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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를 읽다 ㉝] 발전소가 미술관이 되다…테이트 모던이 바꾼 도시의 풍경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10.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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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의 오래된 발전소,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재탄생하며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 2016년 블라바트니크 빌딩 증축으로 예술의 영역 확장, 건축과 문화가 시민의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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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모습. [사진=Ramboll]

 

영국 런던의 템스강 남쪽 강변을 걷다 보면 높은 굴뚝이 솟아 있는 거대한 벽돌 건물을 만나게 된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오래된 산업시설처럼 보이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넓은 공간을 거닐며, 때로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런던의 풍경을 바라본다. 한때 도시의 전기를 생산하던 발전소가 이제는 예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 된 것이다.


런던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오래된 건축물이 새로운 쓰임을 만나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산업시설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 안에 예술을 담았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전시뿐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머무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테이트 모던의 이야기는 건물 하나의 변화에서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도시가 과거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시민의 삶과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테이트 모던의 전신은 뱅크사이드 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다. 오랫동안 런던에 전기를 공급했던 이곳은 발전소 운영이 중단되면서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길을 선택했다. 스위스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이끄는 건축사무소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를 맡았고, 2000년 현대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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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실내 모습. [사진=Ramboll]

 

건축가들은 발전소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지 않았다. 높은 굴뚝과 벽돌 외벽, 넓고 높은 내부 공간을 살리면서 미술관에 필요한 기능을 더했다. 특히 발전설비가 설치돼 있던 터빈홀(Turbine Hall)은 거대한 설치미술과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장소로 바뀌었다. 산업시설 특유의 규모와 구조가 오히려 기존 미술관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발전소의 과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과거에는 기계가 움직이고 전기가 생산되던 공간에서 이제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펼쳐지고, 관람객들은 저마다 다른 경험을 쌓는다. 같은 건물이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달라지면서 공간의 의미도 함께 변한 셈이다.


2000년 개관한 테이트 모던은 빠르게 런던의 주요 문화명소로 자리 잡았다. 관람객이 늘고 현대미술의 표현 방식도 다양해지면서 기존 공간만으로는 새로운 수요를 충분히 수용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미술관은 증축을 추진했고, 2016년 6월 17일 새로운 건물을 개관했다.


처음에는 '스위치 하우스(Switch House)'로 불렸던 이 건물은 이후 주요 후원자의 이름을 따 '블라바트니크 빌딩(Blavatnik Building)'으로 명명됐다. 설계는 기존 테이트 모던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던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다시 맡았다.


새 건물은 기존 발전소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수평으로 길게 펼쳐진 기존 건물과 달리 위로 솟아오르는 형태를 갖췄으며, 벽돌을 격자처럼 쌓아 만든 외벽이 독특한 인상을 준다. 낮에는 단단한 벽돌 건축물의 질감이 드러나고, 밤에는 건물 내부의 불빛이 벽돌 사이로 새어 나오면서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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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실내 모습. [사진=Ramboll]

 

새로운 건축물은 기존 발전소의 재료와 분위기를 이어받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오래된 건축물과 새로운 공간이 서로 어울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덕분에 테이트 모던은 서로 다른 시대의 건축이 하나의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증축 이후 테이트 모던의 전시 공간은 약 60% 늘어났다. 하지만 변화는 공간의 크기에만 있지 않았다. 공연과 퍼포먼스, 영상, 설치미술 등 기존 전시실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다양한 현대미술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작품을 벽에 걸어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직접 공간을 경험하고 예술가의 움직임과 표현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경험도 더욱 다양해졌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건축물을 둘러보거나 잠시 쉬어가기 위해 들르는 사람도 있다. 미술관 안팎을 거닐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런던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도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이다. 예술을 감상하는 장소가 시민들의 일상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방문객 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주요 관광명소협회(ALVA)에 따르면 테이트 모던은 2018년 약 587만 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은 관광명소에 올랐다. 미술관은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뿐 아니라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테이트 모던의 가치를 방문객 수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산업시설이 문화공간으로 바뀌면서 주변 도시와 사람들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테이트 모던이 자리한 템스강 남쪽 지역은 과거 산업과 물류시설이 밀집했던 곳이다. 미술관이 들어선 이후 강변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고 머무는 공간이 확대됐으며, 주변의 문화·상업 활동도 활기를 띠게 됐다. 미술관이 하나의 독립된 건축물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보행 동선과 공공공간에 연결되면서 지역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기여한 것이다.


물론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방문객이 늘고 지역이 활성화되면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생기지만, 동시에 임대료 상승이나 기존 주민과 소규모 상점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문화공간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테이트 모던은 환경적 측면에서도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오래된 발전소를 철거하지 않고 새로운 용도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건축물의 재사용이라는 접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자재를 활용하면 신축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 사용과 환경적 부담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건물을 재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환경적 성과가 모두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개보수에 사용된 자재와 에너지, 이후 건물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테이트 모던은 오래된 건축물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일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넓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테이트 모던은 상설 소장품 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비용 부담 없이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시민들이 예술을 보다 친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예술을 즐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고, 어떤 사람은 낯선 표현을 보며 새로운 호기심을 느낀다. 어린이에게는 상상력을 넓히는 시간이 되고, 어른에게는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인 동시에 서로 다른 경험과 감정이 쌓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앞선 연재에서는 예술과 문화 활동이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러한 경험을 일상에서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테이트 모던의 사례는 문화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과 접근성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좋은 예술작품이 있어도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거나 편안하게 머물 수 없다면 그 가치는 충분히 공유되기 어렵다. 반대로 누구나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 마련되면 예술은 특별한 날에만 경험하는 대상에서 일상의 일부로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술관의 가치는 건물의 규모나 소장 작품의 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을 찾고, 예술을 통해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며, 그 시간을 자신의 삶과 연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문화시설이 도시의 일상과 가까워질수록 예술이 지닌 사회적 의미도 넓어진다.


테이트 모던은 한때 런던에 전기를 공급하던 발전소였다. 지금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예술을 감상하고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을 만나는 장소가 됐다. 과거에는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생산했다면, 오늘날에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는 일은 단순히 건물을 고쳐 사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면서도 앞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테이트 모던은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이 예술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변화가 건물 안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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