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과 에너지를 함께 살리는 지속가능한 농촌의 새로운 해법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은 더 이상 식량 생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같은 극한기상이 일상이 되면서 농업 생산 기반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고,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은 농업 경영비 부담까지 키우고 있다. 특히 스마트팜과 시설원예처럼 전력 의존도가 높은 농업이 확대되면서 에너지 문제는 곧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식량과 에너지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시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농형 태양광은 농업과 에너지를 함께 살리는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 위 공간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아래에서는 지속적으로 농사를 짓는 방식이다. 즉, 같은 공간에서 식량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입체적 농업 모델이다. 이는 단순한 발전사업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 농촌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자, 농촌 에너지 자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농형 태양광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태양광’이 아니라 ‘영농’이어야 한다. 농업 생산은 형식적으로 유지한 채 발전 수익만 추구한다면 국민적 공감과 신뢰를 얻기 어렵다. 농지가 발전소 용지로 변질되어서도 안 된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를 지키면서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고, 농촌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검증이다. 모든 작물이 태양광 구조물 아래에서 동일하게 재배될 수는 없다. 벼와 일부 밭작물처럼 충분한 일조량이 필요한 작물은 생산성 저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반면 인삼, 차나무, 버섯류, 일부 엽채류처럼 적절한 차광 효과가 도움이 되는 품목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작목별 특성, 지역 기후, 패널 높이와 간격, 차광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맞춤형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과 대학, 연구기관이 협력하여 전국 단위의 실증 데이터를 축적하고 표준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영농형 태양광은 농업인 참여형 구조로 추진되어야 한다. 외부 자본 중심의 사업은 결국 농민은 토지만 제공하고 수익은 외부 사업자가 가져가는 구조로 흐를 우려가 있다. 따라서 농민 조합형, 마을 협동조합형, 주민 참여형 모델을 제도적으로 확대해 발전 수익이 지역사회에 환원되도록 해야 한다. 농촌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발전 수익은 농가 소득 안정과 농촌 복지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수상태양광과 연계한 지역 단위 에너지 모델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약 17,000개의 저수지를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저수지 기반 수상태양광은 유휴 수면을 활용하기 때문에 농지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수면 냉각 효과로 발전 효율도 높일 수 있다. 특히 ‘햇빛소득마을’과 연계해 주민 참여형 발전사업으로 추진한다면 에너지 복지와 농촌 소득,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영농형 태양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산된 전력을 안정적으로 송전하고 저장할 수 있는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핵심 인프라 구축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전력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공급할 수 있는 ESS와 스마트 전력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결국 영농형 태양광의 경쟁력은 발전설비 자체보다 생산된 전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연결·저장·판매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농형 태양광 정책을 추진할 때 발전시설 지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농촌 전력망 확충, 마이크로그리드 구축, ESS 보급, RE100 산업단지 연계 공급체계 등 에너지 인프라를 패키지로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 단위 분산형 전력망을 구축해 농촌이 전력을 생산·저장·공급하는 ‘에너지 플랫폼’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농촌 소득 확대뿐 아니라 국가 전력망 안정성과 탄소중립 실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농촌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의 핵심 해법이 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업을 포기하는 길이 아니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선택이어야 한다. 농민이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되고, 농촌이 식량과 에너지를 함께 생산하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거듭날 때,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도 함께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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