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50% 관세에 캐나다 ‘달러 대 달러’ 보복
- 무역협상 결렬 뒤 갈등 급속 확산
- 트럼프 “캐나다에 가르쳐줄 때”
- 카니는 ‘주권’ 강조하며 유럽과 관계 강화
- 8,720억 달러 교역한 이웃 국가의 충돌
세계에서 가장 긴 비무장 국경을 맞대고 경제와 안보를 공유해온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관세를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 보복관세와 강경 발언을 거쳐 국가 간 신뢰의 문제로 번지면서, 오랜 동맹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서로를 압박하는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과 캐나다가 주고받는 메시지는 일반적인 무역분쟁의 수준을 넘어선다. 미국은 캐나다산 제품에 최고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캐나다는 미국산 제품에 사실상 같은 규모의 보복관세를 결정했다. 양국 정상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협력보다 압박과 주권, 대응이 강조되고 있다.
갈등은 지난 21일 양국의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캐나다 측에서는 협상이 합의에 “매우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막판 협상에서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미국은 이후 약 200억 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수입품에 새로운 50% 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도 물러서지 않았다. 캐나다 정부는 25일 미국의 관세에 ‘달러 대 달러(dollar-for-dollar), 세율 대 세율(rate-for-rate)’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며 미국산 제품에 15%, 25%,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보복관세는 9월 8일부터 시행되며 철강과 유제품, 가전제품, 농업장비, 펄프·제지, 전자제품 등이 대상이다. 캐나다 정부는 자국 노동자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75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책도 함께 내놨다.
문제는 양국의 충돌이 이제 관세율을 둘러싼 경제적 협상을 넘어 상대 국가를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 보수 성향 방송인 글렌 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캐나다가 제공하는 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면서 이제 캐나다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줄 때”라고 말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동맹 관계를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소셜미디어에서도 “미국은 캐나다가 필요하지 않으며 캐나다가 미국을 필요로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캐나다를 상호의존적인 경제·안보 파트너라기보다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상대국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캐나다의 대응 역시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무역협상을 중단하면서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기보다 캐나다의 국익과 주권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택했다. 캐나다 정부도 이번 보복관세 발표에서 미국이 제안한 새로운 조건이 캐나다 노동자와 기업, 전략산업 및 국가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카니 총리에 대한 캐나다 국내 여론도 현재까지는 이러한 강경 대응을 지지하는 방향이다. 로이터는 26일 대부분의 캐나다인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중단하고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는 카니 총리의 대응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무역전쟁의 경제적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이 같은 지지가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더 주목할 부분은 캐나다가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니 총리는 다음 달 유럽의회를 방문해 연설할 예정이다. AP는 이를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캐나다가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평가했다. 카니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미국 이외 국가에 대한 수출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과 안보·방위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이번 갈등이 단기적인 관세전쟁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과 캐나다는 지난해 상품과 서비스를 합쳐 약 8,720억 달러를 교역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하루 약 400만 배럴의 원유가 공급되고 있으며 미국은 캐나다로부터 알루미늄과 비료 원료인 칼륨, 자동차 부품 등을 대규모로 공급받고 있다. 양국 자동차 산업은 국경을 넘나드는 하나의 공급망에 가깝게 연결돼 있다.
따라서 “미국은 캐나다가 필요하지 않다”는 정치적 수사와 실제 경제구조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오히려 관세전쟁이 장기화하면 어느 한쪽만 피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다. 캐나다 경제가 미국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더 큰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 기업 역시 원자재와 자동차 부품 등의 가격 상승과 공급망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관세 비용의 일부는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양국이 쉽게 물러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 갈등이 점차 ‘얼마의 관세를 부과할 것인가’에서 ‘누가 누구에게 양보할 것인가’의 문제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미국의 압박을 경제 문제가 아닌 국가 주권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26일 이번 무역분쟁이 캐나다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한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도 압박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산 자동차와 트럭,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를 추가로 높일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 경우 북미 자동차산업처럼 수십 년 동안 하나의 공급망으로 발전해온 산업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경제 갈등이 국민감정으로 확산되는 조짐도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온타리오호(Lake Ontario)를 ‘아메리카호(Lake America)’로 바꾸는 방안을 거론하자 캐나다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실제 명칭 변경 가능성과 별개로 이러한 발언은 이미 악화된 양국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미국으로 공급하는 전력을 협상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실제 캐나다가 미국 전체의 대규모 정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지만, 오랫동안 서로 연결해온 에너지 인프라마저 무역분쟁의 대응 카드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양국 관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AP는 26일 양국 사이에 쌓인 ‘적대감(animosity)’이 결국 어느 쪽도 원하지 않는 무역전쟁을 끝내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적 계산만 놓고 보면 협상을 통해 갈등을 끝낼 이유가 충분하지만, 정치적 감정과 국가적 자존심이 개입하면서 해결은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단순한 교역 상대국이 아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를 통해 안보를 공유하고, 에너지와 자동차·철강·알루미늄·농업을 비롯한 핵심 산업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해온 대표적인 동맹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갈등에서 더욱 우려되는 것은 관세 자체보다 신뢰의 훼손이다.
관세는 협상을 통해 낮출 수 있고 무역협정 역시 다시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공급망을 바꾸고 정부는 새로운 동맹과 시장을 찾게 된다. 국민들의 인식까지 부정적으로 변하면 관계를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캐나다가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등으로 외교·통상 관계를 다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가 ‘적대국’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양국 경제의 상호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안보·사회·인적 교류 역시 깊게 연결돼 있다. AP가 인용한 전문가들도 양국 모두 장기적인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는 만큼 결국 협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갈등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수십 년간 축적된 동맹의 신뢰가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 앞에서 얼마나 견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세계 경제가 보호무역과 경제안보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충돌은 단순한 북미 지역의 무역분쟁으로만 보기 어렵다. 가장 긴 국경과 가장 깊은 공급망을 공유해온 두 국가조차 관세를 무기로 상대를 압박하고 보복하는 관계로 변할 수 있다면, 국제사회가 구축해온 자유무역과 동맹 기반의 경제질서 역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관세전쟁에서 지금 지켜봐야 할 것은 어느 나라가 먼저 물러서느냐만이 아니다. 오랜 동맹 사이에 생긴 경제적 국경이 정치적·외교적 국경으로까지 높아질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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