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제 학술지 고고학 과학 저널: 보고서(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게재된 논문 「로마 의학 치료법의 재조명: 페르가몬에서 발견된 갈레노스식 분변 치료제에 대한 직접적인 고고학적 증거(Roman Medical Remedies Revisited: Direct Archaeological Evidence of a Galenic Coprotherapeutic Preparation from Pergamon)」는 고대 로마에서 인간의 배설물이 실제 의약품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물리적 증거를 보고했다.
이 연구는 터키 시바스 쿠무르히예트 대학교(Sivas Cumhuriyet University) 소속 고고학자 젠크 에르틸라(Cenk Ertila)를 중심으로 수행됐으며, 2세기경 고대 도시 페르가몬(Pergamon)(Pergamon, 오늘날 터키 베르가마)에서 제작된 로마 시대 유리 연고병의 잔여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연구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유리 용기 내부에서 발견된 갈색 고형물에서 출발했다. 연구진은 총 7점의 용기에서 잔여물을 확인했으나, 결정적인 분석 결과는 페르가몬 출토 유물 1점에서 도출됐다. 점토 마개로 밀봉된 상태였던 이 병 안의 물질을 채취해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GC-MS, Gas Chromatography–Mass Spectrometry)과 생물지표 분석을 실시한 결과, 인간 기원의 배설물에서 나타나는 특이 스테롤과 담즙산 유도체가 확인됐다. 동시에 백리향(타임, Thymus) 계열 식물의 방향성 화합물과 올리브 오일 기반 지방산 성분도 함께 검출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조합이 우연한 오염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제조된 약제임을 강조했다. 특히 이 성분 구성이 2세기 로마의 의사 갈레노스(Galen)(Galen)의 저술에서 언급된 치료 처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크다. 페르가몬 출신인 갈레노스는 세 명의 로마 황제를 섬긴 궁정 의사이자 해부학의 선구자로, 그의 의학 체계는 약 1,500년간 유럽과 중동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헌 기록 속에만 존재하던 배설물 기반 치료제가 실제 물질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은 염증, 감염, 피부 질환, 생식 장애 등 다양한 질환의 치료제로 활용됐다.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강력한 약리적 물질로 이해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 분변 미생물 이식(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치료와 개념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FDA,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는 재발성 장내 세균 감염 치료를 위한 분변 이식 치료제를 승인한 바 있다. 물론 고대의 사용은 현대 미생물학 이론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지만, 장내 생태계의 효능을 경험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니컬러스 퍼셀(Nicholas Purcell)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명예교수는 분석 방법이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해당 유물이 어떤 맥락에서 발견되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유리병이 무덤 부장품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향수나 화장품으로 여겨졌던 소형 유리 용기들이 실제로는 의약품을 담았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번 발견은 단순히 고대의 이색적인 치료법을 확인한 데 그치지 않는다. 문헌 기록에 의존하던 고대 의학 연구를 고고과학적 분석으로 실증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작은 유리병 속 잔여물은 1,800년 전 의료 행위의 실제 모습을 오늘날에 복원해냈으며, 고대 의학이 체계적 실험과 축적의 결과였음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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