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 아니라 ‘들어주는 태도’다”
나는 오랫동안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말을 잘하지도 못했고, 생각을 또박또박 표현하는 것도 서툴렀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면 상황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있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벌어졌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말을 가로채거나,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마무리되는 순간들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한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술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미처 하지 못한 몇 마디의 말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아 나를 괴롭히곤 했다.
‘왜 그 말을 못 했을까...’
‘내가 조금만 더 잘 표현했더라면...’
‘그 사람은 내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한 걸까...’
사람을 좋아했지만, 사람 때문에 지치는 날이 많았다. 그 시간들은 불면과 스트레스로 이어졌고 두통과 속쓰림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히 내가 말을 못해서가 아니었다.
40대와 50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직장에서는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말을 삼켰고, 가정에서는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그냥 넘겼으며, 오랜 친구 앞에서도 “어차피 내 말은 안 통한다”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을 삼킨 세월이 쌓이면 사람은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간다.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고, 설령 말을 해도 어딘가 작아진 느낌이 든다.
그러던 나는 코칭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서툴게 말을 이어가도 중간에 끊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말이 막히면 재촉하지 않았고,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이야기가 내 속도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지켜 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랬었다는 말씀이군요.”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때 마음이 참 많이 힘드셨겠어요.”
대단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느꼈다.
‘아, 내 말이 존중받고 있구나.’
그 경험은 오래 굳어 있던 어떤 마음을 천천히 녹여 주었다. 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내가 다시 말하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에게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빠르게 조언을 건넨다. 경험이 쌓일수록 이 경향은 더 강해진다. 상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건 이렇게 하면 돼”라거나 “나도 그런 적이 있는데 말이야”라고 먼저 말해 버린다. 나쁜 마음은 아니다. 빨리 도움을 주고 싶은 선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상대방의 마음은 조용히 문을 닫는다.
나 역시 코칭을 통해 그 사실을 마주했다. 돌이켜보면 대화의 방식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오히려 더 작아지고 있었다. 코칭을 배우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오랫동안 다른 이의 말에 눌려 살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말을 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상대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결론을 내리고, 대화의 방향을 내가 먼저 정하고 있었다. 내가 당했던 일을 나 역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습관을 비로소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데, 코칭은 조용하지만 깊은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존중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다. 상대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일, 그 사람의 삶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일,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아도 그 답을 꺼내기 전에 조금 더 머물러 있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이야기는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끝까지 함께 있어 주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말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오랜 관계 속에서 말을 삼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누군가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명쾌한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 한 사람,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함께 있어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가장 따뜻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ㅣ강윤영 (Kang Yoon Young)
'꿈글'로 활동하며 사람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설계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4년간 글쓰기와 북마케팅 활동을 이어오며 정신건강문화사, DID드림코칭센터 등 브랜드 및 프로젝트의 콘텐츠 기획과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독립출판 브랜드 ‘달별담’을 통해 글과 코칭을 기반으로 출판 프로젝트와 글쓰기 커뮤니티, 북살롱을 운영하며 개인의 서사가 삶과 브랜드로 확장되는 과정을 돕고 있다.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는 철학 아래 사람의 이야기가 존중받는 콘텐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BEST 뉴스
-
[윤재은 칼럼] 집은 늘어나는데, 왜 내 집은 더 멀어지는가?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택지 개발과 재건축·재개발, 도시정비 등을 통해 주택공급을 최대한 신속하게 늘리겠다고 밝혔다. 총리실이 관련 상황을 매일 점검하고 대통령도 매주 보고받으며 구체적인 사업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사진=Ai]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업이 공급망 전체의 환경·인권·안전·윤리·탄소배출 관리 수준을 확인하면서 중소기업에도 ESG 대응이 실... -
[서정태의 ESG 현장클리닉③] 녹색인증과 녹색제품 인증, 정확히 구분해야 공공 조달 판로가 열린다.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서정태, Ai]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이 국가 산업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공 조달 시장에서도 에너지 절감, 온실가스 감축, 자원순환 및 환경오염 저감 성능을 갖춘 제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⑯] 농지가 사라지면 식량안보도 무너진다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농지가 사라지면 식량안보도 무너진다 [사진=Ai, 남재철] 식량안보가 국가안보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농지는 더 이상 단순한 토지나 생산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전략자산으로 인식...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⑲] 찬 이슬이 알려주는 농업의 시간, 한로(寒露)와 기후변화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찬 이슬이 알려주는 농업의 시간, 한로(寒露)와 기후변화 [사진=남재철, Ai] 24절기 가운데 열일곱 번째인 한로(寒露)가 다가왔다. ...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⑱] 추미애 도정 100일, 경기도의 미래전략은 어디에 있는가?
▲ 추미애 도정 100일, 경기도의 미래전략은 어디에 있는가? [사진=남재철, Ai] 인수위의 정책 구상이 도정의 실행전략으로 이어져야 지난 6월, 추미애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경기준비위원회)의 ‘에너지 순환경제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