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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연유산] 설악산에는 왜 기암괴석이 많을까…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낸 바위산의 비밀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10.1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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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화강암, 수천만 년에 걸친 지각 변화와 풍화·침식으로 독특한 지형 형성
  • 울산바위·공룡능선·천불동계곡에 남겨진 지구의 역사, 한국의 대표적인 지질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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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설악 주전골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모습 [사진=ESG코리아뉴스]

 

가을이 깊어가는 설악산은 붉고 노란 단풍만큼이나 웅장한 바위산으로 눈길을 끈다. 하늘을 향해 솟은 봉우리와 가파른 절벽, 깊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기암괴석은 설악산을 다른 산과 구별 짓는 독특한 풍경이다. 특히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울긋불긋한 숲 사이로 회색빛 바위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설악산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이토록 거대한 바위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왜 어떤 곳에는 날카로운 봉우리가 솟아 있고, 또 다른 곳에는 깊은 골짜기와 깎아지른 절벽이 자리하고 있을까.


그 답은 설악산이 지나온 오랜 시간 속에 있다.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화강암이 지표로 드러나고, 암석에 생긴 균열을 따라 물과 바람, 기온 변화가 작용하면서 오늘날의 독특한 지형이 형성됐다. 지금 우리가 감상하는 설악산의 기암괴석은 오랜 세월 자연이 조금씩 다듬어 온 결과인 셈이다.


국제 학술지 지질유산(Geoheritage)에 발표된 설악산 지형 연구에서도 이곳은 화강암의 특성과 과거 기후의 흔적,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형 변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질유산으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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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설악 주전골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모습 [사진=ESG코리아뉴스]

 

지하에서 태어난 화강암, 설악산의 바탕이 되다


설악산의 바위 지형을 이해하려면 먼저 화강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강암은 지하 깊은 곳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천천히 식으며 만들어진 암석이다. 지표에서 용암이 빠르게 식어 형성되는 화산암과 달리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지기 때문에 석영과 장석, 운모 같은 광물의 결정이 비교적 크게 발달한다.


설악산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암석들이 분포하고 있다. 지질학 연구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선캄브리아시대의 오래된 암석을 비롯해 약 1억 7천만~1억 9천만 년 전인 쥐라기의 화강암과 약 8,800만 년 전인 백악기의 화강암이 함께 나타난다. 오늘날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한 바위봉우리와 절벽 가운데 상당수는 백악기에 형성된 화강암과 관련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화강암들이 처음부터 지표에 드러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하 깊은 곳에서 굳어진 암석은 오랜 시간 지각이 움직이고 주변의 암석과 지표 물질이 깎여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지표에 노출된 화강암은 비와 바람, 기온 변화 등의 영향을 받으며 조금씩 변해 갔다. 하지만 모든 바위가 같은 속도로 깎인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은 먼저 부서지고 사라졌으며, 단단한 부분은 오랫동안 남아 봉우리와 절벽을 이루었다.


설악산에서 높이 솟은 바위산과 깊은 계곡을 함께 볼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바위에 생긴 작은 틈이 거대한 절벽을 만들다


설악산의 기암괴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암석에 생긴 균열이다. 지질학에서는 이를 '절리(Joint)'라고 부른다.


절리는 지각에 가해지는 힘이나 암석의 냉각, 지표에 가까워지면서 일어나는 압력 변화 등으로 생기는 틈이다. 단단한 화강암도 이러한 균열이 생기면 그 사이로 물과 공기가 스며들 수 있다.


빗물이 스며들고 기온이 변하는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균열 주변의 암석은 조금씩 약해진다. 이후 부서진 바위 조각이 물에 씻겨 내려가거나 중력에 의해 떨어져 나가면서 틈은 점차 넓어진다.


반대로 균열이 적고 단단한 암석은 주변이 깎여 나가는 동안에도 비교적 오랫동안 제 모습을 유지한다. 이렇게 남겨진 바위들이 높은 봉우리와 가파른 절벽을 이루게 된다.


설악산의 일부 백악기 화강암 지역에서는 절리 사이의 간격이 수 미터에서 10m 이상으로 넓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커다란 암석 덩어리가 유지되는 곳에서는 웅장한 바위봉우리가 발달하기 쉽다. 반면 균열이 촘촘한 곳은 상대적으로 풍화와 침식이 빠르게 진행돼 골짜기로 변할 수 있다.


결국 설악산의 복잡하고 다양한 지형은 바위가 얼마나 단단한지뿐 아니라 균열이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발달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 것이다.


울산바위, 거대한 바위 능선에 남겨진 자연의 시간


설악산을 대표하는 기암괴석 가운데 하나는 울산바위다. 속초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면 거대한 성벽처럼 길게 이어진 바위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개의 봉우리가 연결된 모습은 멀리서 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울산바위는 길이 약 2km, 너비 약 200m에 이르는 거대한 화강암 암릉이다. 주변 산비탈보다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바위산이 따로 자리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형태가 만들어지는 데에도 암석의 균열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큰 화강암 덩어리가 남아 거대한 능선을 이루었고, 바위에 발달한 수직 방향의 절리는 여러 봉우리가 구분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울산바위의 표면에서는 암석이 얇은 판처럼 갈라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를 판상절리라고 하는데, 바위의 곡면을 따라 암석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역시 오랜 시간 이어진 풍화와 낙석의 흔적이다.


울산바위에는 오래된 전설도 전해진다. 금강산에 일만이천 봉우리를 모으던 시절, 울산에서 올라온 바위가 제때 도착하지 못해 설악산에 머물게 됐다는 이야기다.


과학적으로는 오랜 지질작용이 만들어낸 지형이지만, 옛사람들은 그 웅장한 모습에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남겼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설명하려 했던 조상들의 시선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공룡능선, 바위봉우리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


설악산의 공룡능선은 이름만큼이나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는 능선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공룡의 등줄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크고 작은 암봉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봉우리 사이로는 깊은 골짜기가 이어진다. 이러한 지형 역시 화강암에 발달한 균열과 오랜 침식작용의 결과다.


암석의 틈을 따라 풍화가 진행되면서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은 깎여 나갔고, 단단한 부분은 좁고 가파른 바위 능선으로 남았다. 지질학에서는 이처럼 얇은 판이나 날개처럼 남은 바위 지형을 '암석 핀(Rock Fi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룡능선에서는 이러한 형태가 연속적으로 나타나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봉우리마다 높이와 모양이 조금씩 다르고, 그 사이로 깊은 계곡이 이어지면서 설악산 특유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자연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깎고 다듬은 결과가 오늘날 수많은 등산객이 감탄하는 공룡능선의 풍경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천불동계곡, 물이 만들어낸 깊고 아름다운 골짜기


설악산의 기암괴석은 높은 봉우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깊은 계곡에도 오랜 지질학적 시간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천불동계곡이다. 양쪽으로 가파른 바위 절벽이 솟아 있고, 그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이곳은 설악산에서도 아름다운 계곡 경관으로 손꼽힌다.


천불동이라는 이름에는 수많은 바위가 불상처럼 늘어서 있는 듯한 풍경이 담겨 있다. 실제로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절벽을 만날 수 있다.


천불동계곡이 깊고 좁은 형태를 갖게 된 데에는 오랜 시간 이어진 물의 작용이 큰 영향을 미쳤다. 빗물과 계곡물은 암석의 약한 부분이나 균열을 따라 흐르며 조금씩 바닥을 깎아낸다. 물과 함께 이동하는 모래와 자갈도 암반을 마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설악산은 능선과 계곡 사이의 높이 차이가 크고 경사가 급한 곳이 많다. 이런 지형에서는 비가 많이 내릴 때 물이 빠르게 흘러내리며 강한 침식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계곡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폭포와 깊은 물웅덩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바위 표면 역시 이러한 과정과 관련이 있다. 물과 자갈이 반복적으로 회전하며 암반을 깎으면 둥근 구멍 형태의 포트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남설악의 주전골과 용소폭포 일대에서도 비슷한 자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좁은 계곡 사이로 이어지는 암벽과 맑은 폭포는 물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설악산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추운 겨울도 설악산의 바위를 변화시켰다


설악산의 바위 지형을 변화시킨 것은 흐르는 물만이 아니다. 겨울철의 추운 날씨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암석의 틈으로 들어간 물이 얼면 부피가 늘어나면서 주변을 밀어내는 힘이 생긴다. 이후 얼음이 녹았다가 다시 어는 과정이 반복되면 균열은 조금씩 넓어지고, 때로는 바위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동결·융해 작용이라고 한다.


고도가 높고 겨울철 기온이 낮은 설악산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암석의 풍화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 한반도의 기후가 지금보다 추웠던 시기에는 이러한 작용이 더욱 활발하게 나타났을 것으로 해석된다. 설악산 일부 지역에 넓게 분포하는 각진 바위 덩어리와 암괴 지형도 과거의 추운 기후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설악산의 모든 기암괴석이 추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암석의 종류와 균열, 비와 바람, 기온 변화, 중력에 의한 붕괴 등 여러 자연현상이 오랜 시간 함께 작용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형성됐다.


설악산의 풍경은 지금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설악산의 바위봉우리들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지만, 그 모습이 완전히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며 계절이 바뀌는 동안 암석은 조금씩 풍화되고 이동한다.


특히 설악산은 경사가 급한 지역이 많고 여름철 집중호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낙석이나 토석류 같은 지형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국제 학술지 지질유산(Geoheritage)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설악산은 짧은 거리에서 능선과 계곡의 높이 차이가 1,000m 이상에 이르는 곳이 있을 만큼 지형의 기복이 크며, 집중호우와 급경사가 맞물려 지형 변화가 활발하게 나타나는 지역으로 설명된다.


실제로 2006년 집중호우 당시 설악산 한계천 일대에서는 많은 토사와 암석이 이동하면서 새로운 퇴적 지형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설악산의 자연이 지금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산을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특히 많은 비가 내린 직후나 얼음이 녹는 시기에는 낙석과 사면 붕괴 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담긴 지구의 역사


설악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1982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인정받았다. 울산바위와 비선대·천불동계곡, 용아장성 등 설악산의 여러 명소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학술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설악산의 기암괴석이 특별한 이유는 아름다운 모양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암석과 지각의 움직임, 과거 기후의 흔적, 오랜 풍화와 침식의 과정이 하나의 산에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울산바위의 거대한 암릉과 공룡능선의 날카로운 봉우리, 천불동계곡의 깊은 협곡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 오랜 지질학적 시간이 남긴 자연의 기록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가을이 되면 설악산의 바위산은 더욱 선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 사이로 회색빛 화강암 봉우리가 솟아오르면서 숲과 바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대비를 감상할 수 있다.


설악산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이제 그 풍경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 하늘을 향해 솟은 봉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깊은 계곡은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는지 생각하며 걷다 보면 익숙했던 자연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설악산의 기암괴석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풍경이 아니다. 지하 깊은 곳에서 태어난 암석이 지표로 드러나고, 물과 바람, 추위와 시간이 함께 빚어낸 자연의 작품이다. 우리가 오늘 마주하는 웅장한 바위산에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지구의 긴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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