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외무부가 공공청사 복도에 걸려 있던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초상화를 내리고 대신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사무 공간의 장식을 바꾸는 문제를 넘어 공공 공간에서 어떤 역사와 정체성이 대표돼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외무부는 기존의 초상화를 떼어낸 뒤 래리 아치암퐁(Larry Achiampong),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등의 작품을 걸었다. 래리 아치암퐁(Larry Achiampong)의 작품은 범아프리카 색상인 녹색, 노랑, 빨강을 사용하고 아프리카 대륙의 54개 국가를 상징하는 검은 별 54개를 담은 대형 디자인으로 단순한 미적 장치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유산에 대한 재평가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의 작품은 노예무역과 제국주의 역사, 해양 무역과 식민주의 유산을 회상하게 만들고,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의 작품 또한 역사적 상징을 현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래리 아치암퐁(Larry Achiampong)은 이번 결정이 단순히 장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공공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한 정체성을 반영하는 예술적·정치적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언론이 이번 조치를 과장하고 이민자와 관련한 불필요한 논란을 부추긴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를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보수 성향의 언론은 외무부가 여왕의 초상화를 내리고 범아프리카 깃발을 걸었다며 정부의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 정치인은 이러한 작품들이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역사를 부정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공 공간에서 국가적 단합과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어떤 그림을 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공간에서 어떤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줄 것인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과거의 상징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유산을 돌아보고 다양성과 현대적 가치를 반영할 것인지 그리고 공공 공간이 누구의 시선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설계될 것인지가 질문의 핵심이다.
예술가 측은 이번 변화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면서도 새로운 가치와 정체성을 말하는 시도라고 강조한다. 결국 이번 논란은 공공기관이 단순한 행정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정체성과 가치 그리고 역사와 다양성을 반영하는 무대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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