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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슬롭’과 ‘미드 TV’ 시대... 문화적 스노비즘은 부활해야 할까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5.09.3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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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 오브 드래곤 (House of the Dragon) 한 장면 [사진=HBO]

 

문화가 점점 더 대중적이고 ‘쉽게 소비되는 것’으로 기울어지면서 예술적 기준을 세우고 저급함을 비판하던 문화적 스노비즘(cultural snobbery:문화적 속물주의)은 시대착오적 태도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AI가 대량으로 찍어내는 콘텐츠와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미드 TV’가 범람하는 오늘날 다시금 ‘기준의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여 년간 문화계는 대중문화 전반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가치 있는 담론을 중심으로 한 소위 ‘팝티미즘(poptimism)’이 주류를 차지했다. 특정 장르나 대중문화를 ‘저급하다’고 치부하는 태도는 배제와 차별로 여겨졌고 대중음악·로맨스 소설·리얼리티 쇼 등은 새로운 해석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는 시대가 바뀌면서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즐기게 두라”는 태도가 문화 소비의 표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적 태도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비판의 부재’라는 역설로 귀결되었다. 작품의 노골적인 상업성, 진부한 모방, 빈약한 구조조차도 ‘개인의 즐거움’이라는 명분 아래 용인되었다. 스타와 팬덤은 비판을 곧 공격으로 치환했고, 부정적 평가를 내린 평론가들은 ‘타인의 기쁨을 앗아가는 존재’로 낙인찍히기에 이르렀다.

 

 

최근 문화 환경은 한층 복잡성을 띠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생산하는 음악, 영상, 텍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슬롭(slop)’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슬롭’은 AI가 대량으로 생성한 저품질 이미지나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개별적 정체성 없이 모방을 반복하거나 알고리즘 최적화에 맞춰 제작된 콘텐츠를 가리킨다. 이는 창작물의 독창성과 진정성이 결여된 채 공허한 소비만을 유도하는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문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최근 해외 언론은 AI가 만든 가상의 록밴드가 수백만 재생을 기록하고, Spotify(스포티파이)가 1년간 7,500만 개 이상의 스팸·AI 트랙을 삭제할 만큼 플랫폼이 저품질 콘텐츠로 범람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피상적인 콘텐츠 소비가 인지적 둔화와 감정적 피로, 창작자와 청취자 간의 진정성 상실, 나아가 인간 아티스트의 경제적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심리적 건강과 직결된다는 경고다.

 

AI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콘텐츠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기업들은 시청률과 안전한 흥행 공식을 최우선시하며 야심 찬 창작 대신 무난한 ‘중간 수준’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 뉴욕타임스 평론가 제임스 포니워직은 ‘미드 TV’라 명명했다. 음악 또한 알고리즘 최적화에 맞춰 단조로워지고 영화산업은 무한 리부트·스핀오프·IP 확장에 몰두하고 있다.


 

예술은 본래 주관적이고 다원적인 가치를 지니지만, 무비판적 소비로만 접근할 경우 단순한 오락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가 지적했듯, 진지한 예술은 때로 수용자에게 불편함과 난해함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사고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반대로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나 반복적 모방물은 단순 쾌락만을 강화할 뿐 사고의 확장이나 자아 성찰을 방해한다. 이는 결국 확증 편향적 즐거움 속에 관람자의 시야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예술에는 최소한의 기준과 비판 정신이 필요하다. 작품을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소비하기보다 그 의미와 맥락을 질문하고 다양한 형식에 노출되며 비평 담론에 참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예술을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니라 사고와 성찰의 매개로 만들고, 예술이 지닌 사회적·지적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도록 한다.

 

 

오늘날의 문화적 스노비즘은 과거처럼 특정 장르나 계층을 배제하거나 배타적 취향을 과시하는 행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무비판적 소비가 양산하는 ‘뇌절 문화’와 상업적 논리에 종속된 예술 생태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중문화의 민주화가 가져온 개방성은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동시에 깊이와 실험성을 희생하면서 즉각적 쾌락과 반복적 소비에 치중하는 경향을 강화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화적 스노비즘’은 단순한 엘리트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예술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사유와 성찰의 장으로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스노비즘은 과거의 배타적 취향 독점과는 달리 비판 정신을 회복하고 예술의 자율성과 심미적 가치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이는 문화가 단순히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정신적 건강을 지탱하는 기반임을 환기시키며 예술을 보다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AI와 알고리즘의 발달로 대량 생산된 저품질 콘텐츠, 즉 ‘슬롭’이 범람하는 오늘날 문화적 평가의 균형은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 “모든 것이 동등하다”는 일률적 수용은 표면적으로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준 낮은 콘텐츠의 홍수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적 스노비즘은 더 이상 배타적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예술의 질과 의미를 보호하고 무분별한 상업주의와 모방물로부터 문화 생태계를 방어하는 최소한의 면역 체계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이제 단순히 모든 것을 즐기려는 태도를 벗어나 우리는 다시금 비판적 시각과 선별적 판단을 통해 ‘진정한 가치’를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AI와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이른바 ‘스노브(snob)’들의 평가 기준이야말로 문화적 수준을 유지하고 예술적 깊이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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