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가 보면, 사라지고
모래 바람 속에서 환영처럼
다시 사라지고
모래산이 울면서, 화염산처럼
이 세상 숨쉬는 것들을
파묻어 버리는 곳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팔열(八熱)의 모래밭
위그루인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혜초 스님도 지나가는가 싶고
문득, 어머니가 물 한 바가지 들고
나타날 것도 같은,
-‘물기 하나 없는 전생(前生)’, 윤재훈
인천에서 배를 타고 광활한 대륙 중국의 동쪽 끝 단동에 내려 완행열차에 몸을 실으니, 열차는 끝없이 서쪽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땅, 중국의 7대 고도(古都),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핑야오와 뤄양, 시안을 지나오면서 우리의 옛 역사의 향취도 함께 묻어 나왔다.
천년 고도 진시황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던 곳, 그러나 그 위대한 명성도 겨우 2대 15년 만에 끝나버렸던 나라.
위그루의 땅 초입 성도인 란저우에서 샤허, 시닝, 장예, 자위관, 혜초스님의 흔적이 어린 둔황의 사막을 지나 도착한 <투르판>, 도미토리가 딸린 게스트하우스도 귀한 곳. 끝없이 펼쳐지는 스텝지역과 사막만 눈시리게 보고 지나왔다.
갈수록 황량한 땅은 깊어지고 지하천이 발달하여 땅 아래에서 시원하게 머무르며, 그 물로 온갖 식수를 사용하며 사는 <투루판> 사람들, 지열이 높아 중국에서 가장 당도 높은 포도와 하미과가 나오며 야채와 같은 채소류도 풍부한 도시.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이 270일에 달하는 곳, 분지 내는 연간 3,200시간 이상의 일조량이 풍부한데, 강수량은 적어 매우 건조한 땅. 수천 년 모든 물기가 증발되어 버린 응회암 지역에는,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 왕조들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는 황토 사막.
아득한 사막,
신기루처럼, 오아시스가
있을 것도 같아,
가다가 보면, 사라지고
모래 바람 속에서 환영처럼
다시 사라지고
모래산이 울면서, 화염산처럼
이 세상 숨쉬는 것들을
파묻어 버리는 곳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팔열(八熱)의 모래밭
위그루인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혜초 스님도 지나가는가 싶고
문득, 어머니가 물 한 바가지 들고
나타날 것도 같은,
발 끝에 걸리는
바스라져 가는
동물의 두개골 하나
물기 하나 남아있지 않는 전생
또 다시 떠있는 신기루
이쯤에서 이 생을 그만둘까 하다가
바람 소린 듯, 물소린 듯
뭔가가 언뜻, 들리는 듯도 하여
헛 것처럼, 환영처럼
또 다시 신기루인가
응회암*처럼 말라버린 입술에는
쉰 내마저 사라지고
허우적거리며 다시,
모래 계곡을 들어가는 벌레 한 마리
더 이상 마를 것도 없는 명사산
-‘물기 하나 없는 전생(前生)’, 윤재훈
그 사막 속에서도 물을 많이 쓰는 면화 재배가 활발한 곳, 하사와 병장의 ‘목화밭’이라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곳, 그 면화 때문에 거대한 아랄 바다가 말라 버렸다는 아득한 서쪽, 중앙아시아가 문득 생각나는 땅.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
10리를 가다 낡은 배를 만났다
안에는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사막의 모래바람만 아프게 몰려다니며 뱃전을 때렸다
그때마다 녹슨 쇠들이 쉰 소리를 냈다
20리쯤 더 가다가 이제는 모래밭이 되어버린
포구를 만났다
여기도 언젠가는 비린내 나는 선창으로 번성했을 것이다
힘 오른 보리 숭어가 튀어 오르고
방파제에서 힘차게 도래질하는 돔들로, 낚시꾼들이 왁자했으리라
구릿빛 팔뚝의 사내들은 허름한 식당에 모여
서로의 어획고를 무용담처럼 자랑하며, 거친 입담들을 쏟아냈으리라
고향을 떠나온 아낙은 구깃구깃한 종이에 일수를 찍으며
엄마에게 맡겨두고 온, 아이와 만날 날을 손가락으로 가늠했으리라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순식간에 산 하나가 생겨 이 지상을 묻을 듯하다
낙타가 무언가 알지 못할 울음을 울며 서쪽으로 고개를 튼다
말라버린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지평선이 되어버린 그 경계만 활처럼 휘어있다
파란 하늘이 출렁이며 울컥, 하고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아랄해의 절규’, 윤재훈

중국 본토 한족들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문화와 낯선 생김새, 분명 다른 나라에 온 듯하다. 땅의 모습도 다르다. 물과 나무가 무성한 대륙을 지나왔는데 금방 사막 지대다. 풀 한 포기 살기 힘든 말라 비틀어져 버린 땅이다.
어떻게 살아왔을지 그들의 처절했을 삶에 옷깃이 여며지고 숙연해진다. 간간히 응회암 속으로 파고 들어간 선사인들의 움집 같은 그런 흔적들이 보인다. 저 캄캄한 굴 속에서 두더지 같이, 지렁이 같이, 꿈틀대며 굳이, 왜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삶을 유지했을까?
조심조심 북쪽으로 유목민이 가축을 이끌고 풀을 따라 오르듯 발걸음이 느려진다. 사람들은 참 순박하고 느릿느릿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중국인들과 달리 주위가 좀 조용해진 느낌이다.
나라 잃은 위그루족을 보면, 36년간 일제에게 짐승 취급받던 흰옷의 민족이 떠오른다. 토착 왜구들이 서슴없이 기어 나와 악행을 일삼은 이 시대에, 그들의 정체를 똑똑히 알았으니 이번 기회에는 그대로 넘어가면 안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에 찬성했던 자들이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오는 것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양심이라고는 없는 파시스트들로 보인다.
자신들만 귀족처럼 살며 나라 따위는 없어져도 상관이 없다는 식인가! 해방 전에 우리에게 무슨 나라가 있었냐며 상해 임시정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 나와서 내뱉은 망언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치가 떨릴 일이다.
국민들은 이번 계엄사태로 나라가 순식간에 이렇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 추운 겨울날 길거리 앉아서 밤을 새던 ‘은박요정 키세스단’도 잊을 수가 없다. 하나하나 도와주던 그 작은 주변의 온정들도 잊을 수가 없다.
“나라가 없는 민족에게 무슨 인권이 있느냐”고 했던, 일제강점기 때 짐승 취급을 받아도 어디 하소연 할 때가 없었던 서러운 민족. 그런데 토착 왜구들은 그런 와중에서도 일본 귀족으로 떵떵거리며 잘 살아왔다. 그리고 친일을 한 댓가로 받은 땅을 다시 찾겠다고 고개를 들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다. 여기에 법원은 돌려주고 있다. 정말 가증스러운 일이다.
나라를 잃은 채 중국의 억압 속에서
지금 한 민족으로,
하위 민족으로 동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한 마리의 거대한 수탉을 닮은
중국의 지도 아래에서
포란(抱卵)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들에게도 나라는 있었다.
그러나 잦은 외침과
스스로의 내분으로 분열한 민족
쫒기고, 흩어져
지금은 형체도 없어져 가는 민족
외세는 믿을 수가 없다
누가 누구를 보호해 준다는 말인가.
국가와 국가 간의 휴지 조각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자의든 타의 든, 수시로 변해가는
세계의 조류(潮流)를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튼실하지 못한 민족을,
누가 지켜줄 것인가
수탉의 날카로운 부리 앞에,
먹이로 툭, 던져진 것 같은
한반도
그래도 용캐 지켜온 백의민족,
지도를 돌려서 보자,
태평양으로 뻗어나가는 기세가
도올하다
-‘위그루족를 보면’, 윤재훈
덧붙이는 글 I 자재自在
자재는 자유자재(自由自在)의 자재이다. “환경이 아프면, 내 몸도 아프다”라는 마음으로 30여 년 가까이 일체의 세제와 퐁퐁를 쓰지 않고, 일회용품과 비닐, 비누나 치약 등도 가능한 쓰지 않는다. 물수건이나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고 겨울에는 내복을 입고 실내 온도를 낮춘다. 자가용은 없으며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먼 곳은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나의 화석 발자국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홍익대학교를 비롯한 몇 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한강 1,300리, 섬진강 530리, 한탄강, 금강, 임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해안선만 따라 자전거로 80일 동안 5830km를 순례했다. 다시 세계가 궁금해져 5년 동안 ‘대상(隊商)들의 꿈의 도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오지 배낭순례를 했다.
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해양 문학상, 전국 문화원 연합회 논문공모 우수상, 시흥 문학상 등 몇 개의 상을 받았다. 2020년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아지트갤러리‘국제 칼렌다 사진전’에 참여하였다. 2016년 ‘평화, 환경, 휴머니즘 국제 영상제’에 <초인종 속 딱새의 순산, 그 50일의 기록>이라는 작품으로, '환경부 장관 대상'을 수상했다. 평생 다양한 기관에서 무료봉사를 해오고 있으며,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십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또, 노원, 영등포 50+센터 등에서 2년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내 마음에 안식처 서울역사여행’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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