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ESG코리아뉴스를 통해 연재로 이어진다. 2026년 출산기에 확인된 또 다른 어미 고래와 그 새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각 개체에 부여된 이름과 번호 뒤에 숨겨진 삶의 궤적을 기록한다. 축적된 관찰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하나의 생애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묻게 된다.
이 고래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바다를, 과연 우리는 지금처럼 방치해도 되는가.
북대서양의 겨울, 또 하나의 탄생 신호
2026년 1월 20일, 미국 해양대기청(NOAA) 고래 신고 핫라인으로 한 통의 전화가 접수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동쪽으로 약 17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어미 참고래와 새끼 한 쌍이 목격됐다는 시민의 신고였다.
곧바로 현장 정보를 검토한 과학자들은 어미를 북대서양 참고래 #3020, ‘기자(Giza)’로 확인했다. 2026년 출산기에 기록된 또 하나의 생명 탄생이었다.
짧은 관측 기록 한 줄이지만 이 발견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북대서양 참고래는 약 380마리, 그중 번식이 가능한 암컷은 70마리 안팎에 불과하다. 출산 한 건 관측 한 번이 곧 종의 미래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는 이유다.
피라미드를 닮은 굳은살, 기자라는 이름
기자는 최소 26살로 추정되는 암컷이다. 이번에 확인된 새끼는 그녀의 네 번째 출산 기록에 해당한다. 마지막 출산은 2021년으로 불과 5년 만에 다시 새끼를 낳았다. 이는 2026년 출산기에 확인된 어미들 가운데 8번째로 ‘짧은 출산 간격’을 보인 사례다.
‘기자(Giza)’라는 이름은 그녀의 머리 오른쪽에 분포한 굳은살(callosity)에서 유래했다. 세 개의 굳은살이 나란히 자리한 모습이 이집트 기자 평원의 세 개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자들에게 이 굳은살은 단순한 외형적 특징이 아니다. 개체를 식별하는 지문이자 수십 년 동안 바다를 건너며 살아남은 흔적이다.
어미에서 할머니가 되기까지
기자의 첫 번째 새끼는 2008년에 태어난 암컷 #3820, ‘홉스카치(Hopscotch)’였다. 그리고 이 기록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홉스카치는 2024년 자신의 첫 새끼를 낳았고, 그 순간 기자는 북대서양 참고래 집단에서 드문 ‘할머니 고래’가 되었다.
개체 수가 급감한 이 종에서, 세대가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예외적 사건이다. 많은 암컷들이 평생 단 한 번도 출산하지 못하거나 출산 후 새끼를 잃는다. 그런 현실 속에서 기자는 어미를 넘어 혈통을 잇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성취는 결코 축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산 간격이 다시 짧아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개체군이 압박 속에 놓여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암컷들이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다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반복되는 경고 속의 출산
2017년 이후 북대서양 참고래 집단에서는 ‘비정상적 폐사 현상(Unusual Mortality Event)’이 이어지고 있다.
어구 얽힘과 선박 충돌로 인해 전체 개체 수의 20% 이상이 사망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지난 10년간 이 종은 태어나는 수보다 죽는 수가 더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의 새끼 역시 단순한 출산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종의 시간을 잠시나마 연장시킨 사건이며, 동시에 인간 사회를 향한 또 하나의 경고다.
NOAA와 국제 연구진은 속도 제한 해역 확대, 고래 안전 어구 개발, 서식지 보호 강화 등의 대책을 반복해서 제안해 왔다. 그러나 결론은 늘 같다.
북대서양 참고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으로 인한 사망과 부상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다음 선택을 묻는 존재들
올봄이 지나면 기자와 그녀의 새끼 역시 다시 북쪽 바다로 향할 것이다. 그 항로에는 여전히 선박 항로와 어업 구역이 겹쳐 있다. 이 여정이 무사히 이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자라는 이름과 #3020이라는 번호 그리고 그녀가 남긴 세대의 기록이 과학자들의 데이터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다음 선택을 바꾸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음 편에서는 2026년 출산기에 확인된 또 다른 북대서양 참고래 어미와 새끼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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