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구진, 췌장암 고위험군 20명 대상으로 KRAS 유전자 변이 표적 백신 시험
- 참가자 90%에서 면역반응 확인, 일부는 최대 2년간 면역세포 유지
췌장암이 발생하기 전에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암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알아차리도록 하는 새로운 백신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들에게 실험용 백신을 투여한 결과, 대부분의 참가자에게서 암 관련 변이를 인식하는 면역반응이 나타났다. 아직 실제 암 예방 효과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암이 발생한 뒤 치료하는 기존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변화를 조기에 차단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1일 과학정보 공유 X 계정 'Smart Science'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키멜암센터 연구진 등이 개발한 실험용 췌장암 백신 'mKRAS-VAX'의 임상 1상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 연구는 앞서 미국암연구협회(AACR)가 발행하는 학술지 《캔서 디스커버리(Cancer Discovery)》에 발표됐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췌장암 발생에 깊이 관여하는 'KRAS'라는 유전자다. KRAS는 정상적인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지만, 특정 변이가 생기면 세포가 필요 이상으로 증식하도록 만드는 신호가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암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췌장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췌관선암(PDAC)에서는 KRAS 유전자 변이가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 이 변이는 암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부터 나타날 수 있어, 연구진은 면역체계가 이를 미리 인식하도록 한다면 암 발생 위험을 낮추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러한 생각에서 개발된 것이 mKRAS-VAX다. 이 백신은 췌장암에서 흔히 나타나는 6가지 KRAS 유전자 변이를 표적으로 삼는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해당 변이를 기억하고, 같은 특징을 가진 비정상적인 세포가 나타났을 때 반응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백신의 안전성과 면역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시험에는 유전적으로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고, 영상검사에서 췌장에 이상 소견이 발견된 성인 20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13주 동안 총 4차례 백신을 투여받았다. 연구진은 접종 후 이상반응이 나타나는지 살피는 한편, 면역체계가 실제로 KRAS 변이를 인식하는지도 확인했다.
그 결과 참가자 20명 가운데 18명, 즉 90%에게서 변이 KRAS에 반응하는 T세포가 뚜렷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반응의 증가 폭은 중앙값 기준 18.2배였다.
T세포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포다. 이번 연구에서는 다른 면역세포의 활동을 돕는 CD4 T세포와 비정상적인 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CD8 T세포가 모두 반응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신을 접종한 뒤 형성된 면역반응이 일정 기간 유지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일부 참가자에게서는 백신으로 유도된 면역세포 클론이 최대 2년 동안 검출됐다. 이는 면역체계가 KRAS 변이를 기억하고 장기간 반응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추적 관찰에서도 관심을 끄는 결과가 나왔다. 참가자들을 중앙값 16.5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20명 가운데 췌장암이 새롭게 발생하거나 수술이 필요한 고위험 병변으로 진행한 사례는 없었다.
다만 이러한 결과를 백신의 암 예방 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시험은 참가자가 20명에 불과한 소규모 연구였고,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대조군도 없었다. 따라서 백신을 맞지 않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임상시험의 주된 목적 역시 암 예방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백신이 인체에 안전한지, 그리고 목표로 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었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주사 부위 반응과 피로, 오한, 독감과 비슷한 증상 등이 보고됐다. 연구진이 발표한 백신 관련 이상반응은 경증 또는 중등도 수준이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 가운데 하나다. 상당수 환자가 암이 진행된 뒤 진단받기 때문에 치료뿐 아니라 조기에 위험을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연구는 췌장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보여준다. 암세포가 충분히 성장한 뒤 이를 제거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암 발생과 관련된 초기 유전자 변화를 면역체계가 먼저 인식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치료 중심 연구와 차이가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면역세포가 특정 유전자 변이에 반응했다는 사실이 실제로 암 발생을 막았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장기간 연구를 진행하고, 백신 접종군과 대조군을 비교해 예방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
현재 mKRAS-VAX는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실험용 백신으로, 일반적인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된 췌장암 예방백신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췌장암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미리 인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초기 근거를 제시했다.
암이 발생한 뒤 치료하는 것에서 나아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변화를 더 이른 단계에서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앞으로 이어질 임상연구가 이러한 가능성을 실제 암 예방 효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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