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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 이경미 박사
  • 입력 2026.10.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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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동료와 머리를 맞대고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일이 화면 속 AI와의 대화만으로 단시간에 끝나기도 한다. 교실의 학생도 막히는 개념이 생기면 스마트폰 속 AI에게 곧바로 풀이를 요청한다. 혼자서도 복잡한 업무와 학습을 해낼 수 있게 되자, 여럿이 모여 일하고 배우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회의실과 강의실, 수많은 사무 집기의 쓰임을 다시 묻게 된다. 업무와 학습 방식이 바뀌면 그 행위를 담던 공간의 규모와 배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AI가 바꾸는 공간은 외형만 달라지는 유행이 아니다. 사람의 행위가 바뀌면서 기존 공간의 기능과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결국 물리적 환경의 재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왔다. 집을 지으면 가족은 정해진 구조에 맞춰 생활했고, 학교를 지으면 학생들은 같은 교실에 모여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들었다. 공간은 삶을 담는 그릇이면서 행동을 규정하는 틀이었다. 그러나 AI의 등장은 이 관계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AI가 센서와 사물인터넷(IoT), 카메라, 각종 환경 데이터와 결합하면서, 공간은 한 번 설계되면 끝나는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학습해 반응하는 시스템이 되어 가고 있다.

 

스마트홈이 정해진 조건에 따라 냉난방과 조명을 작동시켰다면, AI가 결합된 공간은 누가 언제 어디에 머물고 어떤 온도와 밝기를 선호하는지를 학습해 환경을 조절한다. 건축 분야에서는 이를 ‘재실자 중심 제어(Occupant-Centric Control)’라는 이름으로 연구하고 있다. 2026년 국제학술지 《Building and Environment》에 실린 논문은 관련 연구 82편을 분석해, AI로 공간 사용자의 재실 여부와 생리적 상태를 파악하고 온열환경과 실내공기질, 조명·채광을 사용자에게 맞춰 제어하는 기술을 검토했다. 개별 실험에서는 에너지 절감과 온열 쾌적성 개선 효과도 보고됐다. 다만 실제 환경에서의 효과는 실험실보다 제한적일 수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와 도입 비용 같은 과제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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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방 조절로 비교한 공간의 세 가지 반응 방식. 직접 조작과 설정 조건에 따른 자동화를 넘어, AI는 사람의 활동과 선호, 환경을 파악해 냉방을 조절하고 그 반응을 학습에 반영한다. [사진=이경미, AI]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기술 성능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의 관계다. 지금까지는 추우면 난방을 켜고 햇빛이 강하면 커튼을 쳤다. 앞으로는 사람이 따로 조작하지 않아도 공간이 사람의 행동과 생활 리듬을 읽고 알아서 온도와 조명을 조정할 수 있다. 매일 조금씩 다른 실제 기상 시간에 맞춰 조명이 밝아지고, 출근한 사람 수에 따라 사무실의 환기가 조절되며, 고령자의 집에서는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감지해 위험을 알린다. 공간은 더 이상 사람이 조작하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공간의 반응은 다시 사람이 공간을 쓰는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사람과 공간이 서로 반응을 주고받는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관계가 늘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간이 사람을 읽으려면 그만큼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이 나를 잘 예측한다는 것과 내가 그곳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건물 한 채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로 확장되고 있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 건물, 에너지, 정보가 동시에 움직이는 복잡한 공간이다. 도시계획과 운영은 오래전부터 조사와 통계, 다양한 예측 모형을 활용해 왔는데, 여기에 AI가 더해지면서 방대한 도시 데이터를 분석해 상황에 맞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단계까지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스마트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유엔 협력체 U4SSC는 2026년 보고서에서 이를 ‘자율도시(Autonomous Cities)’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미리 정해진 절차를 수행한다면, ‘자율적 시스템’은 주변 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대응을 선택하고 작동 방식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둘을 구분한다.

 

갑작스러운 비로 야외 공연이 일찍 끝나 관객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오는 상황을 그려 보자. 도시의 AI가 인파의 이동 방향과 교통 상황을 함께 분석해 보행 신호를 조정하고, 버스 운행 간격을 줄이거나 인근 택시를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바뀐 운행 정보는 귀가 안내에 반영되고, 이는 다시 사람들이 길을 고르고 기다리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자율도시의 개념을 바탕으로 상상해 본 미래의 한 장면이지만, 이런 대응이 도시 곳곳으로 넓어지면 같은 거리와 광장도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것이다.

 

이처럼 공간이 사람의 활동에 반응하게 된다면, 공간을 설계하는 일에도 변화가 따를 수 있다. 설계의 대상은 벽과 바닥, 건물의 형태와 배치에서 ‘공간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로 넓어진다. 무엇을 감지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도 설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형태와 배치를 구상하는 과정에도 AI가 참여한다. 말이나 이미지로 전한 구상을 공간 이미지와 3D 모델로 만들어 주는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공간을 구상하고 시각화하는 방식은 이미 크게 달라지고 있다. 물론 실제 건축으로 옮기려면 치수와 구조, 재료 검토가 필요하다. 설계 도구의 역할도 설계자의 구상을 표현하고 구현하는 데서 나아가, 가능한 해법을 함께 찾는 조력자로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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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에 대한 요구를 문장으로 전달하고, 생성형 AI로 시각화한 사례. [사진=이경미, AI]

 

그럴수록 무엇을 좋은 공간으로 판단할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된다.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과 잠시 머물고 싶은 길을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목표다.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환경과 다른 사람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싶은 장소 역시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닌다. AI가 단시간에 수많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될수록, 우리는 그 공간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우리의 일하고 배우고 살아가는 방식을 이렇게 바꾸어 가는 지금, 집과 학교, 사무실과 도시는 어떤 장소가 되어야 할까. 혼자 집중하는 시간과 함께하는 시간, 도움을 받는 편리함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는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할까. 편리함이 늘어난 만큼 무엇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지, 도움을 받으면서도 혼자 있을 수 있는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AI와 미래공간을 다루는 일은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공간의 모습을 그려가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의 공간은 어느 날 완성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집과 교실, 사무실과 거리에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쓰임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던지려는 질문은 구체적인 장면에서 시작한다. AI와 일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사무실이 필요한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집이 필요한가. 기술의 가능성을 실제 생활에 비추어 살피는 일에서, 인간을 위한 미래공간의 모습도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이경미 박사 / STUDIO K.153 대표


공간 기획과 설계·시공을 아우르는 실무 전문가이자,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연구자이며, 도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예술가다. 패션 분야의 비주얼 머천다이징(VMD)을 시작으로 약 20년간 주거·상업·업무·공공문화공간에 걸쳐 기획, 설계, 시공 및 감리 등 공간 조성의 전 과정을 수행해 왔다. 인쿱스인테리어협동조합 초대 이사장, 도시재생 코디네이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며 공간디자인의 실무 영역을 도시재생과 공공정책 분야로 확장했으며,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학문적으로는 공간에 축적된 기억과 시간, 인간의 실존적 경험에 주목해 왔다. 석사 연구에서는 노스탤지어를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과 시간성을 탐구했으며, 박사 연구에서는 하이데거의 ‘시적 거주’ 개념을 공간디자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인간과 공간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상응적 공간’ 개념을 제안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이론적 탐구를 도시 퍼포먼스와 예술적 실천으로 확장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적 행위와 사회적 관계가 장소의 의미와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실험하며, 공간을 물리적 환경을 넘어 인간의 삶과 기억, 관계가 형성되는 역동적인 장으로 바라보는 연구와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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