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개정된 폐기물 프레임워크 지침(Waste Framework Directive)이 지난 16일 공식 발효되며 섬유 산업의 순환성을 높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이번 개정안은 2023년 7월 처음 제안된 이후 1년여의 논의 끝에 채택된 것으로EU가 자원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경제적 회복력과 환경적 책임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개정안의 중심에는 두 가지 축이 있다. 첫 번째는 섬유 및 신발 제품에 대한 ‘확장된 생산자 책임제(EPR)’의 도입이다. 모든 회원국은 공통 규칙에 따라 자국 내 EPR 제도를 수립해야 하며, 생산자는 시장에 출시하는 각 제품에 대해 수수료를 납부하게 된다.
이 수수료는 수거 체계 구축, 재사용 및 재활용 준비, 폐기물 관리 등에 사용되며, 제품의 내구성·재활용 가능성과 같은 지속 가능성 기준에 따라 차등 부과된다. 이러한 에코모듈레이션(Eco-modulation) 방식은 기업이 보다 순환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제품 설계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경제적 신호로 작용한다.
특히 이번 지침은 ‘폐기물’과 ‘중고품’의 구분을 명확히 하여 별도로 수거된 직물이 허위로 재사용품으로 분류되어 제3국으로 수출되는 관행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각 회원국이 직물 수출 전 반드시 분류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함으로써 섬유 폐기물의 불법 수출과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 번째 주요 조치는 음식물 쓰레기 감축목표의 구속력 있는 설정이다. 회원국은 2030년까지 식품 제조 및 가공 단계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10%, 소매·식당·가정 등 소비 단계에서는 1인당 30% 줄여야 한다. 지금까지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EU 차원의 구속력 있는 목표가 없었던 만큼 이번 조치는 정책적 이정표로 평가된다.
회원국은 각자의 음식물 쓰레기 방지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식품 기부를 촉진하며, 소비자 행동 변화와 기술 혁신을 통해 목표 달성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2027년에는 진행 상황을 평가하는 포괄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2035년까지의 장기 목표 연장 여부가 검토될 예정이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히 환경 보호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적 전환을 포괄한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EU 내 섬유 산업은 연간 1,700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하며 약 130만 명을 고용하는 중요한 산업이지만 자원 소모와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상위 다섯 번째로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문이다.
반면, 섬유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은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을 촉진해 생산 단계에서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 역시 EU 전체에서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2020년 기준 EU에서 연간 약 5,300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며, 이는 1인당 약 127kg에 해당한다.
유럽통계청(Eurostat)이 최근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0~2023년 사이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은 뚜렷한 감소 추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EU는 강력한 규제와 명확한 목표를 통해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번 개정 지침은 또한 사회적 경제 부문의 역할을 강화한다. 중고 섬유를 수거하거나 재사용품을 유통하는 사회적 경제 기업은 일부 EPR 의무에서 면제되며, 생산자 책임 단체로부터 무료로 폐기물 처리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는 환경적 목표와 사회적 포용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회원국들은 앞으로 20개월 내에 개정 지침을 국내법으로 전환해야 하며 섬유·신발 제품에 대한 EPR 제도는 30개월 이내에 마련되어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관련해서는 2026년 1월까지 방지 조치를 조정할 당국을 지정하고 2027년 10월까지 국가별 예방 프로그램을 완비해야 한다.
이번 개정은 단지 유럽 내부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EU 시장에 진출한 전 세계 섬유·패션·식품 기업들은 새 규제에 맞춰 제품 설계, 라벨링, 공급망 관리, 기부 체계 등 전반적인 운영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한 비EU 국가의 기업들 역시 유럽 시장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해 EPR 비용과 지속 가능성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이는 ESG 경영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결국 이번 폐기물 프레임워크 지침의 개정은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순환 경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자원 효율성, 생산자 책임, 사회적 포용, 기술 혁신이라는 네 가지 축이 결합 된 이번 개정은 유럽이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질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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