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콜릿 한 조각에 담긴 ESG의 가치
- 가평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에서 만난 ‘초콜릿 명장’의 꿈
- 초콜릿에 인생을 건 장인, 사회적 가치를 빚다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에 이렇게 깊은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을 찾아 손현주 대표와 박영도 연구소장을 만나면서 초콜릿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이곳은 단순히 초콜릿을 판매하거나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초콜릿의 기원과 역사,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직접 만들고 체험하면서 초콜릿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의 공간이다.
마야 문명에서 유럽을 거쳐 우리에게 온 초콜릿
박영도 소장은 초콜릿의 역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중남미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서는 카카오를 음료로 이용했다. 이후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초콜릿은 귀족과 왕실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오늘날에는 세계인이 즐기는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박 소장은 오랜 시간 초콜릿을 연구하며 마야 문명과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초콜릿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기념품을 직접 수집했다. 박물관에는 이러한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어 초콜릿이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문명과 교역, 산업과 문화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이곳에서 카카오가 초콜릿이 되는 과정을 배우고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체험은 의미가 크다. 맛있는 초콜릿을 먹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료가 생산되는 지역과 농민, 가공과 유통에 이르는 산업의 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 명장’이 포기하지 않은 27년의 꿈
박영도 소장의 초콜릿 인생은 1999년부터 시작됐다. 압구정에서 명품 초콜릿 매장을 운영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으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후 전국 여러 지역에 매장을 운영하며 초콜릿의 대중화에 도전했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경영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전남 곡성에서의 도전이었다. 곡성에서 카카오 재배를 시도하고, 지역의 대표 관광축제인 세계장미축제와 연계해 한국초콜릿축제를 추진하는 등 초콜릿을 지역 관광과 농업,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정책적 관심과 지원의 연속성이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이러한 사업도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역의 새로운 산업과 관광 콘텐츠가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노력만으로 지속되기 어렵고, 지자체의 정책적 일관성과 장기적인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사업적 어려움이 초콜릿에 대한 그의 열정까지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은 상업적 성공을 넘어 초콜릿의 역사와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나는 박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명장’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기술이 뛰어난 사람에게 붙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가치와 철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ESG를 실천하다
손현주 대표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는 밥상공동체의 이사로 활동하며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ESG를 거창한 경영전략이나 기업보고서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하고 올바른 경영을 실천하는 것이 ESG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 대표의 꾸준한 봉사활동은 ‘말로 하는 ESG’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ESG’라고 할 수 있다.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 역시 초콜릿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생들에게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초콜릿의 역사와 생산 과정, 카카오의 가치 등을 알리는 것은 지식을 넘어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을 생각하게 하는 작은 출발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초콜릿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초콜릿은 무조건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오래전부터 '신들의 음식'으로 여겨지며, 의례와 약용 목적 등으로 귀하게 사용되어진 특별한 식물이다.
그러므로 가공된 초콜릿의 건강 영향은 제품의 종류와 카카오 함량, 당류와 지방 함량, 섭취량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초콜릿을 무조건 나쁜 식품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하게 선택하고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기업의 큰 가치에 주목해야
이번 방문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우리 사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전문성과 철학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강소기업’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은 초콜릿이라는 작은 소재를 통해 역사와 문화, 교육, 체험, 건강, 지역사회라는 다양한 가치를 연결하고 있다. 여기에 손현주 대표의 지속적인 사회공헌과 박영도 소장의 27년에 걸친 초콜릿에 대한 열정이 더해져 특별한 ESG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ESG는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규모가 작더라도 자신이 가진 전문성과 자원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주체다.
가평의 작은 박물관에서 만난 초콜릿 이야기는 그래서 달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초콜릿 한 조각에 담긴 문명의 역사와 장인의 열정, 그리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인의 마음을 보면서 진정한 ESG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누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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