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익 박사의 『더 약탈당하기 전에 읽어라』는 제목부터 상당히 도발적이다. ‘약탈’이라는 단어는 전쟁이나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약탈은 총과 군함으로 이루어지는 과거의 약탈이 아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RE100, ESG 평가와 같은 새로운 국제 규범을 통해 시장의 질서와 경쟁의 규칙이 바뀌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약탈을 의미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이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더 이상 환경문제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기업과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경제·산업·무역의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매우 분명하다. 지금 세계 경제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서 값싸게 생산하는 기업보다, 탄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감축하는지를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CBAM은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에는 제품의 가격과 품질, 생산기술이 수출 경쟁력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가까지 가격과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배터리 등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핵심 산업들이 탄소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대응을 미룬다면, 어느 순간 우리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저자의 경고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탄소 규제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일시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RE100과 ESG 역시 기업의 투자와 조달, 금융,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경제 질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에너지를 사용했는지, 얼마나 탄소를 배출했는지, 그 배출량을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탄소가 기업의 재무제표에는 직접 표시되지 않더라도 점차 기업의 비용과 자산가치, 투자 유치,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가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한 단계 확장시킨다. 지금까지 기후변화는 주로 이상기후, 폭염, 홍수, 가뭄,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의 관점에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동시에 산업구조와 국제무역 질서를 바꾸는 거대한 경제적 전환이다.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생산시설의 피해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탄소중립은 환경부처만의 정책이 아니라 산업·에너지·금융·무역·농업을 모두 관통하는 국가전략이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특히 우리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탄소 규제에 대한 뒤늦은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국제규범이 만들어진 뒤 우리 기업이 그때그때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규제가 현실화된 이후에는 이미 경쟁의 출발선이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탄소를 줄이는 기술, 재생에너지 확보, 에너지 효율 향상, 탄소 데이터 관리, 친환경 공급망 구축 등에 지금부터 투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탄소중립을 기업에 대한 규제와 비용 부담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도 안 된다. 위기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 수소, 저탄소 소재, 친환경 농업, 순환경제, 탄소포집기술 등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탄소 규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 규제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장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더 약탈당하기 전에 읽어라’는 결국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변화의 규칙을 이해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국제경쟁에서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나라가 시장을 지배했다면, 앞으로는 탄소를 관리하고 감축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을 가진 국가와 기업이 새로운 경쟁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책은 기업인뿐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공직자, 금융인, 연구자, 대학생에게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특히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로만 생각해 온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기후변화가 어떻게 산업과 무역, 금융의 언어로 바뀌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탄소중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되어가고 있다. 탄소 규제의 시대에 약탈당하지 않으려면 규제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변화의 방향을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약탈당하기 전에 읽어라』는 우리에게 단순한 경고를 넘어, 변화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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