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채찍질 시대, 재난대응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 복합재난의 시대, 기후적응 정책을 다시 설계하라
올여름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한 지역에서 극심한 가뭄과 산불이 발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지역에서는 집중호우와 홍수가 발생하는 등 ‘극과 극’의 기상이 반복되고 있다. 단순히 비가 많이 오거나 기온이 높아지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기후위기는 서로 다른 재난을 짧은 시간 간격으로 연속해서 발생시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기후과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기후채찍질(Climate whiplash)’이라고 부른다. 폭염과 가뭄에서 폭우로, 폭우에서 다시 가뭄으로 기후 상태가 급격하게 전환되는 현상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전 지구적으로 기후채찍질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후채찍질이 무서운 이유는 재난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재난이 시작된다는 데 있다. 가뭄으로 메마른 토양은 폭우가 내려도 물을 쉽게 흡수하지 못한다. 그 결과 홍수와 산사태 위험이 커진다. 반대로 비가 많이 내려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 뒤 폭염과 가뭄이 닥치면 산불의 연료가 급격히 늘어난다. 재난과 재난이 서로의 피해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올해 영남지역에서는 장기간의 폭염과 가뭄으로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8월 2일에는 경남 양산의 낮 최고기온이 42.5℃까지 치솟았다. 이는 국내 기상관측 122년 역사상 처음으로 42℃를 넘어선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그런데 불과 보름 뒤인 8월 17일에는 경남 남해안에 전혀 다른 재난이 닥쳤다. 거제에는 하루 동안 577.4mm의 비가 쏟아져 관측 이래 일강수량 최고치를 기록했고, 통영에도 400mm가 넘는 극한호우가 발생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물 부족을 걱정하던 지역이 이번에는 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기 시작한 기후채찍질이다.
문제는 기존의 재난관리체계가 이러한 ‘연쇄적·복합적 재난’을 충분히 전제로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재난정책은 폭염은 폭염대로, 가뭄은 가뭄대로, 홍수는 홍수대로 관리하는 방식에 익숙했다. 그러나 현실의 기후재난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폭염과 가뭄이 산불을 키우고, 산불 이후 집중호우가 산사태와 토사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 농업에서는 가뭄으로 작물이 약해진 상태에서 폭염이 겹치고, 이어지는 집중호우가 수확 직전 농작물을 한꺼번에 훼손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제 재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첫째, 재난별 대응에서 복합재난 대응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폭염·가뭄·산불·집중호우·산사태를 개별 재난으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위험으로 분석하고 통합적으로 예측해야 한다.
둘째, 기상예측과 재난대응을 실시간으로 연결해야 한다.
기상청의 초단기 예측, 농업기상정보, 산불위험정보, 수문정보, 위성정보 등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분석해 위험지역과 취약계층에 선제적으로 전달하는 ‘기후위험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기후적응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하천과 배수시설을 정비하고 저류시설과 산사태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동시에 도시의 불투수면을 줄이고, 농업에서는 물 절약형 관개시설과 가뭄·고온에 강한 품종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농업과 식량안보를 기후재난 정책의 핵심에 포함해야 한다.
기후채찍질은 농업생산량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결국 식량가격과 식량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농업용수 확보, 농작물 재해보험, 스마트농업, 기후적응 품종 개발과 함께 지역 단위의 농업재난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기후채찍질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양산의 42.5℃와 거제의 577.4mm가 보여주듯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가뭄과 폭염을 견딘 뒤 갑자기 쏟아지는 극한호우를 다시 견뎌야 하는 시대다. 이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음 재난이 무엇인가’를 묻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재난이 동시에 또는 연속해서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재난도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체계 역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기후채찍질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정책은 재난이 발생한 뒤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재난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복구비가 아니라 더 빠른 예측, 더 촘촘한 경보, 더 강한 기후적응 투자다. 기후채찍이 더 세게 휘둘러지기 전에 국가의 재난대응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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