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서남부 미들섬의 작은 호수가 간직해 온 신비로운 분홍빛 풍경
- 소금기 많은 물속 미생물이 만든 특별한 색, 2022년 폭우 이후 달라진 호수의 모습
[편집자 주] ESG코리아뉴스는 지구 곳곳에 숨겨진 경이로운 자연과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하는 기획 연재 〈아름다운 지구이야기〉를 선보인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지형부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의 이야기까지, 아름다운 풍경에 담긴 자연의 역사와 가치를 함께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다채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그 아름다움을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해야 할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호주 서남부의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는 마치 누군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분홍빛 호수가 있다. 짙푸른 바다와 녹색 숲 사이에 자리한 호수는 주변 풍경과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쉽게 믿기 어려울 만큼 신비로운 모습이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분홍색 호수를 녹색 숲이 감싸고,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호주 서호주주(Western Australia)의 르셰르슈 군도(Recherche Archipelago)에 속한 미들섬(Middle Island)에 자리한 '힐리어 호수(Lake Hillier)'다.
힐리어 호수는 길이 약 600m, 폭 약 250m의 작은 호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선명한 분홍빛 물과 주변 자연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색채의 대비 덕분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자연 명소가 됐다.
호수 주변에는 나무와 관목이 자라는 녹색 숲이 펼쳐져 있고, 바다와 맞닿은 쪽에는 좁은 모래 지대가 이어진다. 짙은 녹색의 숲과 하얀 모래, 푸른 바다 사이에 분홍색 호수가 놓여 있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서로 다른 색을 정교하게 배치해 놓은 듯하다.
이처럼 특별한 풍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힐리어 호수는 바다와 가까이 있지만 좁은 육지로 분리돼 있으며, 염분이 높은 물을 담고 있는 염호다. 일반적인 호수와 달리 물속에 소금기가 많고, 이러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호수의 색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랫동안 힐리어 호수의 분홍빛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의 붉은 토양이 물을 물들인 것은 아닌지, 특별한 광물질이 녹아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높은 염분 속에서 살아가는 미세한 생물들에 주목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생물은 '두날리엘라 살리나(Dunaliella salina)'라는 미세조류다. 이 조류는 염분이 높은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으며, 강한 햇빛과 염분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베타카로틴이라는 색소를 축적할 수 있다.
베타카로틴은 당근에도 들어 있는 주황색 계열의 색소다. 두날리엘라 살리나가 이러한 색소를 많이 만들어내면 물의 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힐리어 호수의 분홍빛을 이 조류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호수에는 높은 염분을 견디며 살아가는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부 호염성 세균과 고세균은 붉은색이나 분홍색 계열의 색소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역시 호수의 색을 만드는 데 관여할 수 있다.
실제로 힐리어 호수의 미생물 군집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다양한 세균과 고세균, 조류 등이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여러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색소와 호수의 환경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독특한 분홍빛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호수의 색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생물들의 활동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호수의 높은 염분은 대부분의 생물에게 살아가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일부 미생물에게는 오히려 적합한 환경이 된다. 이들은 세포 안팎의 염분 균형을 조절하거나 강한 햇빛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색소가 물의 색에도 영향을 미친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호수지만, 그 안에는 극한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힐리어 호수가 자리한 미들섬 역시 독특한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호주 남부 해안에 흩어져 있는 르셰르슈 군도는 수많은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닷바람과 파도, 해안 식생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으로 알려져 있다.
미들섬의 호수는 길쭉한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주변의 녹색 숲이 호수를 감싸고 있고, 바다 쪽으로는 모래 지대가 이어져 있어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숲속에 커다란 분홍색 물방울이 놓여 있는 듯하다.
특히 항공사진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상에서는 주변 숲과 지형 때문에 호수 전체를 한눈에 보기 어렵지만, 높은 곳에서는 분홍색과 녹색, 푸른색이 만들어내는 경계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힐리어 호수가 외부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유럽 탐험가들의 항해 기록을 통해서다.
1802년 영국의 항해가 매슈 플린더스(Matthew Flinders)는 호주 남부 해안을 탐사하던 중 미들섬을 방문했다. 그는 섬의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살피다가 독특한 색을 띤 호수를 발견했고, 이후 항해 기록을 통해 그 존재를 알렸다.
힐리어라는 이름은 당시 탐사와 관련된 선원 윌리엄 힐리어(William Hillier)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유럽 탐험가들의 기록 이전에도 이 지역에는 원주민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존재했다.
이후 힐리어 호수는 독특한 색깔로 관심을 받아왔으며, 항공 촬영 기술이 발달하면서 푸른 바다 옆에 놓인 분홍색 호수의 모습이 세계 곳곳에 소개됐다.
다만 미들섬은 일반적인 관광지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자연환경 보호와 접근 여건 등의 이유로 방문이 제한되며, 호수 주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로나 관광시설도 마련돼 있지 않다. 따라서 힐리어 호수의 풍경은 주로 항공사진이나 허가된 항공 관람 등을 통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선명한 분홍빛으로 유명했던 힐리어 호수에 최근 변화가 나타났다.
2022년 이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호수의 염도가 낮아졌고, 이후 특유의 분홍빛이 사라졌다. 염분 농도의 변화가 색소를 만드는 미생물의 생존환경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2025년 호주 ABC 방송은 힐리어 호수가 여전히 예전의 분홍빛을 되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지나 물이 증발하고 염도가 다시 높아지면 분홍빛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정확한 회복 시점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힐리어 호수의 분홍빛이 언제나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호수의 색을 만드는 미생물들은 물의 염분과 수위, 햇빛 등 여러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크게 달라지면 미생물의 구성과 활동이 변할 수 있고, 우리가 바라보는 호수의 색도 달라질 수 있다.
한때 선명한 분홍빛으로 알려졌던 호수가 색을 잃었다는 사실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자연의 색은 꽃이나 나무, 하늘과 바다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미생물도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을 바꿀 수 있다. 힐리어 호수는 이러한 자연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다.
동시에 이곳은 자연환경의 작은 변화가 때로는 눈에 보이는 커다란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염분이 높은 물속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에게 물과 소금기의 변화는 곧 삶의 조건이 달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진으로 만나는 분홍빛 호수는 오랜 시간 자연이 만들어낸 특별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했던 환경은 언제나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으며, 호수의 색 역시 자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호주 서남부의 푸른 바다 한편에는 오늘도 미들섬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안의 힐리어 호수는 녹색 숲과 바다에 둘러싸인 채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자연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한때 호수를 물들였던 분홍빛은 작은 생명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풍경이었으며, 지금의 변화 또한 자연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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