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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은 칼럼] 강대국도 전쟁에서는 승자가 될 수 없다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7.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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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러시아의 국기 그리고 포에니 전쟁. [사진=gemini 생성이미지]

 

칼보다 오래 남는 것은 폐허가 아니라 평화다


20세기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대립했던 냉전의 시대였다. 양국은 핵무기를 앞세워 서로를 견제했지만, 역설적으로 직접적인 전면전은 피했다. '상호확증파괴(MAD)'라는 공포가 오히려 평화를 유지하는 장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는 두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질서 속에서 움직였고, 어느 누구도 이들의 군사력에 맞설 수 없었다.


그러나 21세기의 국제질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장기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미국 역시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 속에서 중동의 긴장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국력이 작은 국가 또는 지역 세력과 충돌하고 있지만, 누구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진실을 보여준다.


군사력은 전쟁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평화를 만들지는 못한다.


과거에는 거대한 군대가 국경을 넘어 수도를 점령하면 전쟁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전은 다르다. 드론과 정밀유도무기, 사이버전, 정보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여론전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국가 전체의 소모전으로 변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라 하더라도 상대 국가의 국민 의지와 국제사회의 정치적 압력까지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역사를 돌아보면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기원전 3세기,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을 치렀다. 결국 승리는 로마의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과 국력이 소모되었다. 승리한 로마조차 전쟁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 이후 로마는 이집트를 정복하며 지중해 세계의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집트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제국은 끊임없이 국경 방어와 반란 진압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영토는 넓어졌지만 평화는 멀어졌다.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지만 작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저항을 완전히 꺾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의 사후 제국은 빠르게 분열되었다.


근대에도 같은 역사는 반복된다.


나폴레옹은 유럽 대부분을 정복했지만 러시아 원정에서 무너졌고, 히틀러 역시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유럽을 제패했지만 결국 독일은 폐허 속에서 전쟁을 마감했다. 미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원하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역사는 하나의 공통된 결론을 말하고 있다.


강한 군대가 반드시 강한 평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이 길어질수록 승자와 패자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경제는 무너지고, 젊은 세대는 희생되며, 난민은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다. 식량과 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고 국제 공급망은 흔들린다. 오늘날의 전쟁은 전장에 있는 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의 일상까지 위협한다.


특히 핵무기와 인공지능, 자율무기체계가 등장한 오늘날의 전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 한 번의 오판이 인류 전체의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힘은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력이며, 무기가 아니라 신뢰이고, 승리가 아니라 공존이어야 한다.


평화는 결코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큰 용기와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지혜가 요구되는 선택이다.


로마가 남긴 것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법과 도로, 행정체계와 문명이라는 유산도 함께 남겼다. 인류가 오늘 기억하는 것은 수많은 전투의 이름보다 그들이 남긴 문명의 가치이다.


오늘의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세계의 모든 강대국 역시 역사의 같은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과연 미래 세대는 이 시대를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한 시대'로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대화를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든 시대'로 기억할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지만, 교훈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더 많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능력이 아니라, 더 많은 생명을 지켜내는 책임에 있다.


인류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전쟁의 참혹함을 충분히 경험했다. 이제는 누가 더 강한가를 증명하는 시대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가를 경쟁해야 할 시대다.


칼은 적을 굴복시킬 수는 있어도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그리고 마음을 얻지 못한 승리는 결국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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