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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예술을 읽다 ②]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에 동물이 올라간 까닭…코트디부아르 ‘구로 마스크’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9.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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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경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는 구로족 가면,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한 얼굴에 결합
  •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위에 양과 물소·영양의 특징, 자연과 인간을 연결한 독특한 조형세계
  • 해외 박물관·학술자료 속 구로 가면, 장식품 넘어 공동체의 질서와 정신세계 담아

[편집자주] 〈아프리카 예술을 읽다〉는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소장·전시 작품을 하나씩 만나며 작품에 담긴 아프리카 각 지역의 역사와 자연,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ESG코리아뉴스의 문화 연재시리즈이다. 조각과 가면, 생활 도구와 장신구 등 한 점의 작품에서 출발해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 바라보기 쉬웠던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와 이야기를 보다 상세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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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트디부아르(Côte d’Ivoire)의 ‘구로 마스크(Guro Mask)’를 AI를 이용해 재 작업한 이미지. [사진=Gemini 생성 이미지]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형상을 더하면 무엇이 될까.

 

강원 영월의 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는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이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가면이 있다.

 

코트디부아르(Côte d’Ivoire)의 ‘구로 마스크(Guro Mask)’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이 가면은 기우제나 추수와 관련한 감사 의식 등 농사와 관계된 의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약 42cm이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가면과는 상당히 다르다.

 

기본적인 얼굴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머리 위에는 동물의 형상이 복합적으로 표현돼 있다. 박물관은 양의 모습과 함께 물소와 영양의 뿔이 조각돼 있는 점을 이 가면의 독특한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의 얼굴 위에 서로 다른 동물의 특징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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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전시된 코트디부아르의 원본 ‘구로 마스크’. 박물관은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에 양과 물소·영양의 특징을 결합한 독특한 가면으로 소개하고 있다.[사진=ESG코리아뉴스]

 

사람인가, 동물인가

 

구로족의 가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는 바로 이처럼 인간과 동물을 하나의 형상 안에서 결합하는 방식에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이 소장한 구로 가면 가운데에도 사람의 얼굴과 영양을 연상시키는 동물 형상이 결합된 작품들이 존재한다. 한 작품은 얼굴 위에 뒤로 휘어진 영양의 뿔을 배치하고 있으며, 박물관은 구로족의 자울리(Zauli) 가면이 지역에 따라 역할과 모습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구로의 동물 가면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관련 연구와 소장품 자료에는 영양뿐 아니라 물소·코끼리·하마·염소·개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특히 ‘Dye’ 또는 ‘Je’로 불리는 가면군에서는 여러 종류의 동물 가면이 함께 등장했으며, 영양의 경우에도 뿔의 길이와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를 구분한 사례가 확인된다. 

 

따라서 영월에서 만나는 구로 마스크의 머리 위에 여러 동물의 특징이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장식을 화려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만 보기 어렵다.

 

사람과 동물, 마을과 숲을 하나의 조형물 안에 연결하는 구로 예술의 특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었을까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가면의 얼굴이다.

 

구로 미술에서 여성의 얼굴은 중요한 조형 주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구로족의 ‘구(Gu)’ 가면은 섬세한 여성의 얼굴을 표현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구로의 전통에서 구(Gu)를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하며, 정교한 머리 모양과 가늘게 표현된 눈, 돌출된 이마와 위로 향한 턱 등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구(Gu) 가면에 대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설명을 보면 구로족의 가면은 각각 따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관계를 맺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잠블레(Zamble)는 영양을 비롯한 여러 동물의 특징이 결합된 신화적 존재로 표현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구(Gu)가 그에 대응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인류학자 클로디 악세르(Claudie Haxaire)의 연구에서도 잠블레는 복합적인 동물 형상, 구는 섬세한 여성의 얼굴을 가진 존재로 설명된다. 이 연구는 구로 가면이 단순한 조각 유형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는 가면들의 체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동물의 형상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것이 구로 조형문화에서 전혀 낯선 방식은 아니라는 얘기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자연은 삶의 조건이었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이 구로 마스크가 기우제나 추수 감사와 같은 농경 관련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해외 연구자료를 함께 살펴보면 구로족의 모든 가면을 하나의 용도로 설명할 수는 없다. 구로 가면은 종류와 지역에 따라 장례와 제의, 공동체의 질서 유지, 보호, 축제와 오락 등 서로 다른 기능을 가졌다. 1978년 아비장대학교 학술지에 실린 베낭스 카쿠(Venance Kacou)의 연구도 구로 사회에서 가면이 단순한 미술품을 넘어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으며 시대 변화에 따라 그 기능 역시 변화해 왔다고 설명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역시 구로 사회에서 일부 가면은 종교적·제의적 성격을 갖는 반면, 다른 가면은 보다 세속적인 공연과 오락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구분한다. 

 

구로족의 삶에서 농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도 가면을 이해하는 하나의 배경이 된다. 관련 연구를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구로 사회의 농경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나뉘어 있었으며, 농사일이 줄어드는 건기에는 남성들이 사냥과 직조, 가면과 의례용 조각 제작 등에 참여했다. 농경의 주기와 조각 제작의 시간이 서로 분리돼 있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영월의 구로 마스크에 대한 박물관의 농경 의식 관련 설명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비를 기다리고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일은 자연환경과 직접 맞닿아 있는 삶이었다. 가면에 사람뿐 아니라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각각의 동물이 특정한 의미를 상징한다고 단정할 만한 학술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 만큼, ‘물소는 힘’, ‘영양은 풍요’와 같은 식으로 현대적인 상징을 임의로 부여할 수는 없다.

 

얼굴 하나에 담긴 두 개의 세계

 

구로 마스크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경계에 있다. 얼굴만 바라보면 사람이다. 그것도 아름답게 표현된 여성의 얼굴이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 위로 올리는 순간 동물의 세계가 나타난다. 양과 물소, 영양을 연상시키는 형상과 뿔이 사람의 머리 위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동물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실제로 구로의 대표적인 가면인 잠블레 역시 여러 동물의 특징을 결합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구로 가면을 연구한 학술자료는 이러한 복합성과 모호성 자체가 구로 가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가면을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물건’으로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가면을 쓰고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추는 순간 조각은 사람의 몸과 결합한다. 여기에 의상과 음악, 공동체가 함께하면서 하나의 가면은 정지된 조각품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바뀐다.

 

오늘날 박물관 진열장 안에서 보는 아프리카 가면과 실제 공동체 안에서 사용되던 가면 사이에 차이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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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조명행 관장이 구로 마스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ESG코리아뉴스]


코트디부아르에서 영월까지 온 얼굴

 

구로족은 오늘날 코트디부아르 중서부를 중심으로 살아온 민족 집단으로, 남부 만데계 언어를 사용한다. 주변의 바울레(Baule), 야우레(Yaure) 등 여러 집단과 오랫동안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고, 이러한 교류는 가면과 조각의 형태에도 나타난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은 인접한 야우레의 가면에서도 바울레와 구로의 조형적 영향이 함께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구로 마스크’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작품을 같은 의미와 기능을 가진 가면으로 묶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어떤 가면은 신성한 존재와 연결됐고, 어떤 가면은 장례에서 등장했으며, 어떤 것은 축제와 공연의 주인공이 됐다. 시대가 흐르면서 본래의 기능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형태의 가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 가면에서 반복해서 발견되는 것이 있다. 사람과 동물, 아름다움과 힘, 마을과 자연을 하나의 형상 안에 결합하려는 상상력이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구로 마스크도 그 가운데 한 점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만들고 그 머리 위에 다시 동물의 세계를 새겼다. 한 덩어리의 나무 안에서 사람과 자연이 만난다.

 

1편의 ‘조화로운 세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세계를 떠받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두 번째 작품인 ‘구로 마스크’는 인간의 얼굴 위에 자연의 형상을 겹쳐 놓는다.

  

왜 당시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만으로 가면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는 순간, 영월의 벽에 걸려 있던 작은 나무 가면은 단순한 이국적 장식품을 넘어 코트디부아르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상상력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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