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0억 염기쌍 가진 ‘레피도시렌 파라독사’, 지금까지 분석된 동물 가운데 최대 규모
- DNA는 인간의 30배지만 유전자 수는 약 2만 개로 비슷, 척추동물 진화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
남아메리카에 사는 한 폐어가 인간보다 약 30배 많은 DNA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유전체 염기서열이 분석된 동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는 5일 공식 X를 통해 남미폐어 ‘레피도시렌 파라독사(Lepidosiren paradoxa)’의 유전체가 약 910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돼 있다고 소개했다. 인간의 유전체가 약 30억 개의 염기쌍인 것과 비교하면 약 30배에 이른다.
이 같은 사실은 2024년 국제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연구진은 남미폐어와 아프리카폐어의 유전체를 분석하고 기존에 연구된 호주폐어와 비교해 폐어의 유전체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DNA의 양과 유전자 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미폐어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DNA를 갖고 있지만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는 약 2만 개로 인간과 비슷한 수준이다.
거대한 유전체의 상당 부분은 단백질 정보를 직접 담지 않는 비암호화 DNA와 반복서열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특히 반복되는 DNA 서열과 전이인자(transposable elements)의 축적이 남미폐어의 유전체를 이처럼 크게 만든 주요 요인으로 분석했다.
DNA가 증가해 온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다른 폐어의 유전체와 비교한 결과 남미폐어는 약 1천만 년마다 인간의 전체 게놈에 해당하는 규모의 DNA를 추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방대한 유전물질이 계속 쌓이면서 현재와 같은 거대한 유전체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DNA가 남미폐어를 더 복잡한 생물로 만드는 것일까. 연구 결과는 유전체의 크기가 곧 생물의 복잡성이나 유전자 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보다 약 30배 큰 유전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수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남미폐어는 남아메리카의 강과 습지 등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로, 아가미뿐 아니라 공기 중 산소를 이용할 수 있는 폐와 유사한 호흡기관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폐어는 물속에 살던 척추동물이 육상으로 진출한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생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폐어는 현존하는 어류 가운데 육상 척추동물인 네발동물과 가까운 계통에 속한다. 연구진은 폐어의 유전체 비교를 통해 거대한 게놈이 형성된 과정뿐 아니라 지느러미가 사지로 변화하는 과정과 관련된 유전적 특징도 살펴봤다.
사이언스는 세계동물의날(World Animal Day)을 맞아 이 연구를 다시 소개하며 남미폐어의 독특한 유전체를 조명했다. 작은 유전자 수와 거대한 DNA 규모가 공존하는 남미폐어는 생물의 유전체가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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