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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역습, 위기의 지구 ⑤] 기후변화와 식량 공급의 불안정성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10.2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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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가뭄·집중호우로 흔들리는 농업 생산, 기후위기가 식량안보 위협으로 확대
  • 생산 감소에서 가격 상승까지 이어지는 연쇄 충격, 안정적인 식량 공급체계 구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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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Gemini 생성이미지]

 

계절은 오랫동안 농사의 기준이었다.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작물을 기르며, 가을에는 수확하는 일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반복됐다. 농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언제 비가 내리고 기온이 오르는지 가늠했고, 그에 맞춰 농사일을 준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경험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 일이 늘고 있다. 봄에는 때아닌 고온이 찾아오고, 여름에는 긴 가뭄 끝에 폭우가 쏟아진다. 가을이 깊어도 더위가 이어지거나 예상보다 이른 추위가 찾아오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는 단순히 날씨가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농작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는 일정한 온도와 햇빛, 물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적절한 시기를 벗어나면 작물의 생육과 수확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이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기반까지 흔들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지난 50년간 세계 농업 생산성의 증가 속도를 둔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전체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기온 상승과 기상이변이 없었다면 더 큰 성장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특히 중·저위도 지역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두드러졌다.


세계기상기구(WMO)가 2026년 3월 발표한 '2025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1년은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11년으로 기록됐다. 2025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43℃ 높았다. 이러한 온난화는 농업 생산 환경에도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농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다. 폭염이 이어지면 작물의 광합성과 생식 과정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가뭄이 길어지면 생육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공급받기 어렵다. 반대로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 농경지가 침수되거나 토양이 유실되고, 병해충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


특히 벼와 밀, 옥수수처럼 세계 인구의 주요 식량을 책임지는 작물은 생육 단계에 따라 기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꽃이 피고 수정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극심한 고온이 발생하면 낟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 수확을 앞두고 집중호우가 이어질 경우에는 생산량뿐 아니라 품질과 저장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한 지역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식량은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복잡한 국제 공급망을 통해 이동한다. 한 국가에서 생산한 곡물이 다른 나라의 식품 제조업체로 공급되고, 가축의 사료나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주요 생산국에서 가뭄이나 홍수로 수확량이 감소하면 그 영향은 국제 곡물가격과 수입국의 식품 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국가별 수출 제한이나 물류 차질,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겹치면 공급 불안은 더욱 커진다. 식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가격 상승이 다시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농업 현장의 생산 문제를 넘어 경제와 무역,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이러한 변화는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특히 중요한 과제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밀과 옥수수, 콩 등은 식품 원료뿐 아니라 축산업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된다. 국제 곡물시장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국내 생산량에 큰 변화가 없더라도 식품 제조비용과 사료비가 상승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국내 농업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사과와 배, 복숭아 등 과수는 겨울철 일정한 저온을 경험하고 봄철 적절한 기온을 맞아야 정상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겨울이 지나치게 따뜻하거나 개화 시기가 앞당겨진 상태에서 늦서리가 내리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여름철 폭염은 과일의 착색과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온 상승에 따라 일부 작물의 재배 가능 지역이 북쪽이나 고지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재배 가능 지역이 넓어진다고 해서 식량 생산이 반드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토양과 수자원, 농업 기반시설, 병해충 발생 양상까지 함께 달라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역에서 작물을 재배하려면 품종 개발과 재배기술, 생산시설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식량 공급의 불안정성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다. 식품 가격이 상승하면 소득이 높은 가구는 소비를 조정하거나 다른 식품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기본적인 식생활을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곡물과 채소, 과일 등 주요 식품의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 영양가 있는 식단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이 2026년 발표한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에서 약 6억 4,500만 명이 기아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됐다. 전년보다 일부 개선됐지만 여전히 막대한 인구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한 식단을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인구도 약 27억 명에 이른다.


물론 세계의 식량 불안이 모두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분쟁, 빈곤, 경제위기, 불평등한 식량 분배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이미 취약한 식량 공급체계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고, 기존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식량안보를 생산량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적으로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더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전달되지 못한다면 식량안보가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능력뿐 아니라 운송과 저장, 유통, 구매 능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농업의 변화도 시작되고 있다. 고온과 가뭄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물 사용량을 줄이는 정밀 관개기술을 도입하며, 기상정보를 활용해 파종과 수확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토양의 수분 보유 능력을 높이고 농경지의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노력도 기후변화에 대한 농업의 적응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새로운 품종과 농업기술을 도입하려면 비용이 필요하고, 소규모 농가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 정부의 농업 지원정책과 재해보험, 안정적인 수자원 관리, 농업 연구개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국가 차원에서는 주요 식량의 공급망을 점검하고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생산국을 다변화하고 적정한 비축체계를 유지하는 한편, 국내 농업의 생산 기반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제 곡물시장의 가격 변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공급 차질에 대비할 수 있는 정보체계 역시 식량안보의 중요한 요소다.


기업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식품과 유통, 외식, 축산업 등 농산물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원료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후위험을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원료 생산지역의 기상 변화와 수자원 부족, 공급처 집중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는 일은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과도 직결된다. 기후변화 대응이 환경경영의 영역을 넘어 공급망 관리와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농업의 조건을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계절이 돌아오면 그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시기에 같은 작물을 심더라도 이전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식량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뿐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다. 기상이변에 견딜 수 있는 농업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공급망의 위험을 분산하며, 누구나 필요한 식량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계절의 변화는 이미 농업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 영향은 생산자의 수확량을 지나 시장의 가격표와 소비자의 식탁으로 이어진다. 기후위기가 식량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농업과 경제, 사회 전반의 대응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한 끼의 안정성 역시 변화하는 기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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