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ESG코리아뉴스를 통해 연재로 이어진다. 2026년 출산기에 확인된 또 다른 어미 고래와 그 새끼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따라가며, 각 개체에 부여된 이름과 번호 뒤에 숨겨진 삶의 궤적을 기록한다. 축적된 관찰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하나의 생애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내 이 질문에 다다른다.
이 고래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바다를, 과연 우리는 지금처럼 방치해도 되는가?
북대서양의 겨울 바다는 매년 짧은 기적을 품는다.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 멸종 위기에 놓인 북대서양 참고래(North Atlantic Right Whale)들이 생명을 잇기 위해 미국 남동부 해역으로 이동한다. 이 시기는 단순한 번식기가 아니다. 종 전체의 존속이 걸린 시간이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북대서양 참고래는 약 380마리이다. 이 중 번식이 가능한 암컷은 고작 70마리 안팎에 불과하다. 이처럼 극도로 제한된 개체 수 때문에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여러 연구기관의 과학자들은 매년 출산기에 맞춰 플로리다와 조지아 연안을 중심으로 24시간에 가까운 감시와 조사를 이어간다.
2026년 출산기에도 연구진은 지금까지 21마리의 새끼를 확인했다. 과학적으로 보면 ‘비교적 생산적인 해’로 평가될 수 있지만, 인간 활동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과 부상률을 고려하면 이는 종의 감소를 멈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학자들은 개체 수 유지를 위해 앞으로 수년간 매년 최소 50마리 이상의 새끼가 태어나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 연재는 그렇게 태어난 한 마리 한 마리의 생명, 그리고 그 어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북대서양 참고래 #1245, ‘슬라롬(Slalom)이다.
굳은살에 새겨진 삶의 궤적, 슬라롬
2026년 1월 22일, 플로리다 사우스 데이토나 비치에서 약 400미터 떨어진 해상에서 한 해변 방문객의 신고로 어미 참고래와 새끼 한 쌍이 포착됐다. 과학자들은 곧바로 어미를 #1245번 암컷 ‘슬라롬’으로 확인했다. 이 관측에는 블루 월드 연구소와 마린랜드 북대서양 참고래 프로젝트가 참여했다.
슬라롬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머리에 난 길고 울퉁불퉁한 굳은살(callosity)이 마치 슬라롬 스키 코스를 연상시킨다는 데서 붙여졌다. 그러나 그 굳은살은 단순한 외형적 특징이 아니다. 연구자들에게 그것은 한 개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지문이자 수십 년 생존의 기록이다.
올해 44살로 추정되는 슬라롬은 이번 새끼를 포함해 일곱 번째 출산을 했다. 마지막 출산은 2022년이었다. 정상적인 북대서양 참고래의 출산 주기는 3~4년이지만, 최근 수십 년간 이 주기는 7~10년으로 늘어났다. 어구에 걸리는 사고, 선박 충돌,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한 먹이 감소가 암컷들에게 심각한 신체적·생리적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슬라롬의 삶 역시 이 종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녀의 첫 두 마리 새끼는 모두 암컷이었지만 현재는 생존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딸 ‘인시그니아(#2645)’는 실종되기 전까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그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체가 수컷 ‘정션(#3745)’이다. 정션은 선박과의 충돌로 인해 몸에 두 개의 커다란 흉터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흉터는 인간 활동이 이 종에 남긴 상처이자 동시에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표식이다.
생존과 출산 사이의 잔혹한 균형
과학자들은 2017년 이후 북대서양 참고래 집단에서 발생한 ‘비정상적 폐사 현상(Unusual Mortality Event)’으로 전체 개체 수의 20% 이상이 사망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고 분석한다. 주요 원인은 어구 얽힘과 선박 충돌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종은 출생보다 사망이 더 많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슬라롬의 새끼 한 마리는 단순한 ‘출산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종의 미래를 한 해 더 연장시킨 사건이며 과학자들에게는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아무리 많은 어미가 새끼를 낳아도 인간이 만든 위험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회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NOAA와 국제 연구진은 속도 제한 해역 확대, 고래 안전 어구 개발, 서식지 보호 강화 등 다양한 대책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학계의 공통된 결론은 분명하다.
북대서양 참고래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인간으로 인한 사망과 부상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슬라롬과 그녀의 새끼는 올봄이 지나면 다시 북쪽 바다로 향할 것이다. 그 여정이 무사히 이어질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어미와 새끼가 남긴 흔적이 과학자들의 기록과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다음 선택을 바꾸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북대서양 참고래 어미와 새끼의 이야기를 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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