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준상 배우가 13주의 배움 끝에 발견한 ‘ID-ESG’…유일한의 인류애에서 동기들과의 실천까지
[편집자주] 이 글은 배우 유준상 님이 제5기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을 수료한 뒤, ESG에 대한 배움과 생각을 직접 작성해 ESG코리아뉴스에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나는 배우다.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있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호흡을 하나로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발견하고, 한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끝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런 내가 ESG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ESG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나와 조금 먼 세계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세 글자는 기업의 보고서와 평가표, 투자와 규제, 복잡한 수치와 데이터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우가 왜 ESG를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왜 이토록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기업과 사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가인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책임을 가질 수 있는지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제5기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에서 보낸 13주는 그 질문을 더 크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공급망과 경제안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고, ESG는 거래와 투자, 산업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현실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AI와 빅데이터는 흩어진 ESG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기업의 책임을 수치로 증명하게 하고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문제도 배웠다. AI가 인간의 기억과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고, 그 안에서 고유한 맥락과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문화와 예술은 사람의 마음과 사회의 기억을 움직이는 자본이라는 것. 호기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결국 오래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배웠다.
수업을 들으며 나는 한 문장을 자주 떠올렸다.
“데이터는 ESG를 증명하게 하지만, 인간의 이야기는 그 데이터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한다.”
숫자는 필요하다. 책임은 반드시 측정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한 사람의 삶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어느 협력업체 노동자의 하루, 기후 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한 가족의 두려움, 아직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없는 아이들과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몇 개의 지표만으로 온전히 표현되기 어렵다.
배우는 바로 그 숫자 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다.
나는 뮤지컬 《스윙 데이즈》에서 유일한 박사를 연기했다. 무대 위에서 그를 만나기 전에도 유일한 박사가 정직한 기업인이며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인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의 업적을 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배우는 인물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이 되어 결단의 순간 앞에 서보는 사람이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두려움 속에서도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를 자신의 몸과 호흡으로 통과해야 한다.
내가 무대에서 만난 유일한 박사의 가장 큰 힘은 인간을 향한 정직함이었다.
기업의 이익을 개인의 소유로만 여기지 않았고, 기업이 얻은 것은 결국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람의 건강과 교육, 나라의 미래를 자신의 사업과 분리하지 않았다. 그의 인류애는 거대한 구호가 아니었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고, 사람에게 필요한 약을 만들고, 자신의 소유를 사회의 미래로 돌려놓는 구체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유일한 박사를 연기하며 인류애를 다시 배웠다.
인류애는 내가 가진 힘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태도다.
내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끝까지 생각하는 책임이다.
그리고 좋은 뜻이 한 번의 선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제도와 습관으로 남기는 실천이다.
13주의 수업을 들으며 나는 유일한 박사의 삶이 오늘날 우리가 ESG라고 부르는 가치와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했다. ESG라는 용어가 존재하기 오래전부터 그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인간과 사회의 삶 속에서 찾고 있었다.
이번 과정에서 강연 내용과 더불어 내가 배운 것이 있다.
함께 공부한 제5기 동기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이미 ESG를 실천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싱가포르에서 아이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유소년 축구단을 만들어 아이들이 미래를 향해 달릴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었다. 또 다른 동기는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기꺼이 나누며 아이들이 더 좋은 미래를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과정 중에 나눔과 기부를 통해 극단 ‘더더더’의 친구들을 응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ESG가 반드시 거대한 기업이나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함께 손을 내미는 일, 자신이 가진 재능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일도 분명한 ESG의 실천이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만남이 단순한 인맥 형성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자의 명함을 교환한 사람들이 서로의 활동에 관심을 가졌으며,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생각으로만 남았을 일들이 ‘동기’라는 이름의 연결을 통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의미를 새롭게 배웠다.
커뮤니티는 비슷한 사람은 물론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자신이 가진 것을 꺼내놓고,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함께 질문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장소다. 좋은 교육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그 연결이 다시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5기 동기들과의 만남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ESG 수업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시작하기 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변화는 더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가 만드는 성과의 뒤편에는 누구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는가.
현재의 결정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남길 것인가.
AI가 효율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은 이 질문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예술가가 ESG의 정답을 대신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가는 지표가 놓친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이게 할 수 있다. 말하지 못한 사람의 침묵을 들려주고, 먼 미래의 결과를 오늘의 감정으로 체험하게 만들며, 사회가 외면해온 질문을 다시 무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이것이 배우인 내가 ESG에 보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3주의 공부를 마친 지금, 나는 ESG를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ESG는 착한 기술이 아니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알고, 그 존재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에 남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다.
나는 이 생각을 ‘ID-ESG’, 즉 정체성에서 출발하는 ESG라고 부르고 싶다. 외부 평가에 맞추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묻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확인하며, 그 답을 데이터와 제도와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삶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함께 공부한 제5기 동기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나도 배우와 감독, 예술가로서 내가 가진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더 깊이 묻고자 한다.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온 경험을, 무대 밖 사람들의 삶을 더 오래 바라보는 데 쓰고 싶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동기들과 함께 시작하고 싶다.
좋은 공부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하고 더 좋은 질문을 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ESG를 공부하며 더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질문들을 삶으로 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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