대 DNA를 찾아냈다.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카카오 이용의 고고학적 증거 가운데 하나다.


2024년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연구는 카카오가 남미 여러 지역으로 이동한 과정에 대한 단서를 추가했다. 연구진은 선콜럼버스 시대 토기를 분석해 카카오가 원산지로 알려진 아마존 지역을 벗어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됐으며, 사람들의 교류와 이동이 그 과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했다.


따라서 ‘초콜릿을 마야인이 처음 만들었다’고 단순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고학적 증거를 기준으로 보면 카카오 이용의 역사는 남미 상부 아마존에서 훨씬 일찍 시작됐다. 이후 카카오가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마야를 비롯한 메소아메리카 사회에서 독특한 음식과 의례, 문화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박영도 소장이 박물관에서 마야 문명을 설명하면서도 초콜릿의 역사를 카카오 자체의 역사와 함께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야에 도착한 카카오는 문화가 됐다


카카오의 가장 오래된 흔적이 남미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마야 문명과 카카오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야 사회에서 카카오는 단순히 먹는 열매를 넘어선다. 고고학 자료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된다.


2002년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벨리즈 북부 콜하(Colha)의 마야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잔류물을 분석해 기원전 600년 무렵 카카오가 이용됐음을 보여주는 화학적 증거를 확인했다.


과테말라 리오아술(Rio Azul)의 고전기 마야 무덤에서 발견된 토기에서도 테오브로민과 카페인이 검출됐다. 일부 용기에는 카카오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는 마야 문자도 남아 있어 문자 자료와 화학 분석이 함께 카카오 사용을 뒷받침한다.


당시의 카카오는 지금 우리가 먹는 초콜릿 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카카오를 갈아 물 등과 섞어 음료로 마셨고, 거품을 만들어 먹는 방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탕과 우유를 넣고 굳힌 오늘날의 초콜릿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박영도 소장은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초콜릿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의 초콜릿을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보면 카카오가 수천 년 동안 거쳐온 문화적 변화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박물관에서 초콜릿을 설명하며 ‘신화’를 이야기할까


전시실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카카오 옆에 마야의 신화가 등장한다.


마야 고지대 키체(K'iche')족의 창세 신화를 기록한 『포폴 부(Popol Vuh)』에는 죽음의 세계와 인간, 신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널리 알려진 것이 ‘영웅 쌍둥이(Hero Twins)’ 이야기이다.


이들의 아버지 세대는 공놀이 때문에 지하세계의 신들을 자극해 죽음의 세계인 시발바로 불려간다. 그곳에서 여러 시험을 받지만 결국 목숨을 잃는다. 이후 영웅 쌍둥이 후나푸(Hunahpu)와 시발랑케(Xbalanque)가 성장해 시발바로 향한다. 여러 시험과 죽음의 위기를 거치면서 지하세계의 신들과 맞서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마야신화’ 설명판도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박영도 소장은 마야의 카카오 문화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신화와 세계관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식물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고, 옥수수와 카카오 같은 작물은 삶과 자연, 신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문화적 체계 안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카카오와 옥수수, 그리고 신들의 세계


카카오가 마야의 신화적 세계와 연결됐다는 사실은 고대 미술에서도 확인된다. 마야 미술 연구자인 사이먼 마틴(Simon Martin)은 고대 마야의 종교와 도상에서 카카오가 옥수수신(Maize God)의 서사와 밀접하게 연결돼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일부 고대 토기에는 카카오나무와 신적 인물이 결합된 모습이 표현돼 있다.


마야 사회에서 옥수수는 인간의 탄생과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작물이었다. 카카오 역시 신성한 식물과 의례의 영역에서 의미를 갖게 됐다. 다만 이를 ‘초콜릿 탄생 신화’라고 단순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포폴 부』의 영웅 쌍둥이 이야기는 초콜릿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신화가 아니다. 죽음과 재생, 옥수수, 카카오와 관련된 여러 신화와 도상이 서로 연결돼 있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학술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박물관에서는 신화가 당시 사람들이 자연과 식물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고고학은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먹고 사용했는지를 확인하는 근거가 된다.

 

‘신들의 음식’ 카카오, 정말 마야인이 붙인 이름일까


초콜릿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신들의 음식’이다.


카카오나무의 학명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에서 테오브로마(Theobroma)는 그리스어 theos(신)와 broma(음식)에서 나온 말로 ‘신들의 음식(food of the gods)’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 표현 역시 역사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테오브로마(Theobroma)라는 식물학적 속명을 붙인 사람은 마야인이 아니라 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 칼 린네(Carl Linnaeus)이다. 마야를 비롯한 메소아메리카 사회에서 카카오가 의례와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사실과 훗날 유럽 식물학자가 카카오에 ‘신들의 음식’이라는 의미의 학명을 붙인 것은 서로 다른 역사다.


이 둘이 오랜 시간 뒤섞이면서 오늘날에는 마치 고대 마야인들이 초콜릿을 직접 ‘신들의 음식’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초콜릿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이런 익숙한 이야기 하나하나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박영도 소장이 초콜릿보다 먼저 ‘문명’을 이야기하는 이유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에서 만난 초콜릿의 역사는 제품이나 제조법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사람과 문명에서 시작한다.


박영도 소장의 설명을 따라 전시실을 이동하다 보면 카카오나무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남미의 고대 토기로, 다시 마야의 문자와 그림, 시발바와 영웅 쌍둥이의 신화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초콜릿의 모습은 잠시 사라진다. 대신 한 식물을 발견하고 이용한 사람들, 그것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 사람들, 카카오에 자신들만의 의미를 부여한 문명들이 등장한다.


손현주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 대표 역시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와 문화까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초콜릿을 완성된 식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카카오에서 시작된 긴 시간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고고학이 확인한 카카오 이용의 역사는 약 5,300년 전 남미 상부 아마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카오는 이후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전해졌고, 마야 문명에서는 음식과 의례, 문화와 신화적 세계관 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수천 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모습의 초콜릿이 되어 우리 앞에 놓였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초콜릿 한 조각 안에는 그렇게 식물의 역사와 사람의 이동, 신화와 문명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는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초콜릿이 아니라, 초콜릿보다 먼저 존재했던 카카오와 사람들의 문명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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