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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②] 자동화에서 자율성으로, 공간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 이경미 박사
  • 입력 2026.10.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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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AI]

 

귀가 전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냉방을 켜고, 외출 후 깜빡 잊고 켜 둔 거실 조명을 꺼 본 경험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 원격 제어와 자동화 기술 덕분에 몸이 해당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환경을 조절하고, 반복되는 조작은 기기에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변화는 기기를 더 빠르고 편하게 다루는 쪽이었다. 여기에 점점 똑똑해지고 있는 AI가 결합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공간에 AI가 들어간다는 것을 이전의 기술이 그랬듯 기기의 성능이 더 좋아져 사람이 좀 더 편리해지는 일로만 받아들여도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홈’이라는 단일한 이름 속에 감춰진 기술의 스펙트럼을 먼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MIT 에이지랩 연구진이 제안한 홈 자동화 분류 체계는 주거 공간의 진화 단계를 전통형, 맞춤형, 네트워크형, 선제형, 동반자형으로 나눈다. 이 글에서는 이 가운데 두 유형의 차이에 주목한다. ‘네트워크형’이 기기를 통신망으로 연결해 사용자가 정해 둔 조건대로 작동하는 데 중심을 둔다면, ‘선제형’은 센서 데이터를 종합해 거주자의 생활 패턴과 맥락을 학습하고 필요한 조치를 먼저 판단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네트워크형에서 선제형으로 향하는 변화는 세 가지로 풀어 볼 수 있다. 첫째, 공간이 내부 상황을 단순히 ‘감지’하는 단계를 넘어 그 ‘맥락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둘째, 사람에게 세부적인 조작 명령을 요구하는 대신, 사용자의 목표나 상태를 이해하고 ‘스스로’ 실행 방법을 모색한다. 셋째, 사전에 정해진 규칙을 반복하는 데서 나아가 실시간 환경과 반응 결과에 따라 실행 방식을 적응적으로 ‘조율’한다. 이는 단순한 성능 개선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자동화에서 상황을 판단해 움직이는 자율성으로의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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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목표라도 사용 가능한 기기에 따라 실행 방안이 달라지는 AI의 목표 중심 제어. [사진=Sasha 논문의 기기 선택 원리를 바탕으로 필자 재구성.]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연구진이 개발한 실험용 스마트홈 시스템 ‘사샤(Sasha)’를 통해 이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샤는 방대한 언어 데이터를 학습해 사람의 목표에 해석하고 답변을 만들어 내는 ‘대규모 언어모델’을 활용한다. 우리가 요즘 즐겨 쓰는 AI에도 쓰이는 기술이다. 사샤에게는 “졸린데 잠을 깨고 싶다”처럼 원하는 상태를 말할 수 있다. 그러면 AI가 연결된 기기 중 무엇을 활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목표에 맞는 실행 방안을 만든다. 같은 목표라도 커피머신이 있는 환경과 조명만 있는 환경에서는 실행 방안이 달라진다. 실행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상적인 말로 수정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연구의 의미는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사람이 일일이 기기의 기능을 찾아 작동시켜야 했던 일의 일부를 시스템에 맡겼다는 데 있다. 사람은 원하는 목표를 말하고, 시스템은 그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 연결한다. 사샤는 앞서 짚은 선제형으로 향하는 세 가지 변화 가운데, 사람의 목표를 이해하고 실행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는 둘째 지점을 보여 준다.

 

산업계는 이런 지능이 공간 전체에서 작동할 기반을 넓히고 있다. 삼성 스마트싱스와 애플 홈 같은 플랫폼은 집 안의 가전과 센서를 연결해 여러 기기를 하나의 인터페이스에서 관리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결합하면서 연결의 범위도 넓어진다. 아마존의 알렉사 플러스는 대화로 여러 기기의 작동을 묶는 자동화를 만들고, 예약·주문 같은 외부 서비스까지 연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집 안의 기기를 제어하던 시스템이 생활에 필요한 일을 함께 처리하는 기반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가 여러 앱과 서비스를 하나의 틀에서 돌아가게 하듯, 집 안의 기기와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움직이는 시스템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일종의 ‘공간 운영체제(home OS)’를 향한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건축·공간 디자인 영역에서는 이 변화의 의미를 더 넓게 살펴볼 수 있다. 건축과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AI, 인지과학 등이 만나는 ‘인간–건물 상호작용(Human–Building Interaction)’ 연구는 사람과 건축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탐구한다. 이 분야는 설비의 작동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감각, 공간의 배치와 사회적 관계까지 다룬다. 관련 연구자들은 건물의 자율적 능력이 커질 때, 환경의 효율적 관리를 넘어 사람과 건물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어디에 머물고 어느 길을 피하는지, 혼자 있는지 여럿이 모이는지가 환경이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AI가 이런 맥락을 해석해 설비와 공간 구성을 조정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맞춰 환경이 스스로 달라지고 사람은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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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을 동적 정보 디스플레이로 활용한 UN스튜디오의 설계 제안. 2018년 베이징 Media Architecture Biennale의 UN스튜디오 기조발표 화면. [사진=Ava Fatah gen Schieck; 출처=Fatah gen Schieck et al., Frontiers in Computer Science, 2025, Fig. 1, CC BY]

 

이런 관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제시하는 건축적 구상도 있다. 네덜란드 건축 설계사무소 UN스튜디오의 설계 제안에서는 바닥면 자체가 동적인 정보를 표시하는 거대한 디스플레이가 된다. 손에 든 화면에 갇혀 있던 정보가 우리가 걷고 머무는 장소 자체와 결합하는 것이다. 이 구상에 AI의 상황 해석 능력을 더해 생각해 보면, 공간이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움직임과 활동에 따라 그때 그곳에 필요한 도움을 실시간으로 구성하는 환경으로 변형된다. 공간 구성을 다루는 연구에서는 AI를 활용해 가구 구성의 변화를 지원하는 지능형 건축 시스템도 모색되고 있다. 이처럼 AI가 관여하는 범위는 가전의 제어를 넘어, 바닥과 같은 표면과 가구의 배치, 사람들이 오가는 동선에까지 미치고 있다.

 

자동화에서 자율성으로 향하는 변화는 공간이 우리 활동에서 맡는 역할을 바꾼다. 그동안 공간은 사람의 활동을 담아내는 물리적 조건이었다. AI가 들어간 공간은 그 활동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성하는 일의 일부까지 맡는다. 기기와 센서, 물리적 표면이 정보를 주고받고 상황에 따라 작동을 조율한다는 점에서, 이런 공간은 ‘반응형 유기체’에 비유할 수 있다. 그 판단과 실행은 화면 속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몸을 두고 생활하는 조건을 바꾼다.

 

그러나 공간이 더 많은 일을 알아서 처리한다는 사실만으로 더 나은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어제와 같은 오늘만 살지 않는다. 매일 밤 열한 시에 잠들던 사람이 어느 날은 늦도록 깨어 책을 읽고 싶을 수 있다. 이때 공간이 학습한 패턴에 따라 조명을 낮추고 취침을 권한다면, 그 사람은 공간의 판단을 거절하고 다르게 선택하는 일에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선택에 이런 비용이 따르면 패턴은 사실상 규칙이 되고, 사람은 어제의 자신에게 갇힌다. 공간이 학습한 생활 패턴은 기본값일 뿐 강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공간이 먼저 움직이는 일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매번 말로 시켜야 한다면 자동화로 덜었던 수고가 다시 생기고, 사람이 미처 느끼지 못한 필요에 공간이 먼저 반응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선제성이 아니라, 그 판단에 대한 사람의 결정권이다. 공간의 지능을 평가할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일을 대신하는가와 함께, 사람이 그 도움을 받으면서도 다르게 선택하고, 거절하고, 직접 할 수 있는가에 있어야 한다.

 

공간에 맡기는 일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무엇을 직접 하고 판단하는 일로 남겨 두고 싶은가. 일상을 유지하는 데 쓰던 시간과 주의는 어디로 향할까. 다음 회차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가장 사적인 생활의 장소인 집에 들어왔을 때, 우리의 거주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본다.


이경미 박사 / STUDIO K.153 대표


공간 기획과 설계·시공을 아우르는 실무 전문가이자,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연구자이며, 도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예술가다. 패션 분야의 비주얼 머천다이징(VMD)을 시작으로 약 20년간 주거·상업·업무·공공문화공간에 걸쳐 기획, 설계, 시공 및 감리 등 공간 조성의 전 과정을 수행해 왔다. 인쿱스인테리어협동조합 초대 이사장, 도시재생 코디네이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며 공간디자인의 실무 영역을 도시재생과 공공정책 분야로 확장했으며,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학문적으로는 공간에 축적된 기억과 시간, 인간의 실존적 경험에 주목해 왔다. 석사 연구에서는 노스탤지어를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과 시간성을 탐구했으며, 박사 연구에서는 하이데거의 ‘시적 거주’ 개념을 공간디자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인간과 공간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상응적 공간’ 개념을 제안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이론적 탐구를 도시 퍼포먼스와 예술적 실천으로 확장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적 행위와 사회적 관계가 장소의 의미와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실험하며, 공간을 물리적 환경을 넘어 인간의 삶과 기억, 관계가 형성되는 역동적인 장으로 바라보는 연구와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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