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성 관측으로 기존 지도에 없던 계곡 약 3분의 1 확인, 일부 계곡은 수백㎞ 더 길게 연결
- 빙하 이동 경로와 지하 지형의 관계 규명, 장기적인 빙상 변화·해수면 상승 예측 정밀화 기대
두께가 최대 3㎞를 넘는 거대한 얼음 아래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지표면 대부분이 얼음으로 뒤덮인 그린란드에서 기존 지도에 나타나지 않았던 수많은 계곡과 산악 지형이 새롭게 확인됐다. 얼음 표면의 미세한 굴곡을 분석해 그 아래 숨겨진 지형을 추적한 결과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8일(현지시간) X계정 'NASA Earth'를 통해 그린란드 빙상 아래 지형을 보여주는 새로운 지도를 소개했다. NASA는 이번 지도가 기존 지도에서 누락되거나 단절된 형태로 표시됐던 수백 개의 계곡을 연결해 빙하 아래 지형을 보다 상세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NASA 연구진 등이 참여해 국제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 '그린란드 빙상 아래의 광대한 계곡망(A Vast Valley Network Beneath the Greenland Ice Sheet)'을 바탕으로 한다. NASA 지구관측소(Earth Observatory)는 지난 9월 28일 연구 결과와 지도를 공개했다.
그린란드 빙상은 약 170만㎢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가장 두꺼운 곳은 3㎞가 넘는다. 방대한 얼음 아래에는 산맥과 계곡, 깊은 골짜기 등 복잡한 지형이 존재하지만 직접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빙하 흐름 교란 분석(Ice Flow Perturbation Analysis)'이라는 기법을 활용했다. 얼음이 지하의 계곡이나 산등성이 위를 이동할 때 지표면의 미세한 높낮이 변화가 빙상 표면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위성이 관측한 얼음 표면의 작은 굴곡을 분석하면 그 아래에 숨겨진 기반암 지형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이용해 그린란드 빙상 아래 계곡 1,943개를 지도에 표시했으며, 이 가운데 약 3분의 1은 기존 지도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계곡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존 그린란드 빙상 지형자료인 '베드머신 그린란드(BedMachine Greenland)'에 포함된 계곡 가운데 약 절반은 실제로 알려진 것보다 내륙 방향으로 더 길게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 계곡은 기존 지도보다 수백㎞ 더 깊숙한 내륙까지 연결돼 있었다.
새로운 지도는 그린란드의 지질학적 역사에 관한 단서도 제공한다. 연구진은 남부와 동부의 고지대에서 시작해 주변으로 뻗어 나가는 계곡망을 확인했다. 특히 동부 고지대에서는 서로 연결된 계곡과 산악 지형이 드러났는데, 일부 지형은 수백만 년 전인 플라이오세부터 얼음 아래 보존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반면 그린란드 중서부에서 발견된 계곡들은 연구진에게 새로운 의문을 남겼다. 이 지역에는 남서쪽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길고 곧게 뻗은 계곡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하천이 만들어내는 계곡은 지형과 지질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발달한다. 그러나 특정 방향으로 정렬된 긴 계곡들이 발견되면서 연구진은 과거 지각 구조가 물의 흐름과 계곡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NASA 빙권과학자 조 맥그리거(Joe MacGregor)는 그린란드가 일반적으로 오래되고 안정적인 암반으로 이뤄진 지역으로 이해돼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형이 흥미로운 수수께끼라고 설명했다.
계곡이 서로 갈라지는 각도에서도 새로운 단서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계곡의 분기 각도가 비교적 넓게 나타나는 특징을 근거로, 과거 지표수를 통한 침식뿐 아니라 지하수가 암반을 침식하는 과정도 계곡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오늘날 얼음으로 뒤덮인 그린란드의 지형이 현재의 빙하 활동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규모 빙상이 형성되기 이전의 물과 지질 활동에 의해서도 형성됐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빙하의 이동과 미래 변화 예측에 있다.
빙하는 단순히 지표면에 고정된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중력과 지형의 영향을 받아 천천히 이동하며, 계곡과 같은 낮은 지형을 따라 흐름이 집중될 수 있다. 특히 빙하가 계곡을 따라 이동하면 얼음의 두께와 흐름 속도가 달라지고, 장기간에 걸쳐 기반암을 더욱 깊게 침식할 수도 있다.
그린란드 주변부에서는 이러한 빙하가 피오르를 향해 이동하다가 바다로 흘러들어 빙산을 형성한다. 따라서 빙하 아래 계곡의 위치와 연결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얼음이 어디로, 얼마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기후변화로 빙상이 후퇴하는 상황에서는 지하 지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얼음이 얇아지거나 빙하의 경계가 내륙으로 이동하더라도 기존 계곡을 따라 얼음의 흐름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맥그리거는 현재 지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수록 향후 수십 년을 넘어 장기적으로 빙하의 빠른 흐름이 그린란드 내륙으로 어떻게 확산할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린란드 빙상은 전 세계 해수면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육상 얼음 저장고다. 빙상이 녹아 바다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그린란드의 변화는 북극 지역을 넘어 전 세계 해안 지역의 중요한 기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번 연구가 새로운 계곡을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해수면 상승 전망이 수정되거나 빙하가 예상보다 빠르게 녹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연구의 직접적인 성과는 빙하 아래 지형을 더 정밀하게 파악하고, 향후 빙상 이동과 장기 변화를 예측하는 모델의 기초자료를 개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확인한 계곡망을 기존 지형자료와 결합해 빙상 아래 기반암의 구조를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특이한 계곡의 형성 과정과 지하수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연구는 위성 관측 기술이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지구의 숨겨진 환경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얼음 표면에 남겨진 작은 흔적을 통해 수㎞ 아래 지형을 추적한 성과는 그린란드의 과거 지질 역사를 밝히는 동시에 미래 빙하 변화와 해수면 상승을 예측하는 과학적 기반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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