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아프리카의 말리가 미국의 비자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며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말리 외무부는 미국이 지난주 발표한 ‘비자 보석금 제도’에 대응해 오는 10월 23일부터 미국 비자 신청자에게 최대 1만 달러의 보석금을 요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이 자국민에게 부과한 조건을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의미로 말리는 성명에서 “미국이 말리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과 동일한 조건을 미국 국민에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미국 정부가 말리를 포함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비자 보석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측은 체류 기간 초과율이 높고, 심사 절차가 미흡하며, 외교적 고려 사항이 존재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미국에 입국하려는 일부 국가의 신청자들은 체류 기간을 초과하거나 비자 조건을 위반할 경우 몰수될 수 있는 보석금을 미리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말리는 이러한 조치를 자국민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맞불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 같은 대응은 단순한 외교적 감정싸움이 아니다. 2021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후 말리는 프랑스 중심의 서아프리카 대테러 전략에서 이탈해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안보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계열 무장세력의 공격은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말리 정부로서는 미국의 비자 제재를 단순히 외교적 불편이 아닌 자국의 주권과 국제적 위상을 시험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금 보여주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외교적 여파로도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이민과 비자 제도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최근에는 외국인 전문직 근로자에게 발급되는 H-1B 비자에 대해 기업이 1건당 최대 10만 달러의 추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는 사실상 외국 인재의 미국 진입을 억제하는 조치로 인도와 같은 주요 인재 공급국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일방적으로 내세운 비자 비용 인상과 보석금 제도는 이제 역풍을 맞고 있다. 말리의 이번 결정은 세계 각국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과거 미국이 자국 이익을 앞세워 도입했던 정책이 이제는 국제사회의 ‘거울’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말리의 조치는 단순히 미국을 향한 보복이 아니라 강대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에 대한 신흥국의 외교적 자립 선언으로 읽힌다.
‘비자’라는 작은 문 하나를 둘러싼 이번 갈등은 결국 세계 질서의 균형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트럼프 행정부가 뿌린 비자 정책의 씨앗은 이제 전 세계에서 싹을 틔우고 있으며, 그 결과는 미국이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번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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