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모래언덕과 하얀 대지 위에 남겨진 검은 나무들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풍경
- 한때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던 땅에 남은 수백 년의 자연
[편집자 주] ESG코리아뉴스는 지구 곳곳에 숨겨진 경이로운 자연과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하는 기획 연재 〈아름다운 지구이야기〉를 선보인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지형부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의 이야기까지, 아름다운 풍경에 담긴 자연의 역사와 가치를 함께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다채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그 아름다움을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해야 할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의 사막 깊숙한 곳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숨어 있다. 붉은 모래언덕이 끝없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눈부시게 하얀 평원이 나타난다. 그 위에는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검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오래전 생명을 잃은 나무들이지만, 마치 살아 있는 듯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나미비아 나미브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Namib-Naukluft National Park)에 자리한 '데드블레이(Deadvlei)'의 풍경이다.
데드블레이는 '죽은 습지'라는 뜻이다. 영어의 'Dead'와 아프리칸스어로 습지나 얕은 호수를 의미하는 'Vlei'가 합쳐진 이름이다. 지금은 물 한 방울 찾아보기 어려운 메마른 땅이지만, 오래전에는 이곳에도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랐다.
데드블레이가 특별한 이유는 서로 다른 색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있다. 하얗게 마른 땅 위로 검은 나무들이 서 있고, 그 뒤에는 붉은 모래언덕이 거대한 벽처럼 솟아 있다. 여기에 짙푸른 하늘까지 더해지면 네 가지 색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완성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색을 배치해 만든 작품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풍경은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다.
데드블레이가 자리한 나미브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거대한 모래언덕으로 유명하다. 높이가 300m를 넘는 모래언덕들이 이어지고, 데드블레이 인근에는 '빅 대디(Big Daddy)'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거대한 모래언덕도 자리하고 있다.
붉은 모래언덕에 둘러싸인 하얀 평원은 오늘날 메마른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처음부터 이런 풍경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전 이곳에는 차우차브강(Tsauchab River)의 물이 흘러들었다. 나우클루프트 산지에서 시작된 강물은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에 사막 안쪽까지 흘러왔고, 낮은 지대에 물이 모이면서 일시적인 습지가 만들어졌다. 물이 공급되던 땅에는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했다.
그 나무가 바로 낙타가시나무(Camel Thorn Tree)다. 학명은 바첼리아 에리올로바(Vachellia erioloba)로, 아프리카 남부의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다. 뿌리를 깊이 내려 땅속 수분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가 적게 내리는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한때 데드블레이에는 이러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지금처럼 하얀 땅 위에 죽은 나무만 남아 있는 모습이 아니라,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의 지형이 조금씩 달라졌다.
사막의 모래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바람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쌓이면서 모래언덕의 모양과 위치를 바꾼다. 데드블레이 주변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이어졌고, 점차 높아진 모래언덕이 차우차브강의 물길을 가로막게 됐다.
물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자 습지는 서서히 말라갔다. 땅속 수분도 줄어들면서 나무들은 생존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얻지 못했고, 결국 하나둘 말라 죽었다.
오늘날 데드블레이에 남아 있는 나무들은 약 900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한 시기와 실제로 말라 죽은 시기가 모두 같지는 않지만, 수백 년 전에 생명을 잃은 나무들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그렇다면 죽은 나무들은 어떻게 오랜 세월 썩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사막의 건조한 환경에 있다. 일반적으로 나무가 죽으면 미생물과 곰팡이 등에 의해 서서히 분해된다. 그러나 데드블레이는 비가 매우 적고 공기가 건조해 나무가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강렬한 햇빛을 받은 나무들은 검게 변했고, 줄기와 가지는 마른 상태로 남게 됐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수백 년 전 생명을 잃은 나무들의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나무마다 굵기와 형태가 다르고, 가지가 뻗은 방향도 제각각이다. 어떤 나무는 두 팔을 벌린 사람처럼 보이고, 또 다른 나무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듯하다.
죽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지만, 이상하게도 쓸쓸함보다는 신비로움이 먼저 느껴진다. 나무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오래전 이곳에 생명이 있었다는 사실도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무들이 서 있는 하얀 땅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데드블레이의 바닥은 과거 물이 고이던 곳에 미세한 점토가 쌓이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물이 사라지고 땅이 건조해지자 점토층이 굳어졌고, 표면에는 크고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가까이에서 보면 하얀 대지 위로 불규칙하게 갈라진 무늬가 이어진다. 마치 오랜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위에 검은 나무들이 서 있고, 뒤편으로 거대한 붉은 모래언덕이 펼쳐져 있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변 모래언덕이 붉은빛을 띠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모래에 포함된 철 성분이 오랜 시간 산화하면서 붉은색과 주황색 계열의 색을 띠게 된 것이다.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모래언덕은 밝은 주황색으로 빛나기도 하고, 짙은 적갈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색의 변화는 이른 아침에 더욱 아름답게 나타난다.
해가 떠오르면 낮게 비치는 햇살이 모래언덕의 한쪽 면을 비추고, 반대편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붉은 모래와 어두운 그림자가 뚜렷한 경계를 이루는 동안 하얀 평원 위의 검은 나무들은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이 흐르면서 햇빛의 방향이 달라지면 풍경도 조금씩 바뀐다.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무들이지만 아침과 낮, 해가 기울 무렵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 나무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빛과 그림자가 변하면서 사막은 매 순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독특한 색채와 풍경 덕분에 데드블레이는 세계적인 자연사진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의 매력은 아름다운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데드블레이가 속한 '나미브 모래바다(Namib Sand Sea)'는 201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나미브 모래바다는 약 307만 7,700헥타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 오랜 시간 바람과 해류, 지질작용이 어우러지며 만들어진 독특한 사막 지형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나미브 사막은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안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환경에서도 안개는 일부 생물에게 소중한 수분 공급원이 된다.
사막이라고 해서 모든 곳에 생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극도로 건조한 환경에 적응한 곤충과 파충류, 포유류 등이 살아간다. 일부 생물은 안개에서 수분을 얻고, 또 다른 생물은 뜨거운 햇빛을 피해 모래 속이나 그늘에서 생활한다.
데드블레이의 죽은 나무들과 주변 사막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자연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물길이 끊긴 곳에서는 나무들이 생명을 잃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건조한 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데드블레이는 나미비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소수스블레이(Sossusvlei)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한 뒤 모래언덕 사이를 걸어 하얀 평원에 도착한다. 눈앞에 펼쳐진 붉은 모래언덕과 검은 나무들의 풍경은 오랜 이동 끝에 만나는 특별한 장면이다.
하지만 데드블레이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 담긴 자연의 시간도 생각하게 된다.
한때 강물이 흘렀던 땅이 메마른 평원으로 변하고, 푸른 잎을 달고 자라던 나무들이 검은 줄기만 남긴 채 서 있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모래가 물길을 바꾸었고, 물의 공급이 끊기면서 나무들이 살아가던 환경도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인간 활동으로 발생하는 기후변화와는 구분되는 자연적인 기후·지형 변화의 결과다. 그렇지만 물의 흐름과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일이 그곳에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지만, 사실 지구의 풍경은 지금도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다. 강물이 흐르던 곳이 사막이 되기도 하고, 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새로운 언덕을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눈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도 긴 시간 속에서는 쉼 없이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데드블레이의 나무들은 더 이상 잎을 틔우지 못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생명을 잃은 나무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그 줄기와 가지에는 한때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던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미비아의 사막에는 오늘도 뜨거운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이 모래언덕을 스쳐 지나간다. 하얀 대지 위에 선 검은 나무들은 수백 년 전과 다름없이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생명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풍경은 지금도 지구가 지나온 긴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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