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시대, 폭염은 국가의 책임이다
- 폭염과의 전쟁,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 폭염은 재난이며, 대응은 복지다
올여름도 어김없이 폭염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기록적인 고온과 밤에도 식지 않는 열대야는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으며,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도 폭염으로 수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대형 산불이 잇따르는 등 폭염은 이제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대표적인 복합재난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폭염을 '소리 없는 살인자(Silent Killer)'라고 부른다.
오늘날 전 세계 과학자들은 이러한 극한 폭염의 근본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온실가스는 지구 평균기온을 꾸준히 상승시켰고, 그 결과 폭염의 발생 빈도와 강도, 지속기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고 있다. 이제 폭염은 '예외적인 이상기후'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2018년은 우리나라 기상관측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해였다. 당시 기상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례없는 폭염에 대응했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과 열대야가 사상 최장 기록을 경신했고, 국민들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변화는 최고기온 기록이었다. 우리나라 최고기온은 1942년 8월 1일 대구기상대에서 기록된 40.0℃가 76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8월 1일 강원도 홍천에서 41.0℃를 기록하면서 우리나라 기상관측 역사가 새롭게 쓰였다. 그러나 금년 8월 2일 경남 양산에서 관측된 새로운 기록 42.5도는 우리나라 기후체계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였다.
폭염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에어컨이 설치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과 냉방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쪽방촌 주민이 경험하는 폭염은 전혀 다르다. 홀로 사는 어르신, 노숙인, 야외 노동자, 농업인, 건설근로자, 택배기사와 같은 취약계층에게 폭염은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특히 도시의 쪽방촌은 열섬현상까지 더해져 낮에는 물론 밤에도 실내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폭염은 기후문제인 동시에 복지 문제이며,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폭염 대응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폭염을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재난으로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폭염 취약계층 냉방비 지원 확대, 무더위쉼터의 접근성 개선, 스마트 그늘막과 도시숲 확충, 옥상녹화와 물순환 회복, 열섬현상 저감형 도시계획, 폭염 조기경보 고도화, 농업과 건설현장의 작업시간 조정 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투자이다.
특히 농업은 폭염에 가장 취약한 산업 가운데 하나이다. 고온으로 벼의 등숙률이 떨어지고 과수의 일소 피해가 증가하며, 가축 폐사와 병해충 확산도 심각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 농림위성, 디지털 농업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폭염 예측과 기후위험 관리체계를 구축하여 농업인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기술은 곧 식량안보를 지키는 기술이기도 하다.
ESG의 관점에서도 폭염은 중요한 과제이다. 환경(Environment)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고, 사회(Social)는 폭염 취약계층 보호와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을 요구하며, 지배구조(Governance)는 과학에 기반한 정책과 책임 있는 국가 운영을 요구한다. 결국 폭염 대응은 ESG를 실천하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 한가운데를 살아가고 있다. 폭염은 더 자주, 더 오래, 더 강하게 찾아올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록적인 더위에 놀라는 일이 아니라 기록적인 대응을 준비하는 일이다. 폭염은 자연이 보내는 가장 뜨거운 경고장이다. 그 경고를 외면한다면 미래세대가 치러야 할 대가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 그리고 기후위기에 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의 책무이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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