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을 때 잘하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물 또한 있을 때 아끼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물 안보’는 기후위기 시대에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 속에서 이번 강릉 가뭄 사태는 다가올 위험을 미리 대비하라는 경고이자 귀중한 교훈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처럼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정부는 국민에게 단순히 불편을 넘어 생존의 위협까지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비가 올 때 물을 효율적으로 저장·관리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을 정비하고 지역별 저수조와 소형 댐을 확충해 극심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이러한 물 관리 시스템은 생수와 농수 뿐 아니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산불 진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8월 30일 오후 이재명 대통령은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를 찾아가 가뭄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강릉시 ‘재난 사태 선포’를 지시한 장면은 이번 가뭄 사태가 단순한 지역 불편을 넘어 물 문제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대통령은 “강릉 지역의 급수난 해소를 위해 전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여력이 있는 지자체의 식수 기부와 군·소방의 급수차 적극 활용을 지시했다. 그리고 장단기 대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긴급 지시는 국가 재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미리 재난을 예측하고 준비했다면 ‘재난 선포’까지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분산적·다층적 물 저장 체계 필요성
기후 위기 시대에 물 관리는 더 이상 단순히 지역 행정의 작은 과제가 아니다. 충분한 강수 시기에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하느냐가 가뭄과 홍수를 막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한 댐 하나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소형 저수지와 지역 단위의 저류조, 빗물 저장 시설, 지하수 보충과 표층수 연계 운영 등 다층적이고 분산된 물 저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소규모 저수지는 농업이나 생활용수의 비상 용수로 활용하고, 대형 저수지는 장기 저장과 도시·산업용수의 안정적 공급 장치로서 서로 보완하며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전 세계 가뭄 위기, 물 부족이 드러내는 인류와 사회 기반의 취약성
전 세계적으로 가뭄은 더 이상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과 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영국은 2025년 현재 역사상 가장 건조한 여름을 겪으면서 일부 지역에서 물 호스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특히 요크셔 지역에서는 저수지 수위가 정상 수준 이하로 떨어지자 강에서 직접 물을 끌어 올려 쓰는 방안이 검토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하루 24시간 격일 단수라는 전례 없는 조치를 시행해야 했다. 보고타가 도시 주변의 저수지에만 의존해온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면서 정수장 확충이나 지하수 활용 등 인프라 다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지중해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남부 피레네 지역을 포함해 무려 22개월간 이어진 최장기 가뭄 속에서 각국 정부는 해수 담수화, 지역 간 물 수송, 담수화 시설 확충 등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도 세계 최대 인공 담수호인 카리바 호수의 수위가 급감하면서 수력 발전량이 80%나 줄어들었다. 그 결과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고, 이는 물과 전력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남미 우루과이 역시 수도 몬테비데오의 상수원 저수지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정부는 WHO 권고 기준의 두 배에 달하는 염분 농도의 브라키시 워터(brackish water)까지 공급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가뭄 사례는 물 관리에 있어 선제적 대비의 절실함을 일깨우고 있다. 물 부족은 단순히 생활용수의 불편을 넘어 에너지, 산업, 식량, 나아가 사회 전체의 안정과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로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정책적 대응 없이는 피해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를 포함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선언적이고 단기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탄소 배출 증가로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기상이변이 빈번해지는 현실 속에서 비상사태를 선언하거나 많은 공약과 선언은 화려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실현 가능한 인프라 투자나 제도적 개혁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재난 선포’가 아닌 ‘장기적 전략’이 답이다
이번 강릉 사태에서 보듯이 정부가 재난 선포를 내린 뒤에야 단기적 물 공급 대책을 총동원하는 모습은 기후위험을 예측해 장기적·구조적으로 대비하는 대신 ‘사후 응급처방’에 의존해 온 안이한 태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물 관리는 한 나라의 안보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미래 예측과 준비 없이 순간 대응만으로 이 사태를 처리하는 것은 국민의 생활권과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물 관리’ 전략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기존 자원을 활용한 긴급 급수 체계를 가동하고, 취약 지역에는 선별적인 물 공급과 함께 임시 저장 시설을 신속하게 확충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정책적·제도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전국 단위의 거점 물 안보 댐을 건설하고, 중·소형 저수지와 분산형 저수 시스템을 확충하며, 지하수 재충전과 표층수 연계 운용을 포함한 통합 물 관리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가뭄 조기경보시스템을 정비하고 지역별 대응계획을 표준화하며, 물·에너지·식량을 아우르는 통합적 물안보 인프라 투자 우선순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시점이다.
또한 재난 대비 예산을 상시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기금 제도를 마련하고 물 관리 정책 결정에 기후 리스크 평가를 법적 기준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산림 복원과 습지 보전·복구 등 자연 기반 해법을 통해 유역의 물 보유 능력을 높이는 노력도 함께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재난 선포를 넘어선 선제적 수자원 관리의 필요성
이번 강릉 가뭄에서 이뤄진 ‘재난 선포’는 이미 발생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마지막 조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지역적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수자원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와 재정적 투자를 신속히 결단해야 한다.
말이 아닌 제도와 예산, 그리고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기술과 인프라가 함께 작동할 때에야 비로소 물 위기는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바뀔 수 있다. 물 부족은 더 이상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삶 속에서 현실로 다가온 ‘생존의 문제’이다. 국가가 미래를 예측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만이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강릉 가뭄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 정부가 더 이상 사후 대응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전국적으로 소·중형 저수지와 저류 시설을 확충하여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다음으로, 지하수와 표층수를 연계해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가뭄 조기 경보 시스템과 지역 대응 체계를 강화해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중장기 정책과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기에 내린 비를 최대한 저장하고 장기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 단위의 소규모 댐과 저류 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이 가장 적은 예산을 들여 안정적 물 공급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번 강릉 가뭄 사태가 ‘재난 선포’라는 극단적 조치로 이어진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이는 단순히 지역적 불편을 넘어 국가 차원의 물 안보 관리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긴급한 과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과 국가적 대응 전략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시사한다.
윤재은 / Jaeeun Yoon
예술, 문학, 철학적 사유를 통해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철학자이자 건축가이다. 현재 다가올 미래도시와 기후위기를 고려한 ESG에 대해 연구 하고 있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간디자인학과, 테크노전문대학원 공간문화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미국 뉴욕 프랫대학 인테리어디자인 석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한국ESG위원회 이사장,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이사회 의장, LH ESG 소위원회 위원장, 2022년 대한민국 ESG소통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미국의 UC버클리대학 뉴미디어 센터에서 1년간 방문학자로 있었다. 저자는 ‘해체주의 건축의 공간철학적 의미체계’ 박사 논문을 통해 공간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영역을 개척하였다. ‘공간철학’이란 반성을 통해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관을 통해 무형의 공간과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 건축 전문서적 ’Archiroad 1(Hyun), Archiroad 2(Sun), Archiroad 3(Hee)‘, 철학 인문 서적 ‘철학의 위로’, 미래도시 연구 시그널코리아 2024(공저), 시그널코리아 2025(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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