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현재의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의 지구를 ‘정상 상태’로 볼 것인가, 즉 온난화의 기준점이 어디인가라는 질문과 깊이 연결돼 있다. 최근 영국 과학자들이 발표한 새로운 지구 기온 데이터 세트는 이 기준점 논쟁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전 세계 기후 과학계는 주로 1850년부터 1900년 사이의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 기준선으로 삼아 왔다. 이 시점은 체계적인 기온 관측 자료가 본격적으로 축적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이미 그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고, 인간 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역시 18세기 후반부터 증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영국 기상청 해들리 센터와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UEA)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진은 GloSAT(Global Surface Air Temperature)이라는 새로운 지구 표면 기온 기록을 구축했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지구 시스템 과학 데이터(Earth System Science Data)에 발표되었으며, 전 지구 평균 기온 기록을 무려 1781년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18세기 관측 자료를 되살리다
GloSAT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오래된 관측 기록들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다. 18세기 말에는 오늘날처럼 전 지구적인 기상 관측망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각 지역에서는 이미 꾸준히 온도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국 중부 지역의 기온 기록은 165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스웨덴 웁살라에서는 1722년부터 기온 관측이 시작됐다. 독일 바이에른의 호엔파이센베르크에서는 수도사들이 1781년부터 거의 끊김 없이 기온을 기록해 왔다.
연구진은 이러한 육상 관측 자료에 더해 18~19세기 선박 항해 기록도 적극 활용했다. 당시 영국 동인도 회사와 같은 상업 조직들은 무역 항로와 바람, 해류를 파악하기 위해 기압과 온도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비록 측정 방식에는 여러 편향이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이를 정교하게 보정해 해양 공기 온도 자료로 재구성했다.
이렇게 육지와 바다의 공기 온도를 함께 사용한 점은 GloSAT의 또 다른 특징이다. 기존의 많은 기후 데이터 세트가 해수면 온도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GloSAT은 초기 시기 자료의 한계를 고려해 ‘해양 공기 온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산업화 이전은 정말 ‘1850년’이었을까
새로운 데이터 세트가 보여주는 결과는 분명하다. 1781년부터 1849년까지의 지구 평균 기온은 1850~1900년 기간보다 확실히 낮았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산업화 이전’이라고 불러온 시기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따뜻해진 상태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물론 연구진은 이 초기 온난화가 전부 인간 활동 때문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19세기 초에는 탐보라 화산(1815년)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대규모 화산 폭발(1808년) 등으로 인해 강력한 냉각 효과가 나타났다. 이후 기온이 다시 상승한 것은 이러한 자연적 냉각에서 회복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독립적인 연구 결과는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에도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난화가 이미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지지한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은 이 시기의 인간 기여 온난화를 0~0.2도 범위로 추정했으며, GloSAT 연구진과 후속 연구들은 약 0.09도 수준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이는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이전에도 삼림 개간, 초기 석탄 사용, 인구 증가 등이 이미 지구 시스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기후 목표는 흔들리는가
이러한 결과가 곧바로 파리기후협정의 1.5도 목표를 무력화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 과학자들은 파리협정의 목표가 정책적·실용적 기준선인 1850~1900년을 바탕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기준선을 더 과거로 옮겼다고 해서 기후 대응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우리가 지구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온난화는 최근 수십 년에 갑자기 시작된 현상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누적된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더 길어진 기억, 더 무거워진 책임
GloSAT 데이터는 초기 시기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연구진 역시 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까지 확장된 이 기온 기록은 지구 기후의 ‘기억’을 크게 넓혔다.
기후 과학자 피터 손은 이번 연구가 “지구 온난화가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새삼 드러낸다기보다, 우리가 기후 시스템을 얼마나 오랫동안 압박해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간의 영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시작됐으며, 그 누적 효과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구의 과거를 더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앞으로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위 내용은 아래 연구보고서 자료를 참고하였다.
Morice et al. (2025), An observational record of global gridded near-surface air temperature change over land and ocean from 1781 (Earth System Science Data), DOI:10.5194/essd-17-7079-2025.
GloSAT Data Catalog (CEDA): GloSATref, GloSATLAT, GloSATMAT datas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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