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ic Vids,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소개, 도스토옙스키 인용 문구는 출처 불분명
- 아들을 끌어안은 아버지의 충격과 후회, 실제 역사 둘러싼 논쟁은 계속
러시아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일리야 레핀(Ilya Repin)의 작품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581년 11월 16일(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on 16 November 1581)’이 소셜미디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역사 관련 콘텐츠를 소개하는 X 계정 ‘Historic Vids’는 6일 오후 8시께 이 작품과 함께 “이 모든 투쟁도 결국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나기 위한 것인가(All this struggle just for life to end on a random day)”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해당 계정은 이 말을 러시아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의 것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 문구가 실제 도스토옙스키의 저작이나 발언에서 나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말로 자주 인용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원전이 확인되지 않아, 도스토옙스키의 실제 발언으로 단정하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게시물에 등장한 그림은 레핀이 1883년부터 1885년까지 그린 역사화다.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가로 254㎝, 세로 199.5㎝에 이르는 대형 유화로, 1885년 완성된 뒤 파벨 트레티야코프가 레핀에게 직접 구입했다.
그림 속에는 러시아 차르 이반 4세, 이른바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가 피를 흘리는 아들 이반 이바노비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크게 뜬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이반 4세의 표정에는 충격과 두려움, 뒤늦은 후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버지의 품에 기댄 아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장면의 비극성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작품 제목에는 ‘1581년 11월 16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가 등장한다. 19세기 러시아 역사학자 니콜라이 카람진 등이 전한 기록에 따르면 이반 4세가 분노한 나머지 지팡이로 아들의 머리를 가격했고, 아들은 그 상처로 결국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레핀 역시 이러한 역사적 기록과 해석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했다.
다만 이반 4세가 실제로 아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레핀의 그림은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전해지는 시점으로부터 약 300년이 지난 뒤 제작됐다.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기록한 그림이라기보다 후대의 기록과 해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레핀이 이처럼 폭력과 죽음의 순간에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도 자리하고 있다.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되는 등 당시 러시아 사회는 정치적 폭력과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레핀이 인간의 폭력성과 그 뒤에 찾아오는 죄책감과 후회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영향을 준 배경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1885년 이동파 제13회 전시를 통해 공개된 이 작품은 처음부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피로 얼룩진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데다 러시아 역사에서 민감한 사건을 다뤘기 때문이다.
그림 역시 순탄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1913년 한 관람객이 칼로 작품을 훼손했고, 2018년 5월에도 관람객의 공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이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작품에 대한 조사와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Historic Vids는 이번 게시물에서 레핀과 도스토옙스키가 서로 다른 예술 분야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과 죄책감, 후회와 폭력, 삶의 유한성과 같은 문제를 다뤘다는 점을 함께 언급했다. 다만 게시물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말로 소개한 문구는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실제 인용문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레핀이 이 작품을 완성한 지 140여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들을 품에 안은 이반 4세의 표정은 여전히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다. 한순간의 분노와 폭력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 뒤 찾아온 후회와 상실을 한 장면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4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그림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시 사람들 앞에 놓였다.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과는 별개로, 삶이 얼마나 예측하기 어렵고 한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남길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의 힘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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