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11층 건물 높이 조형물 설치, 기존 세계기록 28.15m 경신
- '죽은 자들의 날' 맞아 금잔화 7만 포기로 광장 장식,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기리는 멕시코의 전통문화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심부에 높이 33m가 넘는 거대한 여성 해골 조형물이 등장했다. 화려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도심의 건물들 위로 우뚝 솟은 이 조형물은 멕시코의 대표적인 전통 명절인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카트리나(Catrina)'로 기네스 세계기록까지 세우면서 역사적인 도심 광장은 멕시코의 전통과 예술을 만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유럽 뉴스채널 유로뉴스(Euronews)와 멕시코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멕시코시티 정부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소칼로(Zócalo) 광장에서 '죽은 자들의 날'을 기념하는 대형 추모 제단인 '오프렌다 모누멘탈(Ofrenda Monumental)'을 공개했다.
행사의 중심에 설치된 카트리나 조형물은 높이 33.411m로, 약 11층 건물에 해당하는 규모다. 2023년 멕시코 푸에르토바야르타에서 세운 기존 기록 28.15m를 넘어섰으며, 기네스 세계기록 심사관 알프레도 아리스타(Alfredo Arista)가 현장에서 높이를 확인한 뒤 클라라 브루가다(Clara Brugada) 멕시코시티 시장에게 공식 인증서를 전달했다.
세계 각지의 흥미로운 소식을 소개하는 X 계정 'Massimo'도 31일 이 조형물의 사진을 공개하며 새로운 세계기록을 소개했다.
140여 명이 함께 만든 거대한 예술작품
이번 카트리나는 멕시코의 예술 공방 '시발바(Xibalbá)'가 제작했다. 카를로스 카밀로 바에스(Carlos Camilo Báez)가 이끄는 제작팀에는 조각가와 화가, 금속공예 전문가, 건축가, 전기·조명 기술자 등 약 140명이 참여했다.
멕시코 현지 언론 아리스테기 노티시아스(Aristegui Noticias)에 따르면 제작팀은 약 9개월에 걸쳐 작품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거대한 조형물을 안정적으로 세우기 위해 철제 골조와 크레인, 비계 등이 동원됐으며, 금속 구조물과 유리섬유, 종이 공예 재료, 직물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됐다.
특히 길이 27m가 넘는 보라색 드레스는 조형물의 상징적인 요소다. 해골의 몸을 감싼 긴 드레스가 광장 바닥까지 흘러내리도록 제작돼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멕시코시티 정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전통문화와 현대 공공예술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시민들에게 익숙한 문화적 상징을 거대한 조형물로 재해석해 누구나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전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멕시코인들에게 해골은 왜 특별할까
멕시코에서 카트리나는 단순히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아니다. 화려한 모자와 드레스를 입은 여성 해골은 삶과 죽음에 대한 멕시코 특유의 시선을 담고 있는 문화적 상징이다.
카트리나의 기원은 멕시코 판화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가 20세기 초 제작한 '라 칼라베라 가르반세라(La Calavera Garbancera)'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사다는 당시 유럽 상류층의 문화를 모방하던 멕시코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화려한 모자를 쓴 해골을 그렸다.
이후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가 자신의 벽화에 이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오늘날 널리 알려진 카트리나의 모습이 자리 잡았다.
카트리나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지위에 있든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멕시코의 전통과 깊이 연결됐다.
오늘날 카트리나는 '죽은 자들의 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멕시코 사람들은 해골을 무섭거나 불길한 존재로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화려한 색채와 유쾌한 모습으로 표현하며 떠난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새긴다.
금잔화 7만 포기로 꾸민 추모의 광장
거대한 카트리나가 자리한 소칼로 광장에는 약 7만 포기의 금잔화가 놓였다. 멕시코에서 '셈파수칠(cempasúchil)'이라고 부르는 이 꽃은 '죽은 자들의 날'에 빠질 수 없는 상징이다.
멕시코의 전통에서는 선명한 주황색 꽃잎과 향기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가족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명절이 다가오면 가정과 묘지, 거리 곳곳이 금잔화로 물든다.
이번 행사에서는 금잔화와 함께 멕시코 고유의 도롱뇽인 아홀로틀(axolotl)을 형상화한 작품 66점, 상상 속 동물을 표현한 알레브리헤(alebrije), 색색의 톱밥으로 만든 전통 장식 등이 광장을 채웠다.
이 모든 장식은 멕시코의 전통적인 추모 제단인 '오프렌다(ofrenda)'에서 비롯됐다. 오프렌다는 세상을 떠난 가족의 사진과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 꽃, 촛불 등을 올려놓는 공간이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가족의 유대를 이어가는 의미를 지닌다.
멕시코에서는 매년 11월 1일과 2일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모여 고인을 추모한다. 사람들은 집과 묘지에 제단을 마련하고, 거리에서는 해골 분장과 전통 의상을 입은 시민들이 축제에 참여한다.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날인 셈이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는 2008년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과 관련된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문화가 되다
클라라 브루가다 멕시코시티 시장은 29일 열린 기념행사에서 '죽은 자들의 날'을 망각에 맞서는 사랑의 저항에 비유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멕시코 문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표현이다.
멕시코시티는 이번 조형물 공개와 함께 도심 주요 건물에 전통 문양을 활용한 조명을 설치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했다. 31일에는 대규모 '죽은 자들의 날'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으며, 소칼로 광장의 카트리나와 추모 제단은 11월 2일까지 무료로 공개된다.
이번 행사는 전통적인 추모 문화를 현대적인 공공예술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지역 예술가와 공예인, 기술자들이 함께 만든 거대한 조형물은 멕시코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민과 관광객이 전통을 직접 경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33.4m라는 기록적인 높이도 인상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더욱 특별하다. 멕시코인들에게 '죽은 자들의 날'은 슬픔만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아니다. 꽃을 놓고 음식을 나누며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했던 삶을 다시 이야기하는 날이다.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거대한 카트리나는 죽음이 삶의 끝이라는 사실을 넘어, 누군가를 기억하는 마음은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다는 멕시코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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