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e Su-ok's Spatial Resilience③] Architecture bridging the gaps of the city, responsive narrative
폴리(Folly): 장식에서 실천으로
광주의 도심은 지난 수십 년간 산업화와 도시 팽창의 흐름 속에서 역사적 장소성과 지역적 공동체성이 점차 퇴색되어 왔다. 그러나 그 틈을 메우려는 도시의 감응은 작고 밀도 높은 건축적 실천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광주폴리는 그러한 실천의 대표적 사례이다. 본래 유럽 귀족 정원에서 기원한 장식적 구조물인 ‘폴리(Folly)’를 현대 도시 공공건축으로 변용한 이 프로젝트는, 감정의 구조이자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건축을 광주라는 도시의 결을 따라 구현해 왔다.
‘폴리(Folly)’는 원래 실용적 기능 없이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장식적 구조물을 의미한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귀족 정원에 흔히 설치된 폐허를 모방한 탑이나 성채, 고전 기둥 등은 시각적 정취를 구성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현대 건축에서 폴리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선다. 스위스 출신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는 파리 라빌레트 공원에 35개의 붉은 폴리를 설치하며, 폴리를 도시 속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비정형적 실험 장치로 재정의했다. 관람객은 그 구조물 사이를 오가며 감각의 경로를 구성하고, 장소에 새로운 의미 층위를 부여받는다.
광주폴리는 이러한 현대적 폴리 개념을 도시 재생과 공공건축의 실천으로 확장시켰다. 단일 구조물이 아닌 도시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건축적 패턴으로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도시의 과거와 현재, 기억과 감정, 시민과 제도가 교차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시작된 광주폴리는 이후 독립 프로젝트로 분리되어, 다섯 차례에 걸쳐 광주 도심 곳곳에 감응적 건축을 심어 왔다.
“도시는 구조물로 만들어지지만, 지속가능성은 그 사이 틈에서 자란다.”
도시에 조형을 새기다
광주폴리의 출발점은 도시의 틈새 공간을 예술적으로 점유하고, 잊힌 장소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환기시키는 데 있었다. 초기 프로젝트는 승효상의 감독 아래 도미니크 페로, 프란시스코 사닌 등 국제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도시의 경계와 역사에 대한 물리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보이지 않던 도시의 층위를 건축적 개입을 통해 감응의 장소로 전환시켰다.
이후 프로젝트는 도시 유형학의 해체와 재조합으로 확장되었고, 일상성에 주목하는 흐름으로 전환되었다. 쿡 폴리, 뷰 폴리, 플레이 폴리 등 감각적 행위를 유도하는 설치물들은 도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호흡하며, 도시를 관찰하고 구성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 기능하였다. 도시의 맛, 빛, 냄새 등 비물질적 요소들이 공간의 재료로 끌어들여졌고, 건축은 일상적 행위와 기억을 수용하는 구조로 작동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정적인 도시 공간에 감정의 리듬과 비선형적 경험을 불어넣으며, 공간을 ‘사용하는 장소’에서 ‘공감하는 장소’로 전환하는 건축적 실천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 정체성을 드러내다
이어지는 단계에서는 ‘광주다움’이라는 선언적 주제를 중심으로, 도시의 관문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구조물들이 제안되었다. 폴리는 도시 외곽과 중심을 잇는 감각적 경계로 작동하며, 광주라는 장소의 성격을 외부로부터 정의하려는 시도를 담았다. 기존의 폴리들이 도시의 틈에 감각을 이입했다면, 이 시기에는 도시 경계에 의미를 새기고 상징적 접면을 구성하는 데 집중하였다.
더불어 도로공사와의 협력, 공공공모제 운영, 시민 참여 조직 구성 등 도시 시스템과의 접속이 본격화되며, 광주폴리는 단순한 설치를 넘어 제도 안에서 기능하는 공공건축으로 진화하였다. 공간적 개입은 사회 구조로 확장되었고, 광주폴리는 하나의 도시건축 시스템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순환의 건축, 윤리의 실천
‘순환(Re:Folly)’이라는 개념 아래, 물질과 감정, 구조와 기억이 도시로 돌아오는 방식을 질문한 가장 최근의 광주폴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다. 미역 줄기, 굴껍질, 편백나무, 생석회, 옻칠 등 한때 버려졌던 지역의 잉여 자원들이 건축으로 귀환하였다. 이 귀환은 단순한 친환경 디자인을 넘어, 자원과 기억의 위계에 저항하며 도시 윤리를 실천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숨쉬는 폴리’는 법적으로 구조재로 인정받지 못한 편백나무를 활용하여 목조건축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옻칠 집’은 전통 장인의 기술을 현대 재료로 재해석하며 감각과 시간의 순환을 공간화한다. ‘이코 한옥’은 과학과 감성이 결합된 다학제적 협업의 결과로 재생형 건축을 실천하고, ‘에어 폴리’는 해조류 기반 생분해성 유닛을 통해 도시와 자연 사이의 순환 구조를 탐색한다.
각 구조물은 광주 도심에 조성된 ‘광주폴리 둘레길’로 연결되며, 걷는 행위 자체를 감정의 회로로 전환한다. 공간은 시각적 장치를 넘어 정서적 지형으로 작동하고, 걸 음은 도시 리질리언스를 체화하는 실천이 된다. 폴리는 도시의 결핍을 메우기보다 는 그 틈을 드러내고, 그 틈은 감응의 공간이며 공공의 리질리언스 플랫폼이 된다.
리질리언스 도시건축의 살아있는 기록
광주폴리는 도시와 시민, 자원과 제도, 기억과 감각이 얽혀 형성된 하나의 건축적 서사이며, 시대의 감각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화 감각의 실험으로 시작된 흐름은 윤 리적 선언으로 확장되어 감정의 공간은 제도의 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폴리는 도시의 경계를 흔든다.
‘누구를 위한 건축인가?’,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어떤 재료가 지속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은 폴리의 구조가 되고, 동선이 되며, 참여가 된다.
도시는 계속 만들어지지만, 그 지속의 방식은 선택의 문제다. 광주폴리는 그 선택을 실천해온 건축적 리질리언스의 살아있는 사례이며, 공공건축이 도시에 남길 수 있 는 가장 정직한 질문이다. 도시의 미래는 결국 그 질문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달 려 있다.
광주폴리는 조형물이 아니다. 머무를 수 있는 장소이자, 이야기가 축적되는 구조이며, 시민이 사유하는 틈이다. 서구의 폴리가 장식적 조형에 머물렀다면, 광주폴리는 한국 전통건축의 누정에서 영감을 받아 비정형의 감응 구조로 재구성되었다. 누정은 명확한 기능을 갖지 않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공간의 의미를 형성한다. 광주폴리는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순환폴리는 선언하지 않는다. 구조로 말하고, 재료로 질문하며, 시민이 그 질문에 응답하게 만든다. 왜 이 재료는 쓰이지 못했는가? 왜 이 기억은 지워졌는가? 왜 이 구조는 사라졌는가? 폴리는 도시가 침묵해 온 질문들을 다시 호출하고, 그 질문이 머물 수 있는 틈을 구조로 만든다.
그 틈은 곧 감응의 공간이며, 리질리언스의 장소가 된다. 광주폴리는 도시에 남는다.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그것은 도시를 다시 짓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도시가 지속되려면, 건축도 순환되어야 한다. 기억도, 재료도, 사람도 함께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건축이 도시를 위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방식이다.
덧붙이는 글 | 이수옥(Lee Su Ok)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실내설계 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학술연구의 일환으로 유휴 산업시설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의 리질리언스 공간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리질리언스 연구는 기존 산업유산을 단순히 보존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현대 도시 안에서 지속가능한 문화·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하여 도시재생과 공간 정의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러닝교육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디자인 및 공간 관련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 ESG위원회 인권전략위원장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연구 분야로는 도시재생과 산업유산 재생, 문화유산의 활용 방안에 대해 보다 실제적이고 통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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