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미얀마 여행을 마치고 <란저우>로 날아왔다. 서쪽 사막의 시작, 위그루인들의 고향. 중국 대륙의 남쪽을 샅샅이 훑고 떠나 한 달이 더 지나서 왔다. 만일 쿤밍에 트렁크을 맡겨두고 떠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지긋지긋한 생각이 든다. 그 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이동은 내가 살던 소인국을 생각하면 안된다. 어마어마한 국토이다. 쿤밍에서 여기까지만 해도 1800km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이다. 자차로 쉼 없이 달려도 대략 스무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 대륙인들의 기질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내가 지금까지 온 거리에서 한 두어 배쯤 더 가면 유럽의 끝, 포루투갈의 리스본까지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리스본에서 파리까지 버스로 이동해 본 적이 있다. 약 36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이틀 밤을 버스에서 잤다. 버스 안에는 3명의 운전기사가 있었고 번갈아 잠을 자며 운전을 했다.
우리나라 끝에서 끝까지 가도 500km나 될까? 그럼 5시간 정도면 가능할까?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이 거대한 대륙에 가늠이나 갈까? 그러다 보니 우리 국토가 얼마나 옹색한가, 그런데 그 안에서 온갖 정치꾼들의 농간에 남북으로, 이념으로 갈라져 버렸으니 얼마나 정신세계들이 파편화 되었겠는가?
어제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신라의 3국 통일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나라와 나라 간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최초의 외세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이룩한, 반쪽도 안되는 통일이었다고.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지도 못한 채, 그 후예들인 발해와 겨우 남북국 시대로 대치를 하고 말았으니. 그럴 때마다, 차라리 대고구려나 발해가 이 나라 통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올 선생의 <중국 일기>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비단, 나만 했을까.
광활한 국토, 한국인의 생각을 압도하는 대륙, 세계에서 가장 넓은 거국 중의 하나.
모래바람 울어 에이는
머나먼 서역,
앞 사람 뼈를 이정표 삼아
타클라마칸을 넘었다는
혜초라는 사내
무엇이 그를 이 먼 땅까지 불렀을까
모래바람만 자욱하게
또 하나 산을 옮긴다
그 생명이 잠들어 있는 막고굴
바람이 불자,
‘왕오천축국전’ 책장 속에서
그가 부스스, 깨어난다
실크로드 모든 길이
해오라기처럼 만나는 곳
아스라하게 펼쳐진 열사
바람이 불어 에이자
명사산이 또 아이처럼 칭얼댄다
먼 동쪽에서 온 사내도
모래 바닥에 퍼질러 앉아
지나온 길을 가늠해 본다.
천 년 위그루족 처녀의 치맛자락이
무카무 따라 사락이는 월야천
반짝, 외눈박이처럼 눈을 뜬다
그 눈이 한없이 젖어
서녘 하늘에 홀로 떠 있다.
먼 제국의 시대
서쪽 방어를 위해 만들었다는
옥문관은 이제 모래바람만 자욱하고
만리장성 서쪽 끝 자위관에는
아무도 없다
모래 울음만 가득하다
피비린내 묻어나던
제국의 왕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세상의 끝에 나앉으니
천 년 세월이 아스라하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윤재훈
사막, 혜초스님이 불법을 찾아 혈혈단신 펄펄 끓는 팔열 지옥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갔다는 곳, 앞 사람의 뼈를 이정표 삼아 목숨을 걸었다는 머나먼 서역.
간쑤성의 성도, 실크로드의 길목, 한때는 황금도시라고 불리던 곳, 5세기부터 11세기까지 불교 연구의 중심지, 370만여 명이 사는 스텝 지역 입구. 이제는 서북지방 최대의 공업 도시로 변해버린 후 세계에서 30개 안에 드는 최악의 공기질을 자랑하는 <란저우>, 엄청난 거리의 위그루 인들이 사는 사막 지대가 시작되는 곳, 하지만 우리나라로 봐서는 큰 도시이지만 이 광활한 대륙에서는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닌 곳. 어딜 가나 사람의 홍수다.
티벳보다 더 티벳다운 오체투지의 행렬, 산간 시골 마을, 우리나라 경복궁처럼 거대한 라브랑 티베트교 사원이 있는 곳, 가만히 있어도 정신이 고요해지고 맑아지는 것 같은 마음의 고향 <샤허>
천 리 길을 와서 경복궁처럼 넓은 사찰을 한 바퀴 빙 돌면서 한 발을 뗄 때마다 오체투지를 하는 젊은 여인, 그녀는 건강도 집안 살림살이도 별 걱정 없이 살만하다고 하는데, 무엇이 그녀를 이 먼 곳까지 불렀을까?
한 발을 뗄 때마다 온 몸이 쓰러질 듯
땅바닥으로 쓰러지는 그녀가 경건하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지극하게 할까?
그녀의 앞에 서면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칭하이성의 성도, 티베트 고원의 동쪽 해발고도가 2,200 미터나 되는 곳, 2,1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농업의 발전으로 경제적,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시닝), 중요한 교통 요충지로 비단길이 연결되던 곳,
‘중국 여름 휴양지 수도’,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거대한 칭하이호가 있어 숨통을 탁 트이게 해주는 곳, 티베트 6대 승원의 하나로 번영했던 곳, 중국 북부에서 가장 큰 모스크 중 하나인 둥관 모스크, 세계에서 가장 긴 불화가 있는 박물관.
한족,회족,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 26개의 민족이나 산다는 땅, 한나라때는 곽거병이 흉노를 물리쳐 실크로드의 요충지가 된 곳, 물과 흙이 좋고, 산물도 풍부하여 「돈의 장예」라는 별명까지 붙은 땅. 「나라의 팔과 겨드랑이를 뻗쳐, 서역까지 통하다」(张國臂掖,以通西域)는 건조한 도시 <장예>, 하서주랑의 중간쯤에 위치하며, 무지개떡처럼 곱게 빗은 칠채산이 빛나는 곳.
명나라 때 건축된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이곳까지 치달려온 어마어마한 성벽. 인공위성에서도 보이는 곳. 실크로드의 관문. 서쪽 끝 <자위관(嘉峪關)>에서 바라본 6천km 장성, 굽이굽이 1만 5천리, 한번 이곳에 일군으로 뽑혀온 사람은 결국 죽어서야 나갈 수 있었다는 곳. 남편을 기다리다 아내는 하릴없이 늙어갔다는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 남쪽으로 치롄산맥, 북쪽으로 용수산과 마종산이 접해 있는 곳.
오아시스 도시, 불교경전을 찾아 수많은 불교 승려와 순례자들이 지나가던 곳. 그 과정에 수천의 불상으로 이루어진 <막고굴>이 생겨난 곳.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그 굴속에서 발견되어 우리에게 특별해진 <둔황>, 이 먼 사막까지 찾아온 사람들로 붐비는 야시장<사주시장>, 실크로드의 남쪽과 북쪽 길이 만나 교역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 바람이 불면 울어 애는 <명사산>과 초승달 모양으로 슬피 우는 것 같은 <월야천>, 한나라 시대 서쪽 방어를 위해 만들었지만,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양관>과 <옥문관>, 그리고 <돈황 고성>
자위관쯤에서 우연히 중국 소녀를 만났다. 아스라하게 스텝 지역이 펼쳐지는 고성에서 만나더니, 게스트 하우스에서 또 만났다. 하긴,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없는 곳이니 배낭 여행자들의 숙소는 뻔하다. 그 인연이 돈황까지 이어졌다.
명사산 모래를 걸어 올라 함께 모래 썰매를 탔으며, 낙타의 등에서도 깔, 깔, 거렸다. 그 애는 헤어지면서 나에게 과자를 비롯한 먹거리를 잔뜩 안겨주었다. 아마도 장기 배낭여행자가 측은해 보여서였을까? 나는 그 소녀가 준 먹거리를 오랫동안 아껴서 먹었다.
덧붙이는 글 I 자재自在
자재는 자유자재(自由自在)의 자재이다. “환경이 아프면, 내 몸도 아프다”라는 마음으로 30여 년 가까이 일체의 세제와 퐁퐁를 쓰지 않고, 일회용품과 비닐, 비누나 치약 등도 가능한 쓰지 않는다. 물수건이나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고 겨울에는 내복을 입고 실내 온도를 낮춘다. 자가용은 없으며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먼 곳은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나의 화석 발자국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홍익대학교를 비롯한 몇 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한강 1,300리, 섬진강 530리, 한탄강, 금강, 임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해안선만 따라 자전거로 80일 동안 5830km를 순례했다. 다시 세계가 궁금해져 5년 동안 ‘대상(隊商)들의 꿈의 도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오지 배낭순례를 했다.
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해양 문학상, 전국 문화원 연합회 논문공모 우수상, 시흥 문학상 등 몇 개의 상을 받았다. 2020년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아지트갤러리‘국제 칼렌다 사진전’에 참여하였다. 2016년 ‘평화, 환경, 휴머니즘 국제 영상제’에 <초인종 속 딱새의 순산, 그 50일의 기록>이라는 작품으로, '환경부 장관 대상'을 수상했다. 평생 다양한 기관에서 무료봉사를 해오고 있으며,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십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또, 노원, 영등포 50+센터 등에서 2년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내 마음에 안식처 서울역사여행’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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