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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예술을 읽다 ①] 세 사람이 하나의 세계를 떠받치다…나이지리아 ‘조화로운 세계’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9.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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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지리아와 칠레대사를 지낸 조명행 관장이 아프리카에서 만난 예술
  • 영월 아프리카 미술 박물관에서 만나는 흑단 한 그루에 새긴 공존의 메시지
  • 흑·백·황 세 인물이 서로 얽혀 지구를 들어 올린 165cm 흑단 조각

[편집자주] 〈아프리카 예술을 읽다〉는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소장·전시 작품을 하나씩 만나며 작품에 담긴 아프리카 각 지역의 역사와 자연,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ESG코리아뉴스의 문화 연재시리즈이다. 조각과 가면, 생활 도구와 장신구 등 한 점의 작품에서 출발해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 바라보기 쉬웠던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와 이야기를 보다 상세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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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조명행 관장이 나이지리아의 ‘조화로운 세계’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사진=ESG코리아뉴스]

 

강원 영월의 한 박물관에 들어서면 세 사람이 하나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조각과 마주하게 된다.


검은색과 밝은색의 세 인물은 각자의 몸을 나선처럼 서로 휘감으며 위로 뻗어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세 사람이 함께 커다란 구(球)를 들어 올린다. 어느 한 사람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구조이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전시된 나이지리아 목조 작품 ‘조화로운 세계(World of Harmony)’이다. 높이 165cm의 이 작품은 흑단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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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나이지리아의 ‘조화로운 세계’ 작품.[사진=ESG코리아뉴스]

 

조명행 관장은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흑·백·황의 삼색 인종으로 설명한다. 서로 다른 인종이 함께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박물관의 여러 소장품 가운데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처음 맞는 작품이면서, ‘인종의 벽을 넘어 세계인이 하나가 된다’는 박물관의 설립 취지를 상징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한 덩어리의 흑단을 깎아 만들어진 것으로 소개돼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왜 나이지리아에서 영월까지 오게 됐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한 외교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외교관이 아프리카 미술에 빠지기까지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을 세운 사람은 조명행 관장이다.


조 관장은 1965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일본·자메이카·스페인 등 여러 국가에서 근무했으며, 1989년 주앵커리지 총영사에 이어 1991년 주나이지리아 대사, 1996년 주칠레 대사를 지냈다. 이후 재한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과 한국-아프리카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아프리카 미술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나이지리아에서 시작됐다.


주나이지리아 대사로 근무하던 당시 브라질 대사의 집에서 아프리카 부족의 인물상과 가면을 접하면서 아프리카 조각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후 현지 출장이나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토산품 시장과 시골 지역 등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모았고, 그렇게 수집한 작품이 1천여 점에 이르렀다.


30여 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친 뒤에는 자신이 모은 아프리카 미술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시작했다. 2001년 부산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아프리카 미술전’을 열었고, 이후 2009년 5월 19일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을 개관했다.


외교관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만난 문화가 개인의 수집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박물관으로 이어진 셈이다.


한국박물관협회는 2025년 조 관장을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그가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문화적 편견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검은 나무에 새겨진 세 사람


‘조화로운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품의 메시지는 형태 자체에서 드러난다.


재료인 흑단은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하며, 심재의 짙은 색과 특유의 광택으로 가구와 장식품, 악기, 조각 등에 오랫동안 사용돼 온 목재이다.


이 작품에서는 흑단의 색상 차이도 조형의 일부가 됐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흑단은 겉과 속의 색이 다르고 안쪽으로 갈수록 짙은 검은색을 띤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의 특성을 이용해 서로 다른 피부색의 세 인물을 표현했다.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래에서 시작된 세 사람의 몸은 서로 교차하며 하나의 기둥처럼 위로 올라간다. 각자의 형체는 분명하지만 서로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전체의 형태가 완성되지 않는다. 그 끝에서 세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함께 떠받친다.


작품의 제목이 왜 ‘조화로운 세계’인지 설명이 없어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프리카’


이 작품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예술을 들여다볼 때 기억해야 할 점도 있다.


‘아프리카 미술’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지만 아프리카는 하나의 문화권이 아니다. 현재 54개 유엔 회원국이 존재하고 수많은 민족과 언어, 종교와 생활 문화가 공존한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역시 아프리카의 토착문화와 전통예술뿐 아니라 변화하는 오늘날의 아프리카까지 보여주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나이지리아만 해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권이 존재한다. 지역과 공동체에 따라 조각과 가면, 생활용품과 장신구에 담기는 의미와 표현 방식도 달라진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조각을 바라본다는 것은 독특한 형태의 미술품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무엇을 표현했는지, 그리고 그 작품이 태어난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함께 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 소장한 작품 하나하나가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작은 창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서로 다르지만, 같은 세계를 떠받치는 사람들


첫 번째 작품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조화로운 세계’에는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등장한다. 피부색도 다르고 각각의 모습도 구분된다. 그러나 작품에서 이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같음’이 아니라 연결이다.


서로 다른 몸은 얽혀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그 위에는 하나의 세계가 놓여 있다.


조명행 관장이 나이지리아에서 처음 아프리카 조각에 매료된 뒤 수십 년에 걸쳐 모은 작품들이 이제 강원 영월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그 박물관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세계를 떠받치는 ‘조화로운 세계’라는 점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아프리카를 하나의 이미지로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것.


‘조화로운 세계’는 영월에서 시작하는 아프리카 예술 여행의 첫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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