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인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화가이자 해부학자, 공학자, 발명가였다. 그의 천재성은 수세기 동안 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이제 과학자들은 그의 예술과 업적을 넘어 유전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밀에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야심 찬 시도에는 근본적인 난제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녀를 남기지 않았고 1519년 사망 후 안치되었던 프랑스 앙부아즈의 묘지는 프랑스 혁명 시기에 파괴됐다. 유해가 재매장되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즉, 확실하게 검증된 DNA 원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유물이 곧 유전자 저장소가 되다
이 같은 한계를 넘기 위해 국제 연구진이 참여한 이른바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고고유전학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가 직접 만졌을 가능성이 있는 회화, 소묘, 문서, 편지 등 유물 자체를 DNA 저장소로 간주한 것이다.
2024년 1월 6일 공개된 한 사전 공개(preprint) 논문에서 연구팀은 레오나르도의 먼 친척이 쓴 편지와 그가 그렸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온 회화 「성스러운 아기 예수(The Holy Child)」에서 환경 DNA와 함께 인간의 Y 염색체 서열을 검출했다고 보고했다. 이 논문은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방법론 자체는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메릴랜드 대학교의 세포생물학·분자유전학자 노르베르토 곤잘레스-후아르베 박사는 “종이나 캔버스는 사람의 피부 세포, 땀, 피지 등 생물학적 흔적을 흡수할 수 있으며, 그 위에 물감이 덧칠되면 오히려 유전 물질이 보호된다”고 설명한다.
최소 침습적 DNA 채취 기술의 진화
수백 년 된 예술품에서 DNA를 추출하는 일은 그 자체로 논쟁적이다. 연구팀은 유물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식 면봉(dry swab), 진공 흡입, 법의학용 도구 등 다양한 기법을 비교 실험했고, 그 결과 건식 면봉이 가장 안전하면서도 충분한 DNA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단순히 인간 DNA뿐 아니라 해당 작품이 어디서 제작되고 보관되었는지 보여주는 환경 DNA 지도도 함께 복원했다. 예컨대 「성스러운 아기 예수」에서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과 연관된 식물 DNA, 멧돼지 DNA(르네상스 시대 붓 재료로 흔히 사용됨), 곰팡이와 박테리아 흔적 등이 발견됐다. 특히 오렌지 나무 DNA는 메디치 가문 정원과의 연관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Y 염색체, 레오나르도를 가리키는 실마리
이번 연구의 핵심은 Y 염색체 분석이다. Y 염색체는 부계로만 전해지기 때문에 동일한 서열이 반복적으로 발견된다면 특정 남성 혈통을 추적할 수 있다. 연구팀은 분석의 객관성을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을 적용했고 샘플 채취자들의 DNA도 대조군으로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편지와 그림에서 검출된 인간 Y 염색체 마커들이 서로 유전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E1b1 하플로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하플로그룹은 오늘날 토스카나 남성 인구의 약 2~14%에서 발견되며 약 9,000년 전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인류 집단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잭슨 유전체 의학 연구소의 찰스 리 박사 연구팀은 2023년 『네이처(Nature)』에 43개의 인간 Y 염색체를 완전 조립해 18만 년 인류 진화를 재구성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기술적 성과가 이번 프로젝트의 과학적 토대가 되었다.
리 박사는 “여러 유물과 레오나르도 부계 후손에서 동일한 Y 염색체 서열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면 그의 유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준점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는 “이는 어디까지나 초기 관찰 결과이며 확정적 증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회의와 기대가 교차하는 학계
모든 전문가가 이 접근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버지니아 대학교의 미술사학자 프란체스카 피오라니 교수는 「성스러운 아기 예수」의 작품 귀속 자체가 학계에서 널리 합의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레오나르도와 더 가까운 혈연인 그의 아버지가 남긴 문서가 더 적합한 분석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법의학 전문가들은 한 유물에서 검출된 인간 DNA가 단일 개인에게서만 유래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경고한다. 이에 대해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의 켈리 메이클존 교수는 브러시를 이용한 비파괴적 DNA 채취나 친족·표현형 분석에 특화된 법유전학 패널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템플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S. 블레어 헤지스 교수는 “이번 연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유한 DNA ‘바코드’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최종적으로 후손 DNA, 유물 DNA, 확인된 유해 DNA를 교차 비교해야만 게놈 조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재를 이해하려는 끝나지 않은 여정
연구진은 현재 프랑스 정부와 협력해 레오나르도의 노트, 덜 알려진 드로잉 그리고 상대적으로 손길이 적었던 유물들에서 추가 샘플을 수집하고 있다. 동시에 그의 아버지 혈통 후손들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도 병행 중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레오나르도의 DNA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의 뛰어난 시력, 공간 인지 능력, 예술적 감각이 유전적 특성과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결말을 아는 영화는 재미가 없죠.” 리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직 결말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연구가 더 의미 있고, 더 흥미로운 겁니다.”
500년 전 천재가 남긴 붓자국과 종이 위의 흔적들. 그 미세한 유전적 잔향이 과연 인류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인물 중 한 사람의 내면을 밝혀줄 수 있을지 과학과 인문학의 공동 탐사는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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