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탐방] 알맹이만 파는 곳, 알맹상점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모두가 버리지만 모두가 치우지는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쓰레기가 잠깐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보는 부모와 자식과 자식의 자식과 노동자와 옷가게 주인과 장수사와 소설가와 시인과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있다. -이슬아, <쓰레기와 동물과 시>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고 외치는 이 곳에 들어서 둘러보니 이슬아 씨의 글귀가 유독 눈과 마음을 사로 잡는다. 이 공간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글귀다.
모두가 버리지만 치우지는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이 곳을 만들었고, 또 이 곳을 찾아온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닌,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이 곳, 알맹상점이다.
알맹상점은 고금숙, 이은주, 양래교씨가 공동대표로 시작한 상점이다. 망원시장에서 '비닐봉투 줄이기' 캠페인 활동을 함께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국내 최초 리필 스테이션' 알맹상점을 만든 것이다.
알맹상점은 말 그대로 제품의 알맹이를 팔겠다는 곳이다. 겉포장, 그러니까 껍데기는 버리고 속알맹이만 판매하겠다는 것인데,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나 싶었던 첫 오픈 날의 걱정과는 다르게 지금까지도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알맹상점과 같은 제로웨이스트 상점들이 전국에 200여개가 넘는다고 하니 빠른 성장세를 체감 할 수 있다.
특히 MZ세대들이 많이 찾는다. 환경 감수성이 뛰어난 MZ세대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입소문으로 퍼져나가고, 환경적 이슈에 직접 참여해서 자신의 일상부터 바꾸고 싶어하는 그들의 성향은 '가치소비'를 이끌어내는 중심 세대가 되었다.
ESG코리아뉴스에서 방문한 날도 MZ세대들의 쇼핑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금숙 대표는 고객 한 명이 계산대에 설 때 마다 알맹상점에서 수거하고 있는 쓰레기 종류를 설명하고 쓰레기 별로 어떻게 환생(?)되는지 설명했다. 친환경적 소비와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취재 사실을 알리지 않고 방문했기에 처음에는 고객의 관점으로 상점 곳곳을 둘러보았다. 좌측으로는 세제, 정면으로는 화장품을 리필 할 수 있는 수 많은 통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고객이 가져온 용기에 필요한 내용물만 담아가거나, 혹은 용기를 대여해서 내용물을 담아갈 수 있다. 중앙에는 포장이 필요하지 않은 비누들이 보인다. 샴푸 비누바, 컨디셔너 비누바 뿐만 아니라 세안용, 설거지용, 세탁용, 반려견 용도의 비누바들이 보인다. 이 외에도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치실과 칫솔, 빨대 등 노 플라스틱 제품들이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비건 파스타와 발사믹소스까지...)
제품을 구입하면서 플라스틱까지 의도치 않게 구입하는 꼴이었던 기존의 쇼핑 방식이 마음에 걸렸던 소비자라면, 이곳은 무척이나 반가운 곳일만 하다. 판매자가 플라스틱을 배출하지 않아야 소비자도 플라스틱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니 말이다.
알맹상점에서는 쓰레기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용하는 자원이 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플라스틱 병 뚜껑이 자원이 되어 치약짜개 등 생활용품으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확인 할 수 있고, 우유팩이나 멸균팩은 화장지로, 말린 커피가루는 커피화분으로, 실리콘은 전자제품 부품으로 활용됨을 배우게 된다. 그러니까 소비자는 자신에게 쓸모 없는 쓰레기를 가져와서 알맹상점에 기부하고 필요한 알맹이만 사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쓰레기를 쓸애기로 만들어 버리는 공간. 이곳에서는 소비 욕구만 치솟는 게 아니라, 쓰레기 기부 욕구도 함께 치솟아 오른다. 그러니 알맹상점에 방문할 때는 빈 손으로 오기 보다는 다시 환생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서 방문하면 좋겠다. 삶의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찾는 훈련을 시작하는 뜻밖의 장소가 될 것이다.
쇼핑을 마친 후,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장바구니도 가볍다. 장바구니에 알맹이만 들어있는 모습이 이렇게까지 신날 일인가. 직접 체험해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