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화 중심 정책의 한계… 농업·재난·취약계층 보호까지, 국가 전략의 균형 전환 필요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재 진행형의 현실이다. 기상청장으로 재임하며 오랜 기간 축적된 관측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인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는 점점 더 극단적인 기상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여름철 폭염은 일상화되고 있으며, 겨울철 한파 역시 강도와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집중호우와 태풍은 예측 가능성을 벗어나고 있고, 그 피해 규모 또한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경제 전반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위기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환경부를 중심으로 ‘완화(mitigation)’, 즉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에 중점을 두고 추진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자 우리가 모두 지향해야 할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나 국제적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의 정책과 이행 수준은 여전히 2050년 탄소중립 목표와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완화 정책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전략적 균형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제는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 정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정책적 전환이 요구된다. 기후변화 적응은 단순히 보완적인 영역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핵심적인 국가 책무이다. 특히 농업 분야는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식량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온 상승, 강수 패턴의 변화, 가뭄과 병해충 증가 등은 농업 생산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곧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큰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후적응형 품종 개발, 스마트농업 기술 확산, 수자원 관리 혁신 등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기상재해 대응 역량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재해의 강도와 빈도가 동시에 증가하는 상황에서, 사전 예측 기술의 고도화와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은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방재 인프라 구축과 대응 체계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대응을 넘어 국가 안전망을 강화하는 핵심 정책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기후 위기의 불평등성이다.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훨씬 더 크게 나타난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냉난방 시설이 부족하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여 폭염과 한파에 더욱 취약하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기후변화 적응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이며, 이는 오늘날 강조되는 ESG의 핵심 가치와 직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업과 민간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ESG 경영은 단순히 환경 보호나 이미지 제고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밥상공동체복지재단_연탄은행과 같은 단체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겨울철 에너지 취약계층에 연탄과 난방 지원을 제공하고, 여름철 기상청과 함께 진행해온 폭염 피해 예방을 위한 '해피해피캠페인(폭염에 해를 피하면, 서늘한 행복(해피)이 온다)' 등 기후 위기 상황에서 가장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돕고 있다. 기업들이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하는 것은 ESG를 선언적 수준이 아닌 실천적 가치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기후 위기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이제는 탄소중립이라는 장기적 목표와 더불어, 현재의 위험에 대응하는 적응 전략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국가 정책의 방향 전환, 기업의 ESG 실천, 그리고 사회적 연대가 함께 이루어질 때 우리는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前 기상청장)
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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