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복을 가지고 오는 사람
오랜 배낭 여행은
스스로 이방인(異邦人) 되기를 작정하고
나서는 것이다.
낯설은 사막길을 걷다가,
어느 도심의 할렘가 골목길을 걷다가 맞는
섬뜩한 느낌의 찬바람도,
스스로 맞닥뜨리며 나아가야 한다.
-장기배낭 여행자의 꿈-
이란의 중남부 사막 속의 고도(古都) <시라즈>를 걷다가 서로 이야기를 서너 마디 나누며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한다. 이 나라 풍습에는 ‘손님은 복을 가지고 오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갑게 대하기 때문이다. 또는 ‘신에게 사랑받는 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 얼마나 손님을 귀하게 대하겠는가.
초상집이 잔칫집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가도 “바람이 너를 데려왔구나”라며 환대한다. <대장금>과 <주몽>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면 더욱 좋아한다.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TV프로그램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많이 보았는지, 나를 보면 “주몽, 주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원에서 우연히 밤에 만난 사내는 몇마디 나누더니 다짜고짜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한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오토바이 뒤를 타라고 하고 불빛도 없는 길을 한참이나 달렸다. 처음에는 약간 두려움이 들기도 하였지만 무슬림 사원에서 정성껏 예배를 하던 그의 모습을 본 지라, 이내 마음이 놓였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집 몇 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이 나타났다. 길에는 인기척 하나 없이 쥐죽은 듯 고요했으며 약간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희미한 불빛의 가게가 나타나자 그가 잠시 서더니 뭔가를 샀다. 잠시 만난 경찰관도 친근한 이웃집 사람 같았다.
가족들은 처음 보는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며 먹을거리를 내왔다. 마치 그들의 일상처럼 가족들과 함께 간단한 음식을 먹고 이웃 마을 친구 집에 놀러 가자고 했다. 그 집에 가서 보니 아마도 오늘은 부부동반의 모임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주몽의 나라에서 귀인이 오셨다고 오라고 했을까? 한 팀 두 팀 오는가 싶더니 이내 일곱 가족 정도의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모였다.
나는 응접실에서 DSLR 카메라를 내어 그들의 다양한 포즈의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정말 이란인들처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그들은 정말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한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길거리를 걷다 보면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어느 날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한참 만에 돌아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두 명의 청년, 그리고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사진을 보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랜 배낭 여행은
스스로 이방인(異邦人) 되기를 작정하고
나서는 것이다.
낯설은 사막길을 걷다가,
어느 도심의 할렘가 골목길을 걷다가 맞는
섬뜩한 느낌의 찬바람도,
스스로 맞닥뜨리며 나아간다.
길가에 밟힌 민들레처럼
좌절하기도 하다가
아스팔트의 틈새로 고개를 내미는
쑥부쟁이처럼
다시 순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장기배낭 여행자의 꿈-
어느 날은 모스코 앞에 있는 바자르를 걷다가 한류에 푹 빠져 사는 열여덟 살 소녀를 만났다. 자그마한 키에 커다란 눈은 알라딘의 호리병 속처럼 깊고 그윽했다. 약간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소녀는 그야말로 페르시아인의 깜직한 미모와 특징을 한눈에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바자르 이곳 저곳 알려주던 소녀는 나에게 다음날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야즈드>의 멋진 모습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아득한 학창시절 어디쯤, 코스모스 날리던 어느 강둑길.
꽃봉오리 툭, 터뜨리면 나오던 그 진한 향기.
아카시아꽃 무더기로 날리며
천 리 아득한 곳으로 나를 몰고 가던 어린 시절.
흙먼지 날리며 산모롱이 돌아오던 완행버스.
그 버스를 따라 달리면 어느 오솔길에선가 잠시 서던 버스.
사각의 블루빛 가방을 들고 하염없이 걸어가던 소녀가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걸어 나오는 듯하다.
-‘회상, 윤재훈-
끝없이 늘어선 알라딘의 양탄자에나 나올법한 가게들. 이곳 사막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 것 같은 미로 같은 황토빛 골목. 그 양옆으로 들어선 높은 담의 건물들, 집집마다 지붕에는 바람탑이 솟아 집안으로 시원한 공기을 보내주었다. 때로는 수십 년 된 목공소 안으로 들어가 장인의 설명을 들으며. 페르시아의 옛 고도의 골목길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소녀는 내일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한다고 했다. 아빠 엄마에게도 이미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옛일이 되어 버린 풍경이다. 요즘 한국의 매스컴에서는 왜 그렇게 갈수록, 비인간적인 범죄들이 더욱 급증하는 것일까?
기성세대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부동산이나 코인들에 영혼을 바치고, 아이들을 4세나 7세 고시에 내몰며 닦달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쓸쓸한 자신의 인생에 한풀이라도 하듯 모두 의사와 판검사 시험에 코흘리개들을 내모니 유아 정신병이 횡횡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교류가 없고 공감이 없는 사회에서 어떤 호감이 흐르겠는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급박한 생활 풍조의 만연이 이런 패륜적인 일들을 부르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 하는 운동회마저도 시끄럽다고 전화하는 어른들이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있는가? 그 나라의 미래를 밝혀줄 그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말이다. 특히나 아이가 부족하여 출생률이 꼴지인 이 나라에서 그렇게 생각이 부족하고 기계 같은 어른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이란은 비록 가난하지만 도시의 풍경 자체가 따뜻하다. 다음 날 모스코 앞에서 소녀를 만났고 잠시 후 아빠가 차를 가지고 왔다. 소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방을 구경시켜주겠다며 나를 끌고 간다.
그런데 방문에서부터 방탄 소년단BTS 포스터를 붙어 있다. 방안에 들어서니 온통 그들의 화보와 사진뿐이었다. 연예인에 빠져 사는 한국의 어느 소녀 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노트 한 권은 방탄 소년단의 스크랩으로 꽉 차 있다.
소녀는 이런 것들을 한국으로 직접 신청하거나, 페이스북 친구인 한국인 선생님이 보내준다고 한다. 참새처럼 쉬지 않고 VTS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사랑을 얼굴이 발그레 질 때까지 토해내는데, 그 열기가 내 가슴 속까지 전이되어 오는 것 같다.
밖으로 나오니 어머니가 이미 저녁 식사를 차려 놓았다. 밥상은 따로 없었으며 바닥의 카펫 위에 자그마한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페르시아 전통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참으로 소박한 식탁이었다.
세계를 장기배낭 여행하며 항상 먹는 것이 부족한데 모처럼 넉넉한 저녁 식사를 했다. 스물네 살인가 먹었다는 소녀의 오빠는 옆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한국의 여느 아이들처럼 온통 오락에 정신이 팔려있다.
한류(韓流) 속, 이란
다음날은 게스트 하우스 카운터에서 한국말을 상당히 능숙하게 쓰는 새댁을 만났다. 그녀는 학원에서 배우고 있다고 하며 저녁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학원에 가서 보니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놀랍게도 23살의 청년으로, 홀로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강의를 하고 있단다.
교실에는 한류에 빠져 사는 몇 명의 젊은 여성과 고등학교 여학생 등 일곱 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수업시간 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수업이 끝나고는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스낵과지를 먹으며 이국인에 대한 호기심들을 서로 나눴다. 선생님과는 다음날 만나 시라즈 시내를 구경하며 시중보다 좋은 환율로 유로를 바꿔주기도 했다.이란의 물가는 정말 싸다. 콜택시를 불러 타고 20여 분 달렸을까, 우리 돈으로 200에서 300원 정도 미터 요금이 나왔다. 이것을 주고 정말 내려도 되나, 처음에는 내리기가 미안해 한참을 망설이며 머뭇거렸지만 기사는 웃는 얼굴로 돈을 받으며 “땡큐”했다. 그제서야 안도하고 내릴 수 있었다.
기름값은 1리터에 80원 정도 한다. 우리나라 기름값을 검색해 보니 2299원이었다. 2290원도 아니고 2300원도 아니다. 장사꾼의 숫자라 속이 다 보인다. 더 올리고 싶지만 전국에서 가장 비싼 주유소라는 오명을 쓸까봐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약 16개월의 여행 기간 내내 거의 로컬 버스로 움직였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인근 유럽에서 수입한 구형 대형 벤츠차 택시가 많고 비교적 저렴했다. 그런데 이란에서만은 택시를 실컷 탔다. 버스보다 더 많이 탄 듯하다. 이란에서 우리나라 돈 가치는 정말 좋다. 석유가 펑, 펑 나오지만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그들에게, 어떤 때는 미안하기도 하다.
“이란, 이란, 하고 되내이며 그들이 떠오른다.
악의 없이 선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던.”
그러나 테헤란으로 오니 약간은 인심이 달라 보인다. 문명이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다. 사람이 점, 점 악해지고 거만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자꾸 뒷생각을 하면서 계산을 하게 만든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산모롱이 개울물을 본다.
재잘거리며 장난치며 꾸밈없이 흘러간다.
어디에 걸리거나 막힘이 없다.
산등성이에 꽃 한 송이도 바람의 결 따라 흔들린다.
태초에 인간도 그랬을까?
선악과(善惡果)을 따먹기 전에는.
-’산모롱이에서‘,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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