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사키 피폭 생존자 데루미 다나카의 80년 증언…“핵무기는 인류와 함께 존재해서는 안 된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폭심지 인근은 순식간에 거대한 불길과 폭풍에 휩싸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나가사키 피폭 생존자 데루미 다나카(Terumi Tanaka)는 당시 13세의 소년이었다.
폭격 당시 다나카는 폭심지에서 약 3㎞ 떨어진 나가사키 동쪽의 집에 있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갑자기 폭격기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눈부시게 밝은 흰빛에 휩싸였다”고 증언했다.
놀란 그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 바닥에 엎드린 뒤 손으로 눈과 귀를 가렸다. 곧 강력한 충격파가 집 전체를 휩쓸었다. 잠시 의식을 잃었던 그는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이 커다란 유리 미닫이문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적적으로 유리는 깨지지 않았고 그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폭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참혹한 현실의 시작에 불과했다.
폭격 사흘 뒤인 8월 12일, 다나카는 어머니와 함께 폭심지 인근에 살고 있던 두 이모의 가족을 찾아 나섰다. 작은 산을 돌아 고개에 올라선 순간, 그의 눈앞에는 나가사키의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이 펼쳐졌다.
그는 항구까지 약 3㎞에 이르는 지역이 검게 타버린 폐허로 변해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벽돌 성당으로 알려졌던 우라카미 성당도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집들은 대부분 불에 타 사라졌고 곳곳에는 시신이 널려 있었다. 심각한 화상을 입거나 크게 다쳤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13세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참혹한 광경이었다.
다나카는 당시 자신이 “거의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고 회상했다.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감정을 스스로 닫아버린 듯한 상태에서 가족을 찾아가는 길만을 계속 걸었다.
첫 번째 이모의 집터에서는 폭심지에서 불과 약 400m 떨어진 곳에서 숯처럼 타버린 이모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 곁에는 대학생이었던 이모의 손자도 숨져 있었다.
두 번째 이모의 집은 완전히 무너져 나무더미처럼 변해 있었다. 그곳에서는 다나카의 할아버지가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채 죽음 직전의 상태로 웅크리고 있었다.
이모 역시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다나카와 어머니가 도착하기 직전에 숨졌다. 가족들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이모의 시신을 화장해야 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큰 부상을 입지 않았던 삼촌도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이후 구조소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높은 열에 시달리며 일주일을 버티다 결국 숨졌다.
원자폭탄 한 발이 다나카의 가족에게 남긴 결과는 참혹했다. 그는 한 번의 폭격으로 다섯 명의 친척이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다나카는 당시 자신이 목격한 죽음은 평범한 의미의 ‘인간의 죽음’이라고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지만 의료진과 치료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의 기억에 남은 것은 단순히 한 도시가 파괴된 장면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다나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대량 살상과 인간에 대한 극심한 고통을 초래하는 행위는 결코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2025년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 80주년이었다. 원폭 투하로 인한 사망자는 직접적인 폭발과 화상, 방사선 피폭 등의 영향으로 발생했으며, 나가사키에서는 1945년 말까지 약 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원폭의 피해는 1945년 8월 9일에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피폭자들은 이후에도 방사선 피폭에 따른 건강 문제와 가족을 잃은 상처, 전쟁과 핵무기가 남긴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다나카 역시 93세가 된 오늘까지 자신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이유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원폭이 인간에게 어떤 고통을 안겼는지 직접 경험한 세대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피폭 생존자의 증언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적 기록이 되고 있다.
다나카의 증언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인류는 핵무기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13세 소년이 목격했던 나가사키의 폐허와 가족들의 죽음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질문을 현재형으로 남겨놓고 있다.
다나카는 핵무기가 인류와 함께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다. 그의 증언은 핵무기의 위력이 아니라 그 무기가 인간에게 남기는 고통과 상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한 발의 폭탄은 한순간에 도시를 파괴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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