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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를 읽다 ㉞] 책을 넘어 사람을 품다…헬싱키 오디 도서관이 보여준 공공공간의 미래

  • 권민정 기자
  • 입력 2026.10.2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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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문 연 핀란드 오디 중앙도서관, 독서와 창작·문화·휴식이 어우러진 시민들의 공간
  • 나무와 유리, 철골이 빚어낸 열린 건축, 누구나 배우고 머무는 도서관의 새로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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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헬싱키 오디 도서관 의 모습 [사진=오디 도서관 홈페이지 캡쳐]

 

도서관을 떠올리면 조용한 열람실과 책이 가득 꽂힌 서가가 먼저 생각난다. 책을 읽거나 공부하기 위해 찾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는 곳이라는 인식도 익숙하다. 하지만 핀란드 헬싱키에는 조금 다른 모습의 도서관이 있다. 책을 읽는 사람 옆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또 다른 사람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창작 활동에 참여한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도 있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 들르는 사람도 있다.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Oodi)는 이렇게 서로 다른 일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오디는 책을 빌리고 읽는 도서관의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독서와 학습은 물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창작, 모임과 휴식까지 하나의 건물에서 이루어진다. 도서관을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만 방문하는 시설이 아니라 누구나 편안하게 찾아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확장한 것이다.


오디 중앙도서관은 2018년 12월 5일, 핀란드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헬싱키의 퇼뢴라흐티(Töölönlahti) 지역에 문을 열었다. 헬싱키시가 추진한 이 프로젝트에는 시민들이 지식과 문화를 자유롭게 접하고, 서로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공공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설계는 핀란드 건축사무소 ALA 아키텍츠(ALA Architects)가 맡았고, 건설사 YIT가 시공에 참여했다.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람볼(Ramboll)은 구조설계와 건축설비, 냉방설계, 프로젝트 관리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오디를 처음 마주하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목재 외벽이 눈길을 끈다. 건물을 감싸는 나무의 따뜻한 색감과 넓게 펼쳐진 유리창이 어우러져 일반적인 대형 공공건축물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단단하고 무거운 인상보다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에 가깝다.


건물 앞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공간과 개방적인 출입구도 이러한 분위기를 더한다.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반드시 책을 빌리거나 공부할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 도시를 걷다가 잠시 들러 쉬어가거나 내부를 둘러보는 일도 자연스럽다. 건축이 시민들에게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내부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오디는 층마다 서로 다른 활동을 담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1층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문화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2층은 창작과 학습, 공동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3층에는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밝고 개방적인 공간이 마련돼 있다.


특히 2층에서는 도서관의 달라진 역할을 실감할 수 있다. 시민들은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거나 다양한 제작 활동을 경험할 수 있으며, 모임과 협업을 위한 공간도 활용할 수 있다. 필요한 정보를 책에서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거나 다른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는 활동이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를 접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원하는 정보를 얻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직접 경험해보는 과정에는 여전히 공간과 만남이 필요하다.


오디는 바로 이러한 경험을 지원한다. 책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만나고, 디지털 장비로 아이디어를 구현하며,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활동이 하나의 장소에서 이어진다. 도서관이 지식을 보관하고 전달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경험을 쌓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적으로도 오디는 특별한 도전이 담긴 프로젝트였다. 넓고 개방적인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물의 무게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면서도 공간을 가로막는 구조물을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람볼의 프로젝트 자료에 따르면 오디의 주요 구조에는 길이가 각각 100m를 넘는 두 개의 거대한 철골 아치가 사용됐다. 무게가 약 800t에 이르는 이 아치 구조는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며 넓은 내부 공간을 가능하게 한다. 관람객의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건축가가 구상한 개방적인 공간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오디의 연면적은 약 1만 7,000㎡다. 건물에는 철골과 콘크리트, 목재, 유리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됐다. 목재는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고, 유리는 자연광을 실내로 끌어들인다. 철골과 콘크리트는 넓은 공간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며 건축물의 구조적 완성도를 높인다.


서로 다른 재료의 특성을 조화롭게 활용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람볼은 이 프로젝트에서 구조적 안정성과 건축적 완성도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도 함께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주요 구조물은 핀란드에서 제작됐으며, 일부 유리 구조물과 외벽용 목재 구조물 등은 해외에서 조달됐다.


다만 목재를 사용하거나 여러 건축 재료를 조합했다는 사실만으로 건물의 환경적 성과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얼마나 지속가능한 건축물인지를 판단하려면 자재의 생산과 운송, 시공 과정뿐 아니라 건물을 운영하면서 사용하는 에너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그럼에도 오디는 공공건축에서 아름다움과 기능, 구조적 안정성, 에너지 효율을 함께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디의 가치는 건물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서관이 자리한 위치와 주변 도시공간과의 관계도 중요한 특징이다. 헬싱키 중심부에 위치한 오디는 주변의 문화시설과 공공공간, 보행 동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민들은 일상적인 이동 중에 도서관을 방문할 수 있고,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문화 활동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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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오디 중앙도서관의 주소 및 위치도, Töölönlahdenkatu 4, Helsinki, Finland [사진= 오디 도서관 홈페이지 캡쳐]

 

도서관이 도시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접근성이 좋아진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시민들이 특별한 목적 없이도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생기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날 도시에는 다양한 상업시설이 있지만 돈을 쓰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카페나 쇼핑시설에서는 대부분 소비가 활동의 중심이 된다. 반면 공공도서관은 누구나 책과 정보를 이용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디는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는 공공시설의 역할을 보여준다. 경제적 여건이나 나이, 직업에 관계없이 시민들이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울 기회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학습의 장소가 되고, 문화 활동을 즐기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일상에서 예술과 문화를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활동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려면 세심한 운영이 필요하다.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사람과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서로 다른 환경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오디는 이러한 활동을 층별로 나누어 배치하면서 서로 다른 이용 목적이 공존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경험도 달라진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원칙뿐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선 연재에서 소개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 오래된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바꾸며 문화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헬싱키의 오디는 처음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일상을 담기 위해 계획된 건축물이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두 공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과 문화가 특별한 사람들만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문화가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와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찾아가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 역시 중요하다. 책을 읽기 위해 방문했다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잠시 쉬러 들렀다가 전시나 문화행사를 만나는 경험은 열린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오디는 도서관의 본래 역할을 버리지 않았다. 책과 독서를 중심에 두면서도 배움과 창작, 문화와 휴식의 영역을 넓혔다. 그 결과 도서관은 단순히 자료를 보관하는 시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쌓고 서로 연결되는 장소가 됐다.


이제 도서관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책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는 없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시간을 보내며, 다른 사람들과 어떤 경험을 나눌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좋은 공공공간은 시설의 규모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활동을 통해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헬싱키의 오디 중앙도서관은 이러한 생각을 실제 건축으로 보여준다. 책을 읽는 사람과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사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상을 이어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오디를 특별하게 만든다.


도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반드시 화려한 건축물이나 거대한 문화시설만은 아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가 배우고, 쉬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달라질 수 있다. 헬싱키 오디 도서관은 공공공간이 시민의 삶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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