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 공간과 정교한 조명 아래 놓인 회화와 조각들 사이를 걷다 보면 한 작품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흙빛 브라운과 붉은 색조가 뒤섞인 화면 속에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부드러운 붓질로 형상화돼 있다. 출산 이후의 치유 과정을 담았다는 이 작품은 오늘날 라고스 예술이 지닌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미학이다.
이 작품을 만난 곳은 아트 X 라고스(Art X Lagos)이다. 매년 11월 나이지리아 라고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이 아트페어는 이제 서아프리카를 넘어 글로벌 아프리카 미술 시장의 핵심 허브로 자리 잡았다. 해외 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와 아트리뷰(ArtReview)는 아트 X 라고스(Art X Lagos)를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아트페어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아트 X 라고스(Art X Lagos) 10년, 하나의 ‘순간’을 만든 힘
아트 X 라고스는 2016년 설립자 토키니 피터사이드(Tokini Peterside)에 의해 시작됐다. 그녀는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에는 훌륭한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세계 미술계가 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창’이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런던, 뉴욕, 파리, 홍콩처럼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미술 이벤트를 라고스에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10주년을 맞은 올해 아트 X 라고스는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문화적 집결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는 젊은 가족, 국제 컬렉터, 큐레이터, 패션 디자이너들이 뒤섞여 있으며, 미술 감상과 동시에 라고스 특유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음악·패션과 맞물린 라고스 크리에이티브 붐
라고스 미술 신의 성장 배경에는 아프로비츠(Afrobeats)를 중심으로 한 음악 산업의 세계적 성공이 있다. 위즈키드(Wizkid), 버나 보이(Burna Boy) 등의 글로벌 흥행 이후 세계는 자연스럽게 “이 음악이 탄생한 도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보그와 뉴욕 타임즈는 라고스를 “음악, 패션, 시각예술이 동시에 폭발하는 보기 드문 글로벌 도시”로 묘사한다. 라고스 패션 위크, 디자인 위크, 아트 위크가 연이어 열리며, 예술 장르 간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각예술은 더 이상 고립된 분야가 아니라 도시의 문화적 에너지와 긴밀히 연결된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갤러리의 확장, 제도의 정착
현재 라고스에는 약 40~50개에 달하는 갤러리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트넷은 이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상업 갤러리 밀집 지역”이라고 분석했다. 레레(Rele) 갤러리, 오디에이(O’DA) 갤러리, 코(Kó), 옌와(Yenwa) 갤러리 등은 젊은 작가와 실험적 작업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국제 무대와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경매와 제도의 역할이다. 아트하우스 컨템포러리(Arthouse Contemporary)와 같은 경매 기관은 나이지리아 현대미술의 가격 기준과 시장 신뢰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는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나이지리아 첫 국가관 참가로 이어졌고, 이후 런던, 뉴욕, 시카고의 주요 미술관에서 나이지리아 및 아프리카 모더니즘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다
해외 매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오늘날 라고스 예술이 기존의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이국적 장식이나 민속적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체성, 젠더, 도시성, 기술, 디아스포라 등 동시대적 주제를 세계 어느 미술관에 놓아도 손색없는 언어로 풀어낸다.
오디에이 갤러리 설립자 오비다 오비오하(Obida Obioha)는 아트리뷰에서 “이제 아프리카 미술은 설명이 필요 없는 미술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라고스가 단지 ‘지역적 중심지’가 아니라, 글로벌 미술 담론을 생산하는 도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라고스를 봐야 하는 이유
해외 언론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지금 라고스를 보지 않으면, 다음 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아트 X 라고스(Art X Lagos)를 중심으로 성장한 이 도시의 미술 생태계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대담하고, 현대적이며, 생생한 라고스의 예술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세계 미술 지형의 중심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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