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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여인, 등을 보인 남자…베르메르가 남겨둔 이야기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09.0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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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 Guide, 베르메르 ‘장교와 웃는 소녀’ 소개, 1657년경 작품
  •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두 인물의 대비, 원근법으로 깊이감 더해
  • 구애의 순간일까 평범한 대화일까, 350여 년이 지나도 열려 있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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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가 1657년경 그린 ‘장교와 웃는 소녀(Officer and Laughing Girl)’ [사진=Art Guide X]

 

창가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장교는 등을 보인 채 여성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맞은편에는 흰 머릿수건을 쓴 여성이 잔을 손에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림은 어느 한순간을 보여줄 뿐 그 전과 후의 이야기는 말해주지 않는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가 1657년경 그린 ‘장교와 웃는 소녀(Officer and Laughing Girl)’다.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X 계정 ‘Art Guide’는 3일 오후 11시 5분 이 작품을 소개했다. 게시물은 “한 군인이 몸을 기울인다. 그녀가 웃는다. 그것이 장면의 전부”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관람자의 해석은 그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관람자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하는가.”


그림 속에 명확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바라보는 사람이 각자의 경험과 상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내게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장교와 웃는 소녀’는 베르메르가 자신의 화풍을 본격적으로 만들어가던 시기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현재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뉴욕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은 제작 시기를 약 1657년으로 보고 있으며,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은 1657~1658년경으로 분류한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으며 크기는 50.5×46㎝다.


남성과 여성이 마주 앉은 장면 자체가 당시로서는 특별한 소재였던 것은 아니다. 젊은 여성과 남성의 만남이나 구애 장면은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에서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익숙한 장면을 빛과 공간을 통해 자신만의 그림으로 만들었다.


화면 왼쪽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은 여성의 얼굴과 흰 머릿수건을 환하게 비춘다. 반면 관람자 가까이에 앉아 있는 장교는 커다란 검은 모자와 붉은 옷을 입은 채 상대적으로 어둡게 표현돼 있다.


밝은 여성과 어두운 남성의 대비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여성에게 이끈다. 동시에 장교의 커다란 뒷모습이 화면 앞쪽을 차지하면서 작은 그림 안에 깊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두 사람의 크기가 크게 달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 체격 차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장교를 관람자 가까이에, 여성을 그보다 멀리 배치해 원근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표현 때문에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는 광학장치를 작품 제작에 활용했을 가능성도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다만 베르메르가 실제로 이 장치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림 속 여성 뒤편을 가득 채운 지도도 눈길을 끈다.


이 지도는 발타사르 플로리스 판 베르켄로더(Balthasar Florisz. van Berckenrode)가 1620년 제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이듬해 출판된 홀란트와 서프리슬란트 지도이다. 당시 네덜란드 가정에서 벽걸이 지도는 장식물이자 경제적·문화적 지위를 보여주는 물건으로 사용됐다.


베르메르 역시 지도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의 작품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34점 가운데 9점에는 벽걸이 지도 등 지도 제작과 관련된 물건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림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세밀한 지도나 원근법만은 아니다.


결국 궁금해지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다.


여성은 남성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손에는 잔이 들려 있다. 남성은 몸을 여성 쪽으로 기울이고 있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구애하는 남녀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그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순간일 수도 있다.


당시 네덜란드 풍속화의 전통을 고려해 두 사람의 만남에 여러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도 있지만, 그림만으로 이들의 관계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프릭 컬렉션 역시 작품에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바로 그 모호함이 이 작품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베르메르는 남성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고 두 사람이 어떤 말을 나누고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여성의 웃음이 호감 때문인지, 즐거운 대화 때문인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관람객에게 주어진 것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빛과 서로 마주 앉은 두 사람, 그리고 웃고 있는 한 여성의 표정뿐이다.


‘장교와 웃는 소녀’는 여러 소장자를 거쳐 1911년 미국의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이 구입했다. 현재 뉴욕 프릭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곳이 보유한 베르메르 작품 세 점 가운데 하나다.


그림이 그려진 지 350여 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선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웃음의 이유도, 두 사람의 관계도, 그다음에 벌어졌을 일도 각자의 몫이다.


베르메르가 그린 것은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한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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