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방주의 외교가 흔드는 나토, 그리고 국가 거버넌스의 시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나토(NATO) 동맹국들이 “최전선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다”고 주장하며 다시 한 번 동맹의 신뢰를 정면으로 흔들었다. 이 발언은 유럽 주요국은 물론 나토 전체에 깊은 분노와 실망을 안기며 트럼프식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외교 노선이 미국의 전략적 자산인 동맹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증폭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정말 필요할 때 나토가 우리 곁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나토 병력은 실질적인 전투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관계와 크게 어긋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사실’과 다른 주장… 수치가 말하는 동맹의 희생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나토 역사상 유일하게 집단방위 조항인 조약 5조를 발동했고, 이에 따라 영국·덴마크·캐나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20년 가까이 미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 기간 동안 전사한 연합군은 약 3,500명으로, 이 가운데 2,456명이 미군이었지만 영국군 457명, 덴마크군 40여 명 등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유럽 국가들의 희생은 결코 ‘부수적’이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탈레반의 핵심 거점이었던 헬만드 주에서는 영국군과 덴마크군이 미군 증원 이전까지 전투를 주도했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마크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 병사 한 명이 전사할 때마다 나토 동맹국 병사 한 명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럽의 분노… “모욕이자 동맹에 대한 배신”
영국 정치권의 반응은 특히 격앙됐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트럼프의 발언을 “모욕적이고 솔직히 끔찍하다”고 규정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존 힐리 국방장관 역시 “나토 5조는 미국을 위해 발동됐고 영국은 그 요청에 응했다”며, 희생을 부정하는 발언은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해리 왕자 또한 성명을 통해 “나토 군인들의 희생은 진실되고 존중받는 방식으로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갈등을 넘어 전쟁의 대가를 치른 개인과 가족의 명예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메리카 퍼스트’의 역설…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키다
문제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일방주의 외교 노선이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나토를 “불공정한 조직”으로 규정하며 방위비 분담을 압박해 왔고 최근에는 그린란드 장악 발언까지 더해 유럽 동맹국들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이 단기적으로는 국내 정치에 유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안보 구조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나토는 단순한 군사 동맹이 아니라 미국이 국제 질서를 관리하는 핵심 거버넌스의 축이기 때문이다.
국가 거버넌스의 중요성… 동맹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
국가 거버넌스란 단순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신뢰·규범·책임을 통해 공동의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성패와 별개로 나토 동맹국들이 보여준 집단적 대응은 미국이 혼자가 아니라는 상징이었다. 이를 ‘고마운 희생’이 아닌 ‘당연하지 않은 기여’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연대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리는 항상 나토를 위해 싸울 것”이라는 말과 달리 동맹을 공개적으로 의심하고 폄하하는 발언은 미국이 스스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외교는 거래가 아니라 관계이며, 국가는 고립이 아닌 협력 속에서 지속 가능한 안보와 번영을 확보해 왔다.
시험대에 오른 미국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희생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단순한 과거사 논쟁이 아니다. 이는 미국이 앞으로도 규칙과 동맹에 기반한 국제 질서의 중심에 설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 국익을 앞세운 고립적 강대국으로 남을 것인지를 가르는 시험대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결국 ‘아메리카 얼론(America Alone)’으로 귀결될 것인지, 그 선택의 결과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안보와 거버넌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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