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우리는 40℃를 넘나드는 폭염을 경험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온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에어컨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고, 밤에도 식지 않는 열대야는 사람들의 일상과 건강을 위협한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사실은 지금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여름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는 오히려 가장 시원했던 여름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유럽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 NASA, 세계기상기구(WMO), 버클리 어스(Berkeley Earth) 등 세계 주요 기후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이미 약 1.4~1.6℃ 상승한 상태다. 불과 1℃ 남짓한 온도 상승이 세계 곳곳에서 폭염과 홍수, 가뭄, 초대형 산불, 해양 생태계 붕괴를 불러오고 있다.
기후과학자들이 더욱 우려하는 것은 앞으로의 변화다. 지구 평균기온이 2℃ 상승하는 순간, 지금 우리가 겪는 폭염은 평범한 여름으로 느껴질 정도의 극한 기후가 일상화될 가능성이 크다. 폭염은 더욱 길어지고, 산불은 계절을 가리지 않으며, 북극과 그린란드, 남극의 빙하는 더욱 빠르게 붕괴할 것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수억 명이 거주하는 해안 도시들은 침수 위험에 놓이고, 농업 생산은 감소하며 식량과 물 부족은 새로운 국제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넘는다. 한 나라의 폭염은 다른 나라의 식량 가격을 올리고, 한 지역의 산불은 대기질을 악화시키며, 한 대륙의 가뭄은 세계 공급망 전체를 흔든다. 기후변화는 이미 경제와 안보, 보건, 외교를 동시에 위협하는 가장 거대한 글로벌 리스크가 되었다.
일부 연구에서는 현재와 같은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구조와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될 경우, 세기 말에는 평균기온이 4℃ 이상 상승할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4℃ 상승은 단순히 지금보다 조금 더 더운 세상이 아니다. 인간 문명이 형성된 이후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지구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로봇은 공장과 병원을 넘어 도심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AI 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문명에 열광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어도, 아무리 정교한 로봇을 개발해도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잃는다면 그 모든 기술은 존재 의미를 잃는다.
기후위기는 AI보다 느리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AI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만, 기후위기는 인간이 살아갈 터전 자체를 바꾼다. AI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기후는 생존의 문제다.
기후위기의 가장 무서운 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라, 사람들이 조금씩 변화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지난해보다 조금 더 더운 여름, 올해보다 조금 더 긴 폭염, 조금 더 잦은 집중호우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적응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구는 지금도 경고를 보내고 있다. 폭염은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니라 새로운 기후가 되고 있으며, 산불과 가뭄, 초강력 태풍과 집중호우는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40℃의 여름은 미래 세대에게는 오히려 견딜 만했던 계절로 회상될 수도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을 통해 번영을 이루었고, 디지털 혁명을 통해 연결되었으며, 이제 AI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혁명은 기술혁명이 아니라 기후혁명일지 모른다. 탄소를 줄이고, 에너지를 전환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와 산업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환경운동이 아니라 문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상상할 때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정작 더 먼저 고민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그 미래에도 인간이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는 지구가 남아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의 폭염은 단지 올여름의 불편함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가 현재를 향해 보내는 가장 강력한 경고장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흘리는 땀은 어쩌면 인류가 경험한 가장 차가운 여름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I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과 예술, 문학,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과 공간의 본질을 탐구해 온 공간철학자이자 건축가이다. 대학에서 31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헌신하였고, 그 공로로 국가로부터 근정포장을 수훈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홍익대학교 건축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 「해체주의 건축의 공간철학적 의미체계」를 통해 ‘공간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했으며, 이를 통해 직관과 반성을 바탕으로 공간과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철학적 사유 체계를 제시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ESG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약 2년 7개월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사회 의장과 비상임이사, LH ESG 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버클리) 건축대학 뉴미디어센터 방문학자로 디지털 건축을 연구하며 미래 건축과 기술, 인간 감성의 융합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 『건축은 나무다』·『건축은 선이다』, 건축 전문서 『Archiroad』 1권(Hyun)·2권(Sun)·3권(Hee), 철학 인문서 『철학의 위로』, 공동연구 저서 『시그널 코리아 2024』·『시그널 코리아 2025』 등이 있으며, 건축과 철학, 문학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통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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