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EA 6일 ‘ASEAN 에너지 안보 리뷰’ 공개, 수입 확대·해상 수송로·전력 안정성 집중 점검
- 2035년 세계 에너지 수요 증가분 20% 동남아에서 발생 전망, 에너지 수입비용 2천450억 달러 가능성
- 공급망 다변화·비상대응 체계와 ASEAN 전력망 연결 확대가 주요 과제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시아가 에너지 수요 증가와 수입 의존 확대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산업화, 생활수준 향상으로 에너지 소비가 늘고 있지만 역내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만으로 이를 충당하기 어려워지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화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6일 ‘ASEAN 에너지 안보 리뷰(ASEAN Energy Security Review)’를 공개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의 에너지 공급 구조를 분석하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대응 방안을 점검하는 보고서다.
IEA가 사전에 공개한 내용을 보면 이번 보고서는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증가를 비롯해 주요 해상 수송로의 공급 차질,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 청정에너지 공급망과 핵심광물 확보 등을 주요 에너지 안보 문제로 다룬다.
2035년 세계 에너지 수요 증가분 20% 차지 전망
동남아의 에너지 안보 문제가 부각되는 배경에는 빠른 수요 증가가 있다.
IEA의 ‘동남아시아 에너지 전망 2026’에 따르면 동남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약 9%, 국내총생산(GDP)의 약 4%를 차지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 흐름이 이어질 경우 2035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수요 증가분 가운데 약 20%가 이 지역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소비는 이미 빠르게 늘었다. 동남아의 전체 에너지 수요는 2015년 이후 약 40% 증가했다. 증가한 수요의 상당 부분을 화석연료가 충당하면서 석탄이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약 20%에서 현재 약 30%까지 높아졌다. 석유 수요도 하루 약 500만 배럴 수준에 도달했다.
앞으로도 수요 증가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IEA는 현재 정책이 유지될 경우 동남아의 석유 수요가 2024년 하루 약 500만 배럴에서 2035년 약 620만 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역내 생산은 수요 증가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 유전의 생산 여력이 제한된 데다 천연가스 역시 인도네시아와 태국,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주요 생산국에서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때 주요 천연가스 생산지역이었던 동남아가 앞으로 순수입 지역으로 전환하면서 국제 LNG 가격과 공급 상황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IEA의 분석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 약 60%…해상 수송로도 위험 요인
수입이 늘수록 에너지가 어느 지역에서 들어오고 어떤 경로를 거쳐 운송되는지도 중요해진다.
IEA에 따르면 올해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이 발생하기 전 동남아가 수입하는 원유의 약 60%, 가스 수입량의 약 3분의 1이 중동에서 공급됐다. 정유공장에 투입되는 원유와 석유제품 교역까지 고려하면 동남아 석유제품 공급의 약 45%가 중동산 원유와 연결돼 있었다.
중동에서 동남아로 향하는 에너지 수송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 등 제한된 해상 통로를 이용한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특정 해역에서 군사적 충돌이나 선박 운항 차질이 발생하면 원유와 LNG 공급뿐 아니라 운송비와 보험료, 최종 에너지 가격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부 동남아 정유시설이 특정한 성상의 중동산 원유를 처리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점도 단기간에 수입처를 바꾸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지난 9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LNG 운송량은 올해 중동 분쟁이 시작된 이후 월간 기준 가장 높은 수준까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박 안전과 운송비용 등 공급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ASEAN 에너지센터(ACE)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상황이 ASEAN의 에너지 안보 체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공급처를 다양화하고 비축량을 늘리는 기존 대응을 넘어 여러 공급망이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까지 가정한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입 에너지 비용 2035년 2천450억 달러 가능성
에너지 수입 확대는 ASEAN 국가들의 경제적 부담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IEA는 현재와 같은 에너지 구조가 지속될 경우 동남아의 연간 에너지 수입비용이 2024년 800억 달러 이상에서 2035년 약 2천450억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 원유와 LNG 가격이 오르면 무역수지뿐 아니라 물가와 기업의 생산비, 정부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확대할 경우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IEA에 따르면 최근 중동 지역의 공급 불안이 본격화되기 전에도 동남아 국가들이 화석연료 소비를 지원하기 위해 지출한 보조금은 약 400억 달러에 달했다.
전력 소비 1990년 이후 9배…전력망 투자도 필요
에너지 안보의 또 다른 과제는 전력이다.
동남아의 전력 소비량은 1990년 이후 약 9배 증가했다. IEA는 2040년까지도 연평균 3~4%의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발전설비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40년까지 ASEAN의 전체 발전설비 용량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되고, 새로 추가되는 설비 가운데 약 75%를 재생에너지가 차지할 것으로 IEA는 보고 있다.
발전소만 늘려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기 어렵다. 생산된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보내기 위한 송·배전망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IEA는 2025년부터 2040년까지 동남아의 전력망 확대와 현대화에 3천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과정에서 ASEAN 회원국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ASEAN 파워그리드(ASEAN Power Grid)’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국가 간 전력 거래가 확대되면 특정 국가에서 전력이 부족할 때 주변 국가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고, 지역별로 발전량이 달라지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도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전력망 연결을 확대하려면 송전 인프라 건설뿐 아니라 국가마다 다른 전력시장과 거래제도, 기술기준을 조정해야 한다.
화석연료 의존 줄여도 핵심광물 공급망은 새 과제
에너지 전환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급망 위험도 등장하고 있다.
태양광·풍력 발전설비와 전기차, 배터리, 전력망 구축에는 다양한 핵심광물이 필요하다. 특정 국가나 기업에 생산과 가공이 집중될 경우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이 줄어드는 대신 핵심광물과 청정에너지 부품에 대한 새로운 의존이 생길 수 있다.
IEA가 이번 ‘ASEAN 에너지 안보 리뷰’에서 청정에너지 공급망과 핵심광물을 별도의 에너지 안보 문제로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재생에너지와 전기화 확대는 ASEAN의 화석연료 수입 부담을 낮추는 수단이 될 수 있다. IEA는 동남아 국가들이 이미 발표한 기후·에너지 목표를 달성할 경우 2035년 화석연료 수입비용이 현재 정책이 그대로 유지될 때 예상되는 수준의 절반 정도로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전기차와 고효율 냉방기기·전동기 등의 보급이 확대되면 경제활동과 생활수준이 높아지더라도 필요한 화석연료의 증가 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IEA 보고서가 다루는 ASEAN의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를 어느 국가에서 공급받고 어떤 경로로 운송할 것인지, 공급이 중단됐을 때 얼마나 신속하게 대체할 수 있는지까지 포함하는 문제다.
동남아의 에너지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석유·LNG 수입 확대와 특정 해상 수송로 의존, 전력망 확충, 청정에너지 핵심광물 공급망이 서로 맞물리고 있다. IEA가 제시하는 공급처 다변화와 비상대응 체계 강화, 에너지 효율 향상, 전력망 투자와 국가 간 협력이 향후 ASEAN 에너지 정책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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