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EP, 개발도상국 기후적응 비용 2035년 연간 3050억 달러 추산, 현재 지원액의 약 10배
- 기후재난 피해 커지는데 자금 지원은 제자리, COP31 앞두고 선진국 책임론 부각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홍수, 가뭄 등 극한기상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개발도상국의 기후적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자금 지원이 실제 필요한 규모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은 기후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지 않으면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를 통해 기후적응은 현재의 기후위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미래의 공동 안전을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최근 발표한 '2026 적응 격차 보고서(Adaptation Gap Report 2026)'를 언급하며 기후적응 자금의 부족은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 미래의 기회가 걸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이를 실행할 자금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며, 지금 기후적응에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에 재앙의 대가를 치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 기후적응에 연간 3050억 달러 필요
UNEP가 4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2035년까지 필요한 기후적응 자금은 연간 약 3050억 달러로 추산됐다.
반면 2024년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제공된 국제 공공 기후적응 자금은 약 282억~317억 달러에 그쳤다. 전년보다 약 10억 달러 증가했지만, 앞으로 필요한 자금 규모와 비교하면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한다.
기후적응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홍수에 대비한 제방과 배수시설을 정비하거나, 가뭄에 강한 작물을 재배하고, 폭염으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의 원인을 완화하는 활동과 달리, 기후적응은 피하기 어려운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기후재난에 취약한 국가일수록 이러한 시설과 제도를 마련할 재정적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UNEP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커지는 상황에서 필요한 투자와 실제 지원 사이의 격차가 개발도상국의 대응 능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원금 세 배 늘려도 필요한 자금의 20~29% 수준
국제사회는 기후적응 자금을 확대하기 위한 목표를 제시해 왔지만, 현재의 약속만으로는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는 2035년까지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후적응 자금을 최소 세 배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UNEP는 이 목표가 달성되더라도 2035년 국제 공공 기후적응 자금은 연간 약 850억~1200억 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산했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면 이는 개발도상국의 전체 기후적응 수요 가운데 약 20~29%에 해당한다.
자금 지원을 현재보다 크게 확대하더라도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충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다만 모든 흐름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 간 협력과 다자개발은행을 통한 기후적응 자금은 증가하고 있다. UNEP에 따르면 관련 자금은 2019년 38억 달러에서 2024년 96억 달러로 늘었다.
민간 부문의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민간 자금은 주로 기업 자체의 기후위험 대응에 사용되거나 개발도상국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아 공공부문의 기후적응 자금 부족을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기후재난 피해 확대…손실과 피해 대응 자금도 부족
기후적응 자금의 부족은 재난 피해를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기상 현상이 심화되면서 개발도상국에서는 농업 생산 감소와 주거시설 파괴, 기반시설 손상 등 다양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기후 취약지역 주민들은 재난 이후 생계를 회복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을 마련했지만, 실제 지원 수요에 비해 가용 재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UNEP에 따르면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의 첫 번째 지원 신청 규모는 약 28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초기 지원에 배정된 자금은 약 3억4200만 달러에 그쳤다.
UNEP는 복잡한 신청 절차와 제한적인 행정 역량도 취약국의 자금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원 확보뿐 아니라 실제 도움이 필요한 지역과 주민들에게 지원이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금만으로는 부족”…정책 실행 능력도 중요
UNEP는 기후적응을 확대하기 위해 재정 지원과 함께 각국의 정책 실행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대응계획이 수립돼 있더라도 이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할 행정체계와 전문인력, 부처 간 협력이 부족하면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각국 정부가 기후변화 관련 법률을 정비하고, 부처와 지방정부 간 협력을 강화하며, 기후재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후위험에 노출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주민들이 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후적응이 단순히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문제가 아니라 도시계획과 농업, 보건, 주거, 사회보장 등 다양한 정책 분야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COP31 앞두고 기후재원 확대 논의 주목
이번 보고서는 오는 9일부터 20일까지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리는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를 앞두고 발표됐다.
COP31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 확대가 주요 논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계가 현재의 기후조건에조차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COP31을 계기로 각국이 기후적응 자금 확대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하며,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 목표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기후재원 분담 문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경제적 역량을 고려해 선진국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반면 실제 재원 조성과 지원 방식, 국가별 부담 수준 등을 둘러싼 협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이번 발언은 기후위기 대응의 초점이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이미 발생하고 있는 피해를 줄이는 적응 정책으로도 확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후적응에 대한 투자는 재난이 발생한 이후 복구비용을 지출하는 것과 달리 피해를 사전에 줄이고 사회의 대응 능력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UNEP의 이번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과 정책 수단이 마련돼 있더라도 충분한 재원과 실행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사회가 COP31에서 기후적응 자금의 확대와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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