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허용된다면, 국제질서는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
베네수엘라는 지금 숨을 죽이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거리는 고요하고, 시민들은 집 안에 머문 채 앞으로 닥칠 일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외신들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체포·축출됐다는 보도를 전하며 베네수엘라가 “전례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전했다.
CNN과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거리에는 군과 치안 병력이 배치돼 긴장감이 감돌고 있지만, 그동안 정권의 비공식적 지지 기반이었던 친정부 준군사 조직 ‘콜렉티보’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시민들은 충돌과 약탈 가능성에 대비해 식료품과 의약품을 구매하고 있으며, 슈퍼마켓과 약국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다. 해외 언론과 국제 정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외국의 군사적 개입과 최고 지도자의 체포라는 전례 없는 방식이다.
“만약 이것이 보편화된다면?”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정권 이양이 완료될 때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 사태에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고, 일부 발언은 사실상 미국이 베네수엘라 통치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에 대해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는 한 유럽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외국 군대가 주권국가에 진입해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고 정치 질서를 재편하는 장면은 냉전 이후 국제사회가 합의해 온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전했다.
국제법 전문가들 역시 문제를 제기한다. 유엔 헌장은 국가 주권과 내정 불간섭을 국제질서의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설령 인권 문제나 민주주의 훼손이 명분으로 제시되더라도, 무력 개입과 지도자 체포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 중남미 정치학자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강대국이 ‘정의’나 ‘안정’을 이유로 약소국에 군대를 보내 지도자를 체포하는 선례가 굳어진다면, 다른 강대국들도 같은 논리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 순간 유엔이 추구해온 국제질서는 사실상 무력화됩니다.”
다시 냉전의 세계로?
이 같은 우려는 단순히 베네수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들이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새로운 지정학적 대립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영국의 한 국제정치 전문 매체는 “베네수엘라 사태는 21세기판 ‘세력권 정치’의 귀환을 상징한다”며 “각 강대국이 자신들의 가치와 이해관계를 앞세워 다른 국가의 정치 질서에 직접 개입하는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국영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주권 침해자’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일부 친정부 지지자들은 “우리는 외세의 지배를 거부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는 내부 갈등이 국제적 대립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갈림길에 선 국제질서
베네수엘라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와 조기 선거가 거론되고 있지만, 많은 시민들은 그 과정이 외부 압력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 “누가, 어떤 권한으로 이 나라를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
외신들은 공통적으로 묻는다.
“만약 내일, 다른 강대국이 또 다른 약소국에서 똑같은 일을 벌인다면 국제사회는 이를 막을 수 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도 던진다.
“세계는 다시 냉전의 논리, 힘의 논리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베네수엘라의 고요한 거리와 대비되는 이 질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질서의 미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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