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하버드 의대·보스턴아동병원 연구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뇌 발달 과정의 유전체 품질관리 연구 발표
- 태아기 대뇌피질 신경세포 25.9%에서 광범위한 유전자 복제수 변이 발견, 출생 후 평균 6.2%로 감소
- 자폐증·조현병 등 신경발달장애의 발생 원인 규명에 새로운 단서 제시
인간의 뇌는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는 신경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가 발달하는 동안 만들어지는 수많은 신경세포 가운데 일부가 사라지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이러한 과정이 뇌의 유전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일종의 '품질관리' 기능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과 보스턴아동병원(Boston Children's Hospital) 공동 연구진은 지난 2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유전적 이상이 있는 인간 대뇌피질 신경세포의 출생 전후 제거(Perinatal elimination of genetically aberrant human cortical neurons)'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다이앤 D. 샤오(Diane D. Shao), 이판 자오(Yifan Zhao) 등이 참여했으며, 하버드 의과대학의 피터 J. 박(Peter J. Park) 교수와 보스턴아동병원의 크리스토퍼 A. 월시(Christopher A. Walsh) 교수가 공동 책임연구자로 참여했다.
태아기 신경세포 4개 중 1개에서 광범위한 유전적 변이 발견
연구진은 인간의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신경세포의 유전적 구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태아기부터 출생 이후까지의 인간 뇌 조직을 분석했다.
연구에는 사후 기증된 인간 뇌 조직에서 확보한 신경세포 2,357개의 유전체 분석 결과가 활용됐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기법을 이용해 신경세포에 나타나는 유전자 복제수 변이(Copy Number Variants·CNVs)를 조사했다.
유전자 복제수 변이는 DNA의 특정 구간이 정상보다 많이 복제되거나 일부가 결실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유전자의 정상적인 작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일부 변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조현병, 뇌전증, 지적장애 등 신경발달 및 정신신경계 질환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석 결과, 태아기 대뇌피질 신경세포에서는 평균 25.9%가 여러 염색체에 걸친 광범위한 복제수 변이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표본에서는 그 비율이 46%에 달했다.
그러나 출생 이후에는 이러한 신경세포의 비율이 평균 6.2%로 크게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변화가 출생 전후에 유전적으로 심각한 이상이 있는 신경세포가 선택적으로 제거되는 과정과 관련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태아의 뇌에서 만들어진 신경세포가 모두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발달 과정에서 유전적 상태에 따라 생존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경세포 간 연결 경쟁이 생존을 결정할 가능성
그렇다면 인간의 뇌는 어떤 방식으로 유전적 이상이 있는 신경세포를 제거하는 것일까.
연구진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4만4,861개 세포핵의 유전자 발현과 염색질 접근성 등을 추가로 분석했다.
그 결과, 광범위한 복제수 변이를 지닌 신경세포에서는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되는 접합부인 '시냅스(Synapse)'의 형성과 유지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발현에 이상이 나타났다.
시냅스는 신경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연결 부위로, 기억과 학습을 비롯한 뇌 기능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가 발달하는 동안 신경세포들은 서로 연결망을 형성하며, 충분한 연결을 확보하지 못한 일부 신경세포는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과정을 통해 제거된다.
연구진은 유전적 이상이 많은 신경세포가 정상적인 시냅스 연결을 형성하는 데 불리해 생존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뇌가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세포를 직접 식별해 제거한다기보다 신경세포들이 연결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능적으로 불리한 세포가 선택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가 이러한 제거 과정의 모든 분자적 기전을 직접 규명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유전적 변이와 시냅스 기능 이상, 신경세포 감소 사이의 연관성을 토대로 선택적 제거 가능성을 제시했다.
자폐증·조현병 등 신경발달장애 연구에 새로운 단서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신경발달장애의 발생 원인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조현병 등은 유전적 요인과 뇌 발달 과정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정상적인 뇌 발달 과정에서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는 신경세포를 제거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신경회로의 형성과 유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공동 책임연구자인 피터 박 교수는 태아기 뇌에서 복제수 변이를 지닌 신경세포가 예상보다 흔하게 발견됐지만, 출생 전후 이를 제거하는 과정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동 책임연구자인 크리스토퍼 월시 교수 역시 신경세포 간 시냅스 연결 경쟁이 뇌의 유전적 품질을 관리하는 과정과 관련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 등 신경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의 뇌에서도 이러한 신경세포 제거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또한 성인 이후 나타나는 신경세포 손실과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과 관련된 후속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이번 연구만으로 신경세포 제거 과정의 이상이 자폐증이나 조현병을 직접 유발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질환과의 인과관계 및 치료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인간의 뇌는 태어나기 전부터 스스로를 정비한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뇌 발달이 단순히 신경세포의 수를 늘리고 연결망을 확장하는 과정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뇌는 발달 과정에서 신경세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일부를 제거하며, 이러한 선택 과정이 유전적으로 안정적인 신경회로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전적 변이가 있는 신경세포가 출생 전후 급격히 감소한다는 사실은 뇌 발달 과정에서 자연적인 선택과 조절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인간 신경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전체 품질관리의 한 형태로 해석했다.
이번 발견은 인간의 뇌가 어떻게 정상적인 신경회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지 이해하는 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나아가 신경발달장애와 신경퇴행성 질환의 발생 기전을 규명하기 위한 후속 연구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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